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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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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지금 내가 한 말들 알아듣겠어? 바움가트너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애나의 숨이 멈추고, 말이 멈추고, 전화선이 죽어 버린다."

폴 오스터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 그리고 영원히 살아있을 전화선. "산 자마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죽은 자의 의식은 영원히 소멸한다." <바움가트너>는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사건들이 한사람의 인생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를 의식의 흐름대로 산발적으로 이야기한다. 당신이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불같은 사랑과 상실, 그로 인한 쓸쓸함과외로움, 기억의 혼재와 각인. 생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이 전 장에 걸쳐 때론 독백처럼, 때론 제3자의 시선에서 차분하게 서술된, '떠나야 할 때를 분명히 아는 이'인 폴 오스터의 회고록, 혹은 바움가트너의 주마등. 독자라는 수신인이 살아있는 한 그의 전화선은 살아있을 것이다.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기를 택한 폴 오스터의 뜨거운 응답.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그 무엇도 사랑이라고 할 수 없을테다.

#바움가트너 #폴오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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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3부작 -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마추켈리 외 그림, 황보석 외 옮김, 폴 오스터 원작, 폴 카라식 각색 / 미메시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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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도서

뉴욕이라는 장소를 빌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게 될 고난과 역경을, 또 그것이 인생에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 본디 인생은 한치 앞도 알 수 없기에 안개숲에 갇혀 미로를 헤매는듯한 이 이야기는 독자들의 혼란을 유도한다. 원인도 목적도 알 수 없는 사건이 내게로 찾아왔을 때 어떻게 해쳐나갈 것인가. 인간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으며 또 얼마만큼 망가질 수 있는가. 내가 나라는 존재로만 구성된 인간임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때론 작지만 위대한 발자국을 남겼던 누군가처럼, 때론 자세히 보지 않으면 스쳐지나가게 될 유리창 위 작은 지문하나처럼, 그렇게 뚜렷함과 희미함 사이를 유령처럼 떠도는 것이 인간의 삶일테다. 그 유령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자신의 세계로 기꺼이 초대해준 작가가 있음에 감사하며 책장과 책장 사이를 넘나들었다. 내가 주인공인듯 혹은 주인공이 나인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을 움직일 수 없는 돌이라고 생각하지요." "돌도 변할 수는 있어요. 부식될 수도 있구요." 움직일 수 없는 돌을 이리저리 옮겨대는 언어의 마술사 폴 오스터표 인생 3부작. "당신은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 모든 것의 안팎을 바꿔 놓은 단 하나의 존재다." 단 하나의 존재인 세상 모든 유령들에게 바치는 돌의 노래.

#뉴욕3부작 #폴오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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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길 잘했어
김원우 지음 / 래빗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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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내 친구잖아. 네가 더 좋은 사람이 되면 되지."

■ 사람을 사람 곁으로 그리고 사랑 속으로 당기는 소설.
도무지 이 책은 독자를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는다. "불확실한 행운과 달콤한 말들을 불신"하고 "원하는 것을 좇기 보단 참을 수 없는 것에서 멀어지며" 굴러온 사람을 광장으로, 사람 곁으로, 사랑 속으로 지긋이 끌어당긴다.

수록된 세 작품엔 어딘가 무기력해 보이고 불확실한 미래(혹은 죽음)를 두려워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없는 이와 '우정'이란 편지봉투 속에 애써 감정을 감추는 이를 움직이는 것은 사랑, 그리고 사람이다.

작가가 만든 세계에서 사랑은 "가장 게으른 변명"임과 동시에 가장 부지런한 변명이다. 어디에 갖다 붙여도 이유가 될 정도로 게으르지만, 또한 끈질겨서 여기저기에 치덕치덕 들러붙으며 더 큰 사랑을 불러온다. 그리고 사람은 "미래를 현재로 끌어당기는 걸음" 혹은 "보풀처럼 간단하게 떨어져나오는 카드키"나 절망을 꾹꾹 눌러담은 일곱장의 편지로 사랑을 당긴다. 그에 대한 답을 영영 알 수 없을지라도. 하지만 툭하고 꺼지는 텔레비전과 화면을 가로지르는 하얀빛이 더이상 죽음으로 느껴지지 않게 되었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닐까.

고장 난 핸들을 두고 바퀴만 고치던 우리에게 두개의 선택지가 있다. 60초 후에 재생될 다음 장면을 기다릴 것인가, 이대로 주저앉아서 까만 화면을 응시할 것인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좀처럼 외면하기 힘든 이 사랑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닿기를. "광폭하게 흘러가는 미지의 시간"을 마주한 우리의 사랑이 일방통행이 아니기를. 양손에 가둔 하얀빛을 더욱 세게 움켜쥐며 나지막하게 말해본다. "좋아하길 잘했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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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
박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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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기사를 바탕으로 4년간 치밀하고 신중하게 다듬은 이야기는 87년의 그날로, 2015년의 그날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끈덕지게 들러붙는 생생한 고통에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고싶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다 불현듯 떠오른 물음. 이 불행은 과연 생존자들만의 것일까.

 

이야기는 입양아 준이 친모의 검안서, 형제의 집 입소기록 카드를 전달 받으면서 시작된다.

준은 엄마인 은희가 수용소 내 폭력으로 숨졌고, 수감자의 강간으로 자신이 태어났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엄마를 알고있다는 미연을 찾아나섰지만, 미연 또한 형제의 집 피해자였기에 다가서기 쉽지않다.

그녀에게 던지는 질문조차 폭력이 될 수 있으므로.

준과 미연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두고, 은희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뒤쫓는 동행이 시작된다.

특별법 제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병호, 형제의 집을 잊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미연,

폭력으로 숨진 엄마 은희의 흔적을 찾는 준, 형제의 집에서 발생한 동성 간의 성폭행으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은수,

탈출하는 은희를 죽기직전까지 폭행한 소대장 김무열, 은희의 죽음을 '신부전증'으로 조작한 산부인과 전문의 병국, 

모든 기억을 잃고 홀로 남겨진 방인곤 원장, 모든 진실을 파헤치고자 했던 주태석 검사.

숨기고, 파헤치고, 잊혀지는 뒤엉킴 속에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그 끝에 도달한 진실에 온전히 비난 할 수 없는 것은, 누군가 짊어졌던 참혹한 무게를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거리의 빈곤을 청소해야한다. 국가는 약자들을 한 곳에 가둘 명분을 만들었다.

길 가던 아이,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 취객, 친구와 놀던 아이, 목욕탕으로 향하던 사람.

온갖 사람들이 '부랑자를 갱생'하기 위해 형제복지원으로 납치되었다.

시설 곳곳에서 행해지는 폭력적인 행위들은 국가의 묵인과 함께 점점 대담해졌다.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알려고하지 않는 것이었고, 못본 척 하는 것이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는 이가 있으니 손 안대고 코 푸는 셈이었다.

생존자들이 입을 열었을 때 모두가 보았다.

국가가 약자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그리고 가진 자의 손에 쥐어진 권력을.

그렇게 빈곤은, 약하다는 것은 공포가 되었고, 밀어내야 할 어떤 것이 되었다.

그것은 더 이상 형제복지원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복제된 형제원들, 철장 밖 모두의 이야기였다.

빈곤층에게 가해지는 국가의 폭력을 보았기에 가난에 대한 부정적이 인식이 생겼고,

박인근을 감싸는 국가와 사법부를 보았기에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높아졌다.

정의의 여신상의 저울은 힘있는 자들 쪽으로 기울었고, 법전은 힘있는 자들의 궤변을 뒷받침하기 위해 펼쳐졌다.

국가의 시선은 더 높은 곳을 향했고, 약한 이들은 점차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지금도 수많은 형제복지원과 은희가 존재하고 있다. 87년에 시계가 멈춰버린 것은 생존자들 뿐일까.

 

생존자들의 피와 눈물섞인 농성끝에, 20대 국회의 마지막에 가까스로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비록 보상에 대한 것이 제외된 반쪽짜리 법이지만, 생존자들이 87년의 기억에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디딤돌이 생겼다.

그리고 나도 작가가 얹어준 불행을 기꺼이 짊어지고 세상의 은희를 위해 조용히 손을 맞잡으려한다.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을지라도 두 눈으로 이 여정을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걱정이 많았다.

형제복지원을 두고 소설이 나왔다니. 조금만 헛디뎌도 자극적인 이야기로 이어질 위험이 있었다.

실제로 당시 기사들은 피해자들이 당한 가혹적인 행위를 집중조명 했다고 한다.

(: 동성간의 성폭행, 수용자 간의 폭력행위)

책에서도 미연의 고백을 들은 언론들이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살인자로.' 라는 자극적인 기사를 보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많은 것을 우려하며 읽었고, 기우에 불과했음을 깨닫기까지는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생존자들의 곁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온 작가님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었다.

<소년이 온다>가 한강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면, <은희>또한 박유리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타인의 고통이라 생각하여 외면해온 과거의 나를 반성하며,

87년의 은희에게로 나를 이끌어준 작가님께 감사인사를 드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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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
박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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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여신상의 저울은 힘있는 자들 쪽으로 기울었고, 법전은 그들의 궤변을 뒷받침하기 위해 펼쳐졌다. 국가의 시선은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약한 이들은 점차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형제복지원과 은희가 존재하고 있다. 87년에 시계가 멈춰버린 것은 생존자들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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