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안개의 풍경 스가 아쓰코 에세이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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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 책을 펼쳐든 건 '밀라노'라는 어감이 선사하는 매혹적이고 황홀한 낯섦 때문이다.안 가본 곳에 대한 동경심은 강력한 호기심을 불어넣었고 나는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흡사 이륙하는 비행기에 앉은 느낌과 같았으니깐. 하지만 책에 착륙한 후 마주한 풍경과 분위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사뭇 달랐다. 밝고 왁자할 줄 알았던 새로운 세계는 저자의 말마따나 창에서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플라타너스의 가지 끝이 눈 깜짝할 사이 자취를 감추고, 끝내 굵은 줄기까지 짙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고 말할 정도로 자욱한 안개가 깔린 세계였으니 말이다. 안개의 풍경은 묵직하고 동시에 어둡다. 처음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경쾌하고 밝은 줄 알았던 새로운 세계가 '안개'로 기억된다는 사실이 말이다.


하지만 1960년대에 여자 홀로 유학길에 올라 13년 넘게 이탈리아 밀라노에 거주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녀의 삶은 안개와 같았을 테니 말이다. 타국에서 이방인의 삶이란 무엇 하나 장담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자 아득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손에 잡힐 듯 말 듯 한 아슬아슬함 사이에서 우정과 사랑, 이별을 오롯이 짚어내는 일이 어찌 쉬웠으랴.


무심결에 읽었다면 아름답고 섬세하게 직조된 이국의 풍경과 유려한 문장에 감탄했겠지만, 한 겹만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시리도록 아름다운 슬픔, 삶을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의 흔적이 가득하다. 그녀는'안개가 그립다'고 말한다. 지나간 추억은 좋고나쁨을 떠나 반질반질 윤이 난다지만, 희뿌연 안개를 벗삼아 수없이 다독였을 외로움은 뼈에 사무쳤기 때문이 아닐까. 이방인의 향이 가시자 청춘이 무르익고 갸날픈 한 소녀가 한 인간으로서 굳건히 선 모습을 마주한다. 삶의 나이테는 더욱 두터워지고 단단해졌다. 우리네 삶또한 이렇게 자라고 있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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