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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바꾼 칭찬 한마디
김홍신 외 31인 지음 / 21세기북스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유년시절의 추억은 온 가족이 함께한 것보단 몸이 편찮으신 아버지를 대신해 생업을 하시던 어머니를 해 질 녘이면 골목길에서 기다리던 기억이 전부이다. 그 시절에는 어느 집이든 번듯한 식탁에 잘 차려진 밥상을 받는 호사를 누리기보단, 그저 다리 달린 철제로 된 양은 상에서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하는 것이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유년기의 기억은 우리 가족 전부가 식사를 함께한 기억이 나지 않는 거로 봐선 삶이 어려웠던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살던 동네를 몇 해 전 가본 적이 있다. 엄마를 기다리던 넓었던 골목길은 겨우 성인이 팔을 뻗으면 닿을 크기의 초라한 길이었고, 행여나 친척이 오거나, 엄마가 출근할 때 과자를 사 먹으라고 주고 간 동전을 숨겨 놓던 담벼락은 겨우 내 키보다 조금 더 큰 높이였는데, 신기하게도 그 동전 구멍은 이끼만 잔뜩 낀 채 그대로였다. 이런 이유로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았던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 칭찬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학창시절에도 선생님이나 친구들로부터 내 인생을 바꿀 만한 칭찬을 받아 본 적도 없다. 다만 중학교 시절까지 매년 겨울방학이 시작될 때 주는 개근상이 내 인생의 유일한 공식적인 칭찬 전부였다. 그리고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교실에서 나눠서 자신의 신체 발육과 각종 기록 정보를 확인하던 생활기록부엔 내성적이란 글이 한 번도 빠지지 않는 거로 봐선, 선생님들조차도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조용한 성격의 학생이라 전년도 담임선생님이 적었던 생활태도를 그대로 적었으리라 짐작한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모아뒀던 돈도 없이 먹고살기 위한 공부를 하던 서른 즈음. 전날 친구들과 술을 먹고 들어오면서 담배 살 돈이 없어 주머니 동전을 딸딸 털어 ‘백자’를 사서 피우다 책상 위에 올려두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담배를 피우려고 집어 든 순간 담배 밑에 메모지와 함께 반으로 접힌 삼만 원이 놓여 있었다. “힘들어도 담배는 좋은 거 피워라.” 딱 이 한 줄 메모였다. 아버지께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들이 돈이 없어 몸에 더 해로운 싸구려 담배를 피우는 게 못내 마음 아프셨던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내가 아버지가 되고 나의 아버지는 백혈병으로 입원해 계실 적이었다. 며칠 전부터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면서 나름 준비를 하고 있던 어느 날, 동생으로부터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꼭 아버지한테 가보라는 말을 듣고 아들을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호흡기를 달고 계셨지만 그래도 간단한 의사소통은 할 수 있을 정도셨는데, 그때 “내 아들이지만, 너 참 좋은 놈이다. 도윤이 잘 키워라.” 그리곤 채 세 시간이 안 된 열시 십삼 분에 눈을 감으셨다. 내 생애 최고의 칭찬을 마음속에 꼭꼭 담아두시다가 당신이 떠나시기 몇 시간 전에 해 주시곤 아버지는 그렇게 가셨다. 그리고 쉰을 눈앞에 둔 아들은 그 칭찬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아버지 그립습니다. 도윤이 내년에 중학교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