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의 문화 사랑방 디자인 사랑방
김민수 지음 / 그린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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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디자인은 화려하고 멋진 포장지처럼 내용물이야 어떻든 값비싸 보이기만 한다면 그것은 좋은 디자인이라 생각했다. 그런 디자인을 소비해야지만, 혹은 소비 할 수 있어야지만 어떤 노릇을 한다고 인정하는 한국사회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입을 수도 없는 이상한 옷들을 보고도 멋지구나!’ 햇볕도 들지 않는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도 현대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디자인에 대한 이런 생각들이 실은 배수관에 엉켜 붙은 머리카락들처럼 우리 삶의 소통을 막고 있는 욕망의 찌꺼기라는 것을, 김민수 교수님의 강의와 책을 통해 깨달았다.

디자인이 인간 삶에 볼거리의 즐거움과 생활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중요한 수단임에 분명하지만 이로 인해 소비사회에서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초발심이 요청된다.” (p.20)

디자인이 껍데기에 불과한 포장지나 겉치레가 아니라 삶 최전방의 접점이자 고유한 역사의 정체성이라는 그의 철학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특히 <2장 왜곡된 역사, 뒤틀린 정체성> <5장 공공을 위한 디자인은 무엇인가?> chapter에서는 우리 사회 내부에 부끄럽게도 오랫동안 치유되지 않는 왜곡의 역사(p.70)”의 증거들과 환상을 쫓아 공공성 대신에 한 기업을 위해 도시의 미래를 제물로 바치는(p.186)” 현장들을 짚어내는 것이 마치 르포 같다.

민중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고우영 만화의 해학, 달항리처럼 형식미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자연스런 접합점, 청계천변 입정동 골목에서 풍기는 수 십 년 세월의 땀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 속에서 증언되는 전쟁의 비극이런 것들이 우리 삶 속에서 발효되면 비로소 진짜 디자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디자인의 정의나 안목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문제이다. 지금까지 남들에게 보여주기 좋고 남들이 멋지다고 하는 것들 -실질적으로는 껍데기에 불과한 허울-을 위해  내 삶이 얼마나 소비되고 있었는지, 이런 욕망의 어혈이 얼마나 우리 역사의 혈관을 막고 있었는지, 『김민수의 문화 사랑방 디자인 사랑방』은 문화 내부에 작동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그 의미체계를 통해 매우 구체적으로 짚어낸다.
 

아는 데로 보인다.
 

지금껏 몰랐기에 제대로 보지 못했고, 제대로 보지 못했기에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살피자. 디자인은 동대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발바닥 아래 있다, 그리고 그 발바닥으로 걷는 세상은 이전과는 달라 보일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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