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몸은 너의 것이야 - 경계존중으로 시작하는 우리 아이 성교육 부모 가이드
엘리자베스 슈뢰더 지음, 신소희 옮김 / 수오서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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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도서관은 유난히 더웠다. 

오래된 에어콘에서는 늙은 곰팡이 냄새만 뿜어져 나왔고, 공기 속에 땀냄새가 알알이 박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중요한 시험이 당장 코앞에 닥친터라 달리 갈 곳이 없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까페에서 공부를 하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었고, 심지어 당시 까페라는 곳은 외곽지역에 위치한 포크송과 마당에 물 흐르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으로 불륜과 화합의 장소였다.  (그렇다 239년 전일이다)


메이지 유신과 일본의 근대화, 정치개혁 50년, 자민당 자민당...자고싶다 아 씨, 어제 놀지 말고 할 걸, 이런 하나마나한 잡념과 후회가 중구난방으로 퍼져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쯤 어디선가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옆에서 자나? 그래 자겠지 여기 있는 학생 팔할이 자다깨다를 반복하니까. 다시, 도쿠가와 막부와 내부개혁...어?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 하는 순간 다리에서 부터 소름이 돋으며 등줄기가 서늘해 졌다. 겨우 눈만 굴려서 아래를 보는 순간, 책상 밑에서 쪼그려 앉아 내 종아리에 입김을 불고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순간적으로 뱉은 말은 '엄마야' 였다.


떨어진 지우개를 주우려 했다는 변명을 나만 빼고 다들 믿었다. 심지어 도서관 관리자는 '그러게 그런 짧은 바지'를 원인으로 지목했고, 약간의 소란에 잠이 깬 학생들은 시끄러워서 공부를 못하겠다고 눈총을 줄 뿐이었다. 


그놈은 도서관에 남았고 나는 집으로 갔다. 가슴에서 수치심이 끓어올랐으나 입밖으로는 나오지 못했다. 그동안 내 몸을 어떻게 지키고 어떻게 싫다고 하는지 배운 적도 없었고 알려고 하지 못했다. 몸과 성이라는 단어를 입밖으로 내면 '까진년'이 되는 시절이었다. 일상의 성폭력에 무수히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대응은 커녕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한 채 '내 탓'만 하며 십 수년을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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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처음으로 아이에게 음경이라는 단어를 말했다. 

"지금까지 고추라고 썼는데 엄마가 잘모르고 하는 말이었어 #너의몸은너의것이야 책을 읽었는데 우리 신체를 정확하게 알고 이름을 불러야 한대 코나 팔을 부르는 것처럼 말이야. 앞으로는 음경이라고 말할게." 11살 아이는 뭘 얼굴을 조금 붉혔고 9살 아이는 "그럼 나는?"

이라고 물었다.

"너는 음부, 우리 몸은 소중하니까 정확하게 부르고 또 정확하게 알아보자." 


#존중받고싶으면존중해야한다 라는 당연한 전제, 허락과 동의라는 분명한 기준을 책을 읽으며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아이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몸을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어른들이 함께 이런 책들을 읽으며 믿을 만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돌보고 건강한 관계를 맺는 법을 배워야 '내 탓'을 하지 않는다. 

  




  

신체접촉에 앞서 항상 아이의 의사를 확인하세요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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