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한 팀이 된 여자들, 피치에 서다
김혼비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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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팀에 들어와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은 축구인들끼리는 관계에 이상이 생기면 가장 먼저 패스에 민감해진다는 점이다. 

"일단 오늘부터 운동장을 서른 바퀴씩 뛰세요. 처음에는힘들어서 한번에 서른 바퀴 못 될 거예요. 한 열 번은 멈추어야할 텐데, 그렇게 멈추면서라도 무조건 서른 바퀴를 채우는 거예요. 그렇게 1년 꾸준히 뛰어 보세요. 그래서 서른 바퀴가 비교적 문제없을 정도의 체력이 되잖아요? 그럼 기술들이 다 따라붙게되어 있어요."

비스듬하게 일그러진 그물코 모양의 그림자가 내 마음에도 드리웠다. 사실 나는 경조사에 단체로 돈을 걷는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의 같은 사건이 사람들에게 가닿을 때는 제각각 다른 모양의 그릇이 된다. 모양 따라 흘러 담기는 마음도다르고 그걸 세상에 내미는 방식도 다르다. 아무것도 안 담겨서 내밀 게 없는 사람도 있다. 그걸 무시하고 몇 명이 주도해서
‘사람이라면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한 도리다.‘ 라고 자신의 개인적 신념을 일반화시켜 타인의 도덕관념을 자극하는 방식이 싫다. 도덕으로 색칠한 하나의 그릇을 들이밀며 다른 그릇을 내미는 사람에게 윤리적 심판을 하려 들거나 윤리적 가책을 짐 지우려는 거, 질색이다. 그냥 각자의 마음, 각자의 방식, 각자의 상황에 맡기면 안 되나, 현재 진행형인 경조사에 일괄적인 규칙을만드는 것에도 규칙 바깥에 있고 싶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아직 벌어지지 않아 어떤 형태일지 모르는 미래의 경조사에 규칙이나 관례를 만들어 놓는 건 더 불합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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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들은 곧 여행을 잊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은 사무실로 돌아갈 것이고, 거기에서 하나의 대륙을 몇 줄의 문장으로 압축할 것이다. 배우자나 자식과 다시 말다툼을시작할 것이다. 영국의 풍경을 보며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다. 매미를 잊고,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보낸마지막 날 함께 품었던 희망을 잊을 것이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다시 두브로브니크와 프라하에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해변과 중세의 거리가 주는 힘을다시 순수한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내년에는 어딘가에 별장을 빌려야겠다는 생각을 또 해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다. 우리가 읽은 책, 일본의 절,
룩소르의 무덤, 비행기를 타려고 섰던 줄,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 등 모두 다. 그래서 우리는 점차 행복을 이곳이 아닌 다른 곳과 동일시하는 일로 돌아간다. 항구를 굽어보는방 두 개짜리 숙소, 시칠리아의 순교자 성 아가타의 유해를 자랑하는 언덕 꼭대기의 교회, 무료 저녁 뷔페가 제공되는 아자나무들 속의 방갈로, 우리는 짐을 싸고, 희망을 품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 욕구를 회복한다. 곧 다시 돌아가 공항의 중요한 교훈들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만 하는것이다.

 비행기가 눈앞에 있지만 다가갈 수 없다는 사실, 앞으로 48시간 동안 도쿄에 갈 수 있는 비행기 좌석이 없다는사실, 하루 종일 잡혀 있던 도쿄의 여러 가지 약속이 다 취소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 남자는 두 주먹으로 카운터를내리치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 소리는 멀리 터미널 서쪽의WH 스미스 아웃렛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나는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가 네로 황제를 위하여 쓴『분노에 관하여(On Anger)」라는 논문, 그중에서도 특히분노의 뿌리는 희망이라는 명제가 떠올랐다. 

나의 고용주는 제대로 된 책상을 하나 놓아주겠다는약속을 지켰다. 사실 이곳은 일을 하기에 이상적인 장소였다. 이런 곳에서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하겠냐는 생각이 들겠지만, 오히려 그런 어려운 작업 환경이 글을 쓰는 것을가능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일하기 좋은 곳이 실제로도 좋은 곳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조용하고 시설이 잘 갖추어진 서재는 그 흠 하나 없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실패에 대한 공포를 압도적인 수준으로 높이곤 한다.

그러나 수하물 찾는 곳은 공항의 감정적 클라이맥스의서막일 뿐이다. 아무리 외롭고 고립된 사람이라도, 아무리인류에게 비관적인 사람이라도, 월급을 줄 걱정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도, 도착했을 때 누군가 의미 있는 사람이 맞으러 나와주기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일을 하느라 바빠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고 해도, 우리가 애초에 여행을떠난 것에 불만이 있어 보기도 싫다는 말을 했다고 해도,
지난 6월에 우리 곁을 떠났거나 12년 반 전에 죽었다고 해도, 그래도 그들이 나와주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그냥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고 우리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느끼게 해주려고(우리가 작은 아이였을 때 누군가 가끔이라도 그렇게 해주었을 것이며, 그런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절대 여기까지 올 힘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나와주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몸을 떨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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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와 마찬가지로 운전자는 일인칭이다. 자동차는 그렇게 설계돼 있다. 운전을 하는 자기 모습을 보는 것보다 차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주시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행도 마찬가지. 멋진 곳에 가서 놀라운 것을 경험하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일인칭의 경험이다. 그런 아쉬움때문에 셀카를 찍어보지만, 셀카는 기본적으로 일인칭의 거울상으로 나타난다. 내가 렌즈를 보면 렌즈가 나를 찍는 것. 완벽한 삼인칭이 되지는 못한다.

그후로 세월이 십 년쯤 더 지났을 때는 상황이 더 나아졌다. 이제 영어판으로 나온 책도 여러 권이 되었고, 그 밖에도 여러 언어로 소설이 번역되어 여행지의 서점 외진 구석에서라도 내 책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노바디라는 느낌은 여전했다. 작가가 되기 전에는 오히려 여행을 떠나면 특별한 뭔가가 되는 느낌이었는데 작가로 자리를 잡고 난 뒤에는 그 반대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내가 누구인지를 나도알고 다른 사람도 아는데, 해외에 나가면 내가 누구인지를나만 아는 것 같았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자기만 아는 상태가 지속되면 키클롭스의 섬으로 쳐들어가는 오디세우스와 비슷한 심리 상태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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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어가 참 거칠다고 느꼈어요. 연장자는 나이 어린 사람을 쉽게 하대합니다. 혹은 나이보다도 계급에따라 말의 태도가 달라져요.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언어 사용이 당연히 여겨지는데 이런 언어 태도에 불쾌했던 적이 꽤 있습니다. 아마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에 비해 라틴어는기본적으로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내려다보지 않습니다. 수평성을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죠.
과거 로마가 스페인을 정복하고, 북아프리카를 정복해 식민지로삼았지만 스페인이나 북아프리카 사람들은 로마에 지배당한다고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로마는 식민지 출신의 사람들 중 우수한 인재들을 사회 전반에 기용했고, 이들은 로마 제국의 경영, 경제, 군사 분야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언어는 사고의 틀입니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수평성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가 로마인들의 사고와 태도의 근간이 되었을 겁니다.

중세의 교육에서 주목할 것은 젊은 세대가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해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도록 하고, 그 과정에서 각자 자기 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의 정체성이 여기에 있다고 봐요. 대학은 취업을 위해 졸업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스스로에 대해 들여다보고 더 나아가 진리를 탐구하며, 자기 삶을 사랑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어야 합니다. 학생들도 대학생활 동안 맹목적으로 어떤 목표부터 세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우선해야 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세심하게 관찰해야 하죠. 

때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놀았다‘라고 말하며 자책합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말 그대로 논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요? 대부분 공부를 시작하면서 ‘열심히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또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 그 ‘열심히‘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해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나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이 나의 최선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동물은 성교 후에 우울해진다. 포스트 코이툼 옴네 아니말 트리스테 에스트. 그 의미는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자기 능력 밖에 있는 더 큰 무엇을 놓치고 말았다는허무함을 느낀다는 겁니다. 즉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개인적,
사회적인 자아가 실현되지 않으면, 인간은 고독하고 외롭고 소외된 실존과 마주해야 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제 마음을 한 겹 한 겹 벗겨보니 그가 제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행동과 말을 통해서 제 안의 약함과 부족함을 확인했기 때문에 제가 아팠던 거예요. 다시 말해 저는 상처받은 게 아니라 제 안에 감추고 싶은 어떤 것이 타인에 의해 확인될 때마다 상처 받았다고 여겼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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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낭떠러지에 선 인간의 등을 떠밀어버리려는 것을보게 된다면, 쓰고 싶은 시가 좀 달라질 것 같다. 제정신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주기적으로 벗었던 몽상이라는 모자, 그것을 왼손에 들고서 여기저기 인사하러 다니는 것도 그만둘 수 있을 것 같다. 남의 불행에 대하여 눈부셔하거나 황홀해하다가 눈꺼풀을 닫아버리는 일과, 나의 젊음이 뜨겁거나 아까워서 죽음의 관념을 가지고 놀아보는 일, 다 집어치울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지긋지긋해하지 않고 잘살 것이다, 얼음을 입에 물고 착실히 굳어가는 겨울의 허벅지처럼, 죽을 만큼 밉다는 말보다 죽을 만큼 슬프다는 말을진실로 믿으며, 나는 아직 그런 슬픔을 위로해본 일이 없는 것 같다.

 네 개의 계절이 있다는 것. 우리가 조금 변덕스럽다는 것,
감정이 많다는 것, 허물어지고 또 쌓는다는 것, 둘러볼 게 있거나 움츠러든다는 것, 술 생각을 한다는 것, 불쑥 노래를지어 부른다는 것, 옷들이 두꺼워지다가 다시 얇아진다는 것, 할말이 있다가도 할말을 정리해가는 것, 각각의 냄새가 있다는 것, 우리가 네 개의 계절을 가졌다는 것. _「네 계절, 」이병률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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