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갑자원 9
OSAMU YAMAMOTO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8년 6월
평점 :
품절


갑자원은 일본 고교 야구의 대제전이 벌어지는 고시엔 구장이다. 검은 흙 그라운드로 더 유명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만화에서 중요한 것은 고시엔 구장이 아니다. 바로 그곳을 밟아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배경과 등장 인물들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특이한 것들이다. 일본 본토와는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오키나와라는 특수한 지역, 그 역사와 지리적 위치 때문에 미군부대를 떠안고 살아야 하는 특수한 역사, 그리고 그 역사로 말미암아 1960년대 유행한 풍진, 또 그로 말미암아 발생한 수많은 장애아들. 이러한 설정 자체는 현실이면서도 매우 현실적이지 않은 조건을 낳았다.

나는 만화를 볼 때, 그 만화가 내가 모르던 새로운 지식을 얼마나 전해주었는가 하는 점도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보곤한다. 그런 점에서 이 만화는 나에게 오키나와라는 -관광지로만 생각했던 - 지역의 역사에 대해서 알게 해 주었고, 농아들의 삶에 대해서도 알게 해 주었고, 야구에서 청각이라는 요소가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도 알게 해 주었다.

이 만화의 주 걸개는 장애아들의 삶과, 그들의 역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온 것은 껄끄러운 미군 문제를 자연스럽게 다루어 독자가 그 문제를 인지하고 상기하게 한 점이었다.

미군 문제를 접근할 때 흔히 적대적 감성만으로 선동적 구호만을 낳거나, 그로 인해 오히려 외면해 버리게 하는 그런 문제를 낳곤 한다. 그러나 이 만화는 그 어떤 선동적 구호보다도 더 미군 문제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나는 일본인들이 이러한 만화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 더욱 부러워했다.

마지막 10권을 다 읽고 났을 때 약간은 허탈했다. 그냥 소설이라면, 만화라면.. 주인공들은 무언가 확실하게 장애물을 극복하고 해피앤드로 끝났을텐데, 논픽션인 이 만화는 현실의 결말을 보여주었다. 장애아, 그들이 겪어야 할 장애물은 현실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음을 말이다. 한편 미군과는 어정쩡한 화해로 넘어가고 말았고. 하지만 이제 오키나와 주민들은 미군 문제에 대해 소리 높여 말하고 있고.. 오키나와의 청각 장애인들은 지금쯤 40대가 되어 무언으로 그들의 의지와 고난을 역설하고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