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예전에 읽었던 책인데.
ebook으로 이전 판본도 읽었고, 이건샘의 요약본도 읽었는데... 이번에 새로 읽은 개정4판은 또 왜 이렇게 새로운 건지.
물론 '미스터마켓' 이라던가 '안전마진' 등등 벤저민 그레이엄의 시그니처 워딩이 있기에 낯선것은 아닌데, 뭔가 모르던 책을 새로 읽는 기분이었다.
부록 까지 있던 마지막 페이지를 모두 읽고 나니 생각보다 짧은 느낌이다. 원래는 두껍디 두꺼운 벽돌책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좀 얇아졌다. 검색을 해서 살펴보니 김수진 번역가의 이전 판과 페이지수가 꽤 차이난다. 뭘까 궁금.
그렇다고는 해도, 믿고 보는 이건 샘의 번역은 그냥 국내 작가의 책을 읽는것 처럼 매끄럽다. 흔히 번역서를 읽다 맞닥뜨리게 되는 '으잉? 뭔소리지?'하는 문구가 1도 없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번역품질에 감탄하며 읽다 보니 '아 이건 선생님이 은퇴하시면 그땐 외국 투자서를 어떻게 읽나?' 하는 때 이른 걱정이 들 정도였다. 진심.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를 다시 읽으면서, 내가 벤저민 그레이엄을 꽤 오해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동안 벤저민 그레이엄이 순유동자산가치 이하에서만 투자 대상을 고르라고 하는, 고지식한 PBR 플레이만을 주장하는 편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선가 그에게선 배울만한 투자철학이 많지만, FANG이나 MAGA로 대표되는 기업들이 전고점을 뚫고 또 뚫는 요즘의 주식시장에서는 적용할 만한 내용이 없다고만 생각했다. 실제로 신과함께에 이 책을 가지고 출연했던 VIP투자자문의 최준철 대표도 요즘엔 NCAV이하에서 거래되는 우량주를 찾는것은 쉽지 않다고 인정하기도.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벤저민 그레이엄의 투자철학은 그런식으로 규정지어질 것은 아닌것 같다.
그레이엄이 투자를 하던 당시에는 요즘처럼 플랫폼 기업이라던가, 무형자산에 기반하여 막대한 이익을 내는 기업이 없었다. 그렇기에 당시에는 고성장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끊임없는 유형자산에의 투자가 병행되어야 성장을 지속할수 있었을 테고, 그러한 과도한 설비투자는 부메랑처럼 승자의 저주가 되어 성장성을 갉아먹는 결과가 되기 쉬웠다.
반면, 최근의 나스닥 시총 상위를 차지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설비투자에의 부담이 적다. 플랫폼 업체의 설비투자라고는 데이터센터의 하드웨어 투자 정도가 전부이다. 그나마도 이제는 클라우드 환경이 일반화 되면서 부담이 훨씬 적어졌다. 사업의 부침에 따라 얼마든지 설비 규모를 늘렸다 줄였다 하는것이 손쉽다. 무역장벽에 막히는 일도 거의 없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중국처럼 극히 일부의 공산국가를 제외하면 거의 제한없이 실시간으로 사업 확장이 가능하다. 최근에야 디지털세라고 해서 과세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기하급수적 매출 성장에 비해 각국의 장벽도, 국가별 과세에 대한 부담도 적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오히려 이러한 움직임은 더 가속화 되는중이기도 하고.
하지만 만약 벤저민 그레이엄이 투자자로서 현존하고 있었다면,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이해하고 적응하지 않았을까?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레이엄은 성장주 투자의 속성과 위험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조언을 한다. 아마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맞으며, 그가 주창하던 안전마진의 개념은 '유형자산 청산가치대비 저렴한 가격' 이라는 쪽에서 '시장의 장악력과 확장성 대비 저렴한 주식의 가격' 으로 자연스럽게 스핀오프 하지 않았을지. 그의 수제자 워런버핏이 애플과 아마존에 투자를 한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가 된다.
서점에는 '투자의 바이블' 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이 많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투자 성서의 자리는 이책 '현명한 투자자 개정 4판'에게 그 자리를 내줘야 할것 같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솔직히 이 책 한권만 읽고 읽고 또 읽어도, 어느정도 성과를 내는 투자는 가능할거란 생각이다. 그만큼 필요한 모든 내용이 책속에 가득하다. 물론 수치적인 측면에서의 예시 라던가 하는건 어쩔수 없이 고리타분한 냄새를 피할수 없지만, 그런 부분만 인정한다면 이 책이 '투자의 바이블'로 인정받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