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부모와 자녀가 꼭 함께 읽어야 할 시
도종환 엮음 / 나무생각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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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수돗가에서 등물을 하거나 빨간색 세숫대야에 앉아 목욕을 하고 겨울이면 아버지를 따라 무슨 관공서에 딸린 목욕탕을 다녔다. 그 시절에 좋은 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를 뿐더러 다른 곳도 그기와 별반 다르지는 않았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지만, 굳이 집근처 목욕탕을 두고 그곳을 다니는 이유는 요금이 싸다는 이유였을 것이다. 아버지를 따라 순순히 목욕탕을 간 것도 지금 생각하면 목욕이 좋아서가 아니라 묵은때를 벗겨내는 고통을 잘 참아내면 상으로 주어지는 하얀우유의 미끼가 틀림없이 작용했을 것이다. 가끔은 몸통은 없고 머리에 양념을 한 아나고 대가리를 먹는 호사를 누리는 날도 있긴 했었다. 추운 겨울 설날을 앞두고 가면 정원이 초과되어 줄을 서서 입장을 하는데 변변한 옷장도 없이 광주리에 옷을 담고 탕으로 들어가면 웬 사람들은 그리도 많았는지 발가벗은 사람들의 몸은 프라스틱 슬레이트를 통해 들어온 햇빛을 받아 온통 연두색으로 반짝이고 탕에서는 뜨거운 물을 더 넣어라는 걸걸한 호통 소리, 탕주위에는 뜨겁다는 아이의 가느린 목소리가 반대로 뒤섞이고 가끔은 외마디 비명의 등짝 후리는 소리가 들리곤 했었다.
지금이야 몸만 가면 되는 곳이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비누며 수건을 각자가 가져갔는데 아버지는 항상 여분의 수건을 가져갔고 탕에 들어가실 때도 마른 수건을 가지고 들어가 겨드랑이에 깊이 끼우시고 반신욕을 하듯 그곳이 물에 닿지 않게 하는 모습을 하셨다. 다른 어른들처럼 물속에 깊이 들어가지도 않고 늘 왼쪽은 수건으로 가리는 아버지. 그후로도 계속 그런 모습을 봤지만 왜 그런지를 몰랐던 어느날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왜 물에 안들어가세요. 수건은 왜 끼우세요?˝ 아버지께서는 팔을 들어 그곳을 보여주셨다. 살이 모잘라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이 패인 수술자국이 있었다. 늘 집에서 한 움큼의 약을 드시는 원인이 바로 그 상처와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지금의 내나이 보다도 젊었던 아버지를 지독히도 괴롭혔던 병마는 그후로도 이십 년을 넘게 우리가족과 아버지를 힘들게 했었다. 추운 겨울 당신께서 아들과 손잡고 다녔던 초라했던 그곳을 겨울이든 여름이든 손자와 함께하는 여유로운 목욕을 너무도 좋아하고 당신의 주머니가 아닌 아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점심이라면 제일 맛나고 좋은 것으로 주문해 드시던 천진난만한 아이같은 양심을 가지고 사셨던 아버지. 그 추억과 기억을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에서 읽었다. 이제는 세월도 내 아들도 자라서 내 아버지와의 삶과 바꾼 자리에 내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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