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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멋진 휴식 - 32인의 창의성 대가에게 배우는 10가지 워라밸의 지혜
존 피치.맥스 프렌젤 지음, 마리야 스즈키 그림, 손현선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7월
평점 :
그때 이 책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양쪽 시야를 가리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마냥 일에 미쳐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안정적인 수입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번듯한 직장도 아니었고, 일감이 넘치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일은 닥치는 대로 도맡았고 누구든 무슨 일이든 제안이 있으면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내게 그만한 시간 여유가 있는지, 해낼만한 능력이 되는지는 두 번째였다. 나의 쓸모 있음에 기뻤고 크던 작던 성취감이 주는 중독에 빠져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보니 그랬던 것 같다. 어쩌면 지금도 그 연장선의 끄트머리쯤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읽는 내내 ‘그때 이 책을 만났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인터스텔라의 주인공처럼 책장 뒤에서 신호를 준다면, 과연 그 시간 속의 나는 타임오프의 지혜를 수긍하고 현명한 삶을 찾을 수 있었을까. 사실 당시에도 주변에서는 일을 좀 줄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발 담근 수많은 일꺼리 중 몇 개라도 좀 줄이라는 조언에서부터 뭐가 좋다고 안끼는 데가 없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당연한 것처럼 늘 새벽 두세 시까지 일을 붙들고 있기 일수였던 그 때의 나는 이 책이 권하는 워라밸의 지혜를 따라갈 수 있었을까.
하지만 역시 이 책은 지금이라 의미 있게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몇 해가 지나 40대 중반이 됐고 남은 인생과 살아온 과정을 조금씩 돌아보는 지금에야 절실히 느끼는 게 아닐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들 중 하나인 성찰 없이는 변화의 시작도 없는 법이니까.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하지 않는가.
개인적으로 시중에 넘쳐나는 각종 자기계발 서적은 멀리하는 편이다. 좋은 말이 가득하고, 책에서 말하는 대로 이제부터 성실하고 치밀하고 계획적인 나로 거듭나야할 것 같은 책들 말이다. 매번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의 나로 돌아가게 되는 일회성 각성제 같은 책들을 보면 괜스레 내가 너무 게으르고 나태하고 무능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싫었다.
엄밀히 말해 이 책 또한 자기계발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스스로를 다시금 채찍질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 책이다. 오히려 번아웃에 몰리지 않기 위해, 보다 창조적 활동을 하는 내가 되기 위해, 의미 있게 인간 본연의 일을 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타임오프, 즉 멈춤의 시간을 가지라고 말한다.
제목에서 자칫 오해할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멈춤, 휴식의 진짜 의미는 단순히 워라밸을 위해 일하지 않는 휴식시간을 늘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스스로를 하루하루 소진하며 번아웃을 향해 달려가지 말고 진정으로 창조하는 활동을 위해 두뇌에게 변화를 주라는 것이다. 꾸역꾸역 시간을 채우며, 당장 눈앞의 일감을 위해 밥 먹듯 하는 야근을 멈추라는 것이다. 불나방처럼 눈앞의 일을 향해 자신을 불태우지 말고 인간 본연의 창조하는 존재로 살기위해 일하라는 의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두고 “사람은 모름지기 필요하고 쓸모 있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하지만 고귀한 것을 더 염두에 두고 행해야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책에서는 오랜 역사 속 다양한 인물은 물론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이들을 포함해 32명의 타임오프 전략을 구체적 사례로 들며 근거를 보여준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살짝 나처럼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세계인 듯도 하여 거리감이 있기도 했지만,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각자의 처지에서 만들어낸 타임오프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독자들 또한 다양한 처지일 텐데, 아마도 물량 공세 같은 사례 중 적어도 몇 가지는 공감이 많이 될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1926년 포드가 주40시간 도입하고 100년이 다되어 가는 2021년 오늘의 대한민국은 주당 52시간을 겨우 법제화한 현실에 머물러 있다. 이런 현실에서 과연 타임오프가 언감생심 책속의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닐 수 있을까. 사회 전체가 인간적 노동과 창조적 활동을 보장해주는 큰 울타리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라는 고민이 생긴다. 호구지책이거나 일자리를 구하는 이들에게 있어 타임오프가 개인의 결단으로만 가능한 건 아닐테니 말이다.
어쨌든 이것저것 따지기 전에 나 스스로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일단은 미뤄뒀던 제주도 둘레길 트래킹을 당장 가야겠다. 배낭이랑 등산화가 어디 있더라.
※ 책만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