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네가 오고 있다 - 사랑에 대한 열여섯 가지 풍경
박범신 외 지음 / 섬앤섬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비 온다고 하지 않았나?” 몇 번을 속으로 물었다. 원래 비 오는 날의 습한 공기를 좋아하고, 소리를 좋아하고, 맨땅에 떨어져 거품을 내며 땅속으로 스며드는 비 구경을 좋아한다. 좀 일찍 내렸으면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비를 보았을 텐데 아쉽게도 내가 잠든 이른 새벽에 비가 시작되었나 보다.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습한 공기,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열어둔 창문 사이로 들려오는 빗소리에 잠을 깼다. 커턴 사이로 가로등 불빛이 보이고 하루살이처럼 이리저리 바람에 날리는 비를 보았다. “왜 비를 좋아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특별히 비 오는 날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혼자의 생각이지만 우리의 몸이 수분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그 수분은 외부의 무미건조한 생활에 수분을 조금씩 뺏기다가 비 오는 날 잃어버린 노름판의 돈을 찾으려는 심리처럼 증발해 버린 내 몸의 수분과 감정의 메마름을 회복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그러한 감정을 먼저 생각하기 전에 몸이 물리적으로 원하는 수분을 보충하고 낭만적 감정을 채우기 위해 술을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샌가 우리는 비 오는 날에는 파전에 막걸리라는 나름의 공식을 만들었다. 어떤 이는 비 오는 날에 파전이 생각나는 것을 파전 굽는 소리가 빗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과학적 근거를 들어 비 오는 날 우리 몸은 저혈압이 되어 혈당치가 떨어지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포도당의 원료인 탄수화물을 몸이 원하는데 그 과정에서 곡물로 이루어진 막걸리와 파전을 찾게 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난 막걸리를 좋아하진 않는다. 일단은 떱떱함이 싫고, 먹은 뒤에 찾아오는 내 속의 냄새를 확인하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 않아서이다. 하지만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많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많다. 소주는 빈속에 마시는 것이 짜릿하고 마음이 허전하거나 외로울 때 생각을 지우기 위해 마시는 술이지만, 막걸리는 일상의 삶을 연결하기 위해 잠시 쉴 때 즐기는 ‘참’, 밥 먹은 뒤 허기질 때 ‘덤’처럼 먹는 거로 봐서 단절하거나 잊기 위한 것이 아닌 연결 하거나 더하기 위한 인간적인 느낌을 주는 것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사랑을 연상하면 시원 달큼한 막걸리가 생각나고 이별을 하면 쓰디쓴 소주가 생각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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