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릿 Grit - 흔들리지 않고 무엇이든 해내는 마음근력, 전면 개정판
김주환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말 좋아하는 교수님의 책이 출간되었어요. 이번 책은 자녀가 있는 부모님들을 타켓팅으로 한 책이지만 내면소통 책에 나온 이론들이 쉽게 적용되어 나와서 좋았습니다. 학창시절 공부하면서 책에 나온 개념들을 제가 충분히 성장시켰는지 돌아보게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구려 1 - 미천왕, 도망자 을불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년 전 김진명 작가는 <살수>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중국의 역사왜곡이 극에 달한 그 시점에 작가는 을지문덕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동북공정의 한 가운데서 삼국지를 편역해내고, 삼국지를 읽지 않으면 이단이나 저능아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이러고서야 어떻게 저들의 동북공정을 격파하겠는가?' -<살수> 작가의 말에서...


<살수>는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지만, 몇 년 전부터 작가가 고구려의 이야기를 중요하게 다루어 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고구려>는 작가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쓸 때부터 계획해왔던 소설입니다. <고구려>에 앞서 <살수>를 먼저 발간한 것은 거대한 수나라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만방에 고구려의 위대함을 알린 영웅 을지문덕의 이야기를 통해 자랑스런 고구려의 역사를 기억해주길 바래서가 아닐까요?

<고구려>에서 작가는 우리 젊은이들이 <삼국지>보다 고구려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정작 필독서로는 삼국지가 나와 있고 고구려에 대한 책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중국에서는 빠른 속도로 동북공정을 진행시키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하느냐 마느냐와 같은 문제로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에 있는 고구려의 유적들은 중국 정부에서 발굴을 하고 우리나라는 시도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작가는 자신의 뿌리를 확고히 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하고, 고구려를 먼저 읽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집필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구려>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고구려>의 시작은 4세기 미천왕입니다. 사실 그는 우리에게 생소한 왕입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단 한 줄밖에 나와 있지 않고 어느 나라 왕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작가가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왕을 시작으로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사회에선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들의 이름은 외우면서 정작 고구려의 영웅들은 모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작가는 <고구려>를 통해 우리에게 기억 될 영웅을 담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미천왕 설화를 영웅담으로 재탄생 시켰습니다.

미천왕 을불은 어린 시절부터 고난을 겪고 왕이 되는 인물입니다. 왕 상부는 자신의 왕위를 빼앗길까봐 안국군과 수많은 신하를 살해합니다. 그 피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린 을불은 혼자 살아남습니다. 남의 머슴살이 생활을 하고, 소금행상을 하면서 도둑으로 오인 받고 매를 맞는 등 도저히 왕손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든 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상부의 폭정이 심해지자 신하들은 상부를 내치고 을불을 왕으로 세웁니다. 기본적인 미천왕 설화의 내용은 이 정도입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새롭게 다뤘습니다. 수많은 인물의 등장과 일어나는 사건을 비롯해, 고난을 겪고 왕이 된 을불이 낙랑을 정복한다는 이야기로 영웅담의 형식과 함께 왕의 주요업적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전개했습니다. 하지만 설화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을불의 머슴살이, 소금행상시절 부분이 많이 빠져있어서 아쉬웠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설화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부분인데 말이죠. 하지만 새로운 이야기와 형식으로 미천왕 설화를 재구성했다는 부분에서 의의를 두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왕의 모습을 보이는 자, 그가 바로 왕이다!


병사들에게 쫓기던 을불은 한 노인을 만나게 됩니다. 이 노인의 등장은 소설에서 중요한 장치로 작용합니다. 그는 을불에게 지혜를 주는 인물로 등장하며 조력자의 역할을 합니다. 또한 을불이 왕이 될 것이라는 복선과 세가지 물음을 통해 을불이 이끌어 가야할 고구려의 모습까지 조언해줍니다. 이 노인의 등장으로 소설의 흐름이 바뀌며 을불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또한 영웅담의 이야기로 볼 때에는 위기에 처한 영웅이 조력자를 만나는 부분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하찮은 목숨은 하나도 없다. 무릇 군왕은 모든 백성의 목숨 한 조각 한 조각을 자신의 것보다 중히 여겨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성군들은 바로 그런 생각으로 백성을 섬겨왔다."


을불은 타고난 왕재였습니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고 했던가요? 그의 모습이 가장 돋보였던 장면은 하나 둘 자신의 사람을 만들어가는 장면이었습니다.

무예대결 도중 병사들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신분을 따지지 않고 여노와 친구가 된 것, 굶주리고 전식을 먹으며 생활하는 숙신의 백성을 구제해준 것, 그로써 숙신 백성들의 마음을 얻은 것 등이 바로 그 예입니다. 그리고 또한 을불은 아달휼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 때문에 저가와 주아영이 을불이 왕손임을 알아 볼 수 있었던 거죠.

그는 자신이 도망을 다니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을 때에도 자신이 왕손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창조리가 그를 왕으로 세우려 했던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기도 하죠. 그는 상부의 폭정으로 인해 굶주리는 백성들과 나라의 모습을 보았고, 숙신의 백성들을 걱정하며 그들에게 밥을 퍼주고 돌보았습니다. 또한 낙랑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조선인들을 보고 훗날 낙랑을 정복하겠다는 고구려를 위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간 나라가 수차례 외적의 침입을 당했지만 방어에만 급급해 영토는 조금씩 줄어들고 변방의 백성은 삶의 터전을 잃었소. 나는 가깝게는 원상을 회복하고 멀리는 낙랑과 현도를 몰아내 서진을 완수하고자 하오!"


빼앗긴 조선 땅 낙랑, 낙랑을 둘러싼 영웅들의 이야기


소설 <고구려>의 특징 중 하나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부분 때문에 읽는 독자들은 힘들지도 모릅니다. 1,2,3권에 새로운 인물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헷갈리기도 하죠.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다루느라 많은 인물이 필요했고, 소설에서 작은 인물조차도 중요한 사건을 맡는 역할을 합니다. 그 중 대부분의 주요인물은 모두 낙랑에서 등장합니다.


낙랑 무예총위 양운거부터 주아영, 모용외, 최비의 등장이 모두 낙랑에서 시작됩니다. 말을 타고 대결하는 양운거와 소청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해 낙랑성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오는 모용외, 낙랑을 기반으로 새로운 힘을 키우고자 하는 최비, 또한 낙랑은 을불이 '다루'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공간이기도 하죠.


낙랑에서는 최비의 등장과 함께 자객의 습격을 받고 다친 양운거가 무예총위직을 그만두고 낙랑을 떠나는 장면, 아영을 옥사에 가둔 최비와 모용외의 갈등 등과 함께 왕이 된 을불이 낙랑을 정복하는 장면까지 많은 인물의 등장과 함께 소설에서 대부분의 사건들 또한 낙랑에서 펼쳐지게 됩니다.

그 중 주목해야할 사건이 있다면 을불과 주아영, 모용외의 만남입니다. 을불은 주아영으로부터 철을 사기 위해 모용외와 대결을 하게 됩니다. 이 대결에서 모용외는 자기 자신을, 을불은 낙랑을 겁니다. 갈등이 최고조에 오릅니다. 선비족 족장으로 나오는 모용외와의 갈등은 고구려와 선비와의 갈등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고구려>에서 모용외를 캐릭터가 강한 인물로 설정해놨습니다. 작가가 그렇게 설정해 놓은 이유는 앞으로 <고구려>에서 계속될 선비족과 고구려의 이야기를 위해 부각시켜 놓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아영이라는 인물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뛰어난 외모와 머리를 가지고 있고 천하를 움직이는 여인으로 모용외를 움직이는 힘도 가지고 있습니다. 모용외가 사모하는 여인이지만 을불과 혼인해 고구려의 왕후가 되어 고구려의 힘이 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주아영과 모용외의 이야기는 4권에서도 계속 될 것입니다. 4권 고국원왕 사유 이야기에서는 모용외의 아들 모용황의 침입으로 미천왕의 시신을 빼앗기고 주아영이 인질로 연나라에 잡혀가는 이야기가 이어질 것입니다. 또한 4권부터 시작할 고국원왕의 이야기에서 미천왕 편의 인물들이 연이어 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표적으로 3권의 마지막 대목의 원목중걸의 이야기로 봐서 이 인물의 이야기 또한 계속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4권의 주인공인 사유의 이야기가 미천왕 편에는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치만 작가가 미천왕의 모습과 달리 고국원왕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냈을지 기대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미천왕, 4세기 고구려, 낙랑을 되찾다


고구려 3권에서는 왕이 된 을불이 낙랑을 되찾기까지의 과정이 나옵니다. 낙랑을 정복하기 위한 준비과정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이 중갑기병과 고구려의 철제갑옷입니다. 1,2권에서 보았듯이 소설에서 철은 사건의 주요소재가 됩니다. 을불은 낙랑으로 가는 철을 반란군으로 빼앗긴 것으로 위장해 그 철로 갑주와 중갑기병을 만들어냅니다. 이 갑주와 철갑병은 나중에 낙랑을 정복할 때 큰 역할을 합니다. 작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구려의 벽화에서 4세기 고구려의 모습을 보여주는 특징을 소설에서 재현시켰습니다.

소설에서 고구려와 낙랑과의 전투는 여러 지략과 전술로 묘사됩니다. 청홍기 두 쌍, 총 네개의 깃발을 사용하는 전법은 진군과 퇴군의 움직임과 좌우신호까지 나타냄으로써 고구려 진영의 살아있는 듯한 모습과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낙랑과의 전투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전술은 소떼를 이용한 전술입니다. 어둠에 묻힌 낙안평에서 수 천개의 불덩이를 단 소떼를 이용해 <고구려>에서 만의 독특한 전쟁장면을 보였습니다.

그 외에도 화살을 맞고 죽어가는 조선인들의 모습, 양우의 희생과 창조리의 계략, 아달휼의 숙신기병 등을 이용한 생생한 전투장면은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이고 독자들로 하여금 책장을 빠르게 넘기도록 하였습니다.



낙랑과의 전투장면 뿐만이 아니라 3권에서는 왕이 된 을불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을불은 자신이 예전부터 그토록 마음먹어 왔던 낙랑정복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폐하, 본래 왼손을 쓰셨습니까?"

"아니요. 최비가 왼손을 쓴다기에 나도 따라서 써보는 것이요. 최비가 새우잠을 잔다기에 나도 새우잠을 잤고, 최비가 서수필(鼠鬚筆)을 쓴다기에 나도 낭호필(狼毫筆)을 버리고 궁중의 쥐 수염을 뽑았소."

“최비의 생각을 읽기 위함이시군요.”


그에게 낙랑축출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군사와 자신의 병사들의 희생 또한 있었습니다. 최비의 생각을 읽기 위해 최비와 같은 행동을 하는 장면에서는 그에게 낙랑이 얼마나 간절하고 되찾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를 말해줍니다. 그의 지략과 전술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결과는 낳습니다.

하지만 낙랑과의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을불은 갈등합니다. 화살받이로 묶여 나온 조선의 유민들 때문이었습니다. 낙랑성을 손앞에 두고 을불은 쉽게 공격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바로 코앞에 있는, 그토록 되찾고자 했던 낙랑이었지만 실상 그가 되찾고자 했던 것은 조선의 유민들이었습니다.


“폐하, 이 전쟁을 왜 일으키셨습니까? 적에게 부탁해 돌려달라고 하실 작정이었습니까? 전쟁을 벌여 적을 물리치려던 게 아닙니까. 군사가 죽더라도, 나아가 나라의 존망이 흔들리더라도 적과 싸워 되찾으려던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째서 흔들리십니까? 민초의 피는 붉고, 군사의 피는 푸르기라도 하다 여기시는 것입니까?”


고노자와 조선유민들의 희생으로 을불은 낙랑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살고자 했던 조선의 유민들이었지만 그들이 희생한 까닭은 그들에게 조선유민들을 구하러 낙랑을 정복하러 온 고구려 태왕의 마음이 전해진 까닭입니다. 비록 낙랑과의 전투의 마지막 장면은 조선유민과 고노자 장군의 죽음으로써 붉게 물들었지만 그 붉은 피는 낙랑을 되찾고자 했던 을불의 마음과 , 낙랑을 되찾기 위해 싸웠던 고구려 군사, 낙랑을 되찾고 얻은 고구려의 얼이 아니었을까요.


미천왕을 기억해주세요


미천왕은 백성의 삶을 살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했고 고구려의 영토를 넓힌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미천왕에 대해 자세히 알아가기에는 사료가 너무 부족합니다. 정사인 삼국사기에만 의존할 뿐 다른 기록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학계에서는 낙랑의 위치에 대한 여러 가지 설, 엇갈린 견해들이 나오고 있고 실상 제대로 된 고구려의 도읍지 위치조차 파악하기 힘듭니다. 중국은 고구려의 역사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하기 위해 동북공정을 진행하고 있으며 중국에서 고구려 유적 발굴은 힘든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의 역사왜곡, 위안부 문제, 간도와 독도, 동해·일본해 표기문제 등 여러 역사논쟁이 진행 중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미천왕의 낙랑축출이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낙랑축출은 단순히 고구려의 영토를 넓힌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라 빼앗긴 고조선의 영토를 다시 찾고 한족을 몰아냈다는 점, 고구려의 자주성을 지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중국은 최근 한글, 아리랑이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고 유네스코에 등록하고, 일본은 예전부터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 했다는 왜곡을 교과서에 싣고있습니다. 이러한 가까운 예들이 자주성을 잃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지켜야 할 우리 것들은 우리가 먼저 나서서 지키고, 빼앗긴 것은 다시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 얻은 교훈입니다. 1700년 전 미천왕의 낙랑 축출은 오늘 날 같은 현실에서 꼭 기억되어야 할 역사입니다.


“보아라! 이 싸움의 끝을. 다가올 천년을 결정짓는 순간이다!”


우리는 흔히 고구려의 왕 중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광개토대왕을 뽑고 있습니다. 하지만 광개토대왕이 거대한 고구려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4세기 낙랑을 축출하고 되찾은 얼, 고구려 전성기의 문을 연 미천왕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요?

서울 광화문 광장에 가면 세종대왕,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서있습니다. 이런 훌륭한 영웅들은 우리 일상 속에서 자주 볼 수 있지만, 정작 고구려의 영웅들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우리는 <고구려>를 통해 또 한명의 영웅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낙랑을 되찾은 왕 미천왕, 하지만 현실 속에선 그가 누구이고 어느 나라의 왕인지도 모릅니다.

부여에서 탈출에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이야기는 동명왕신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북주의 공격에서 큰 공을 세운 온달의 이야기도 바보온달의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덕여왕, 대조영등은 드라마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해진지 오래입니다. 한 인물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국사책의 내용보다 우리에게 다가올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고구려>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미천왕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미천왕은 도망자였습니다. 사실 도망다니고 살기에 바빠 왕이 될 마음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도망을 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낙랑에서의 노예취급을 받는 조선인들의 모습, 상부의 세상, 또한 상부의 폭정으로 인해 굶주리며 생활하는 고구려 백성의 모습과 숙신백성들의 모습을 말이죠. 그는 백성의 모습으로 백성의 삶을 살았고 백성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습니다. 왕이 될 것이라고, 그가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이죠. 그가 도망자가 아니었다면 이런 모습들을 볼 수 있었을까요? 그가 궁궐에서 살아온 한낱 왕족에 불과했다면 이러한 성군이 될 수 있었을까요?


이순신 장군은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이러한 장군의 모습 때문에 우리가 그를 더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고구려>를 통해 기억될 미천왕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낙랑을 멸하든 내가 죽든 둘 중 하나가 있을 뿐이다!!"


낙랑을 축출하고자 했던 왕, 그 출정식에서 이 왕의 외침은 그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 아닐까요?


고구려 미천왕을 기억해주세요. 그가 이륙하고자 했던 대제국 고구려의 모습과 되찾은 낙랑, 백성의 삶을 살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한 왕, 빼앗긴 조선의 땅을 되찾고자 했던 군주의 모습 그리고 고구려의 들판에서 들리는 말발굽 소리까지도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