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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패티 유미 코트렐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채의 2020 첫 번째 소설,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에서는 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 헬렌이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이에 따라 동생의 갑작스러운 자살이 과연 무엇에 영향을 받은 선택인 것인지에 대한 추리를 시작하는 내용이 주된 플롯으로 담겨 있습니다.
동생과 헬렌 모두 생물학적으로는 한국인이지만 어린 시절 미국인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미국에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성장하는 과정에서 양부모에게 여러 핍박을 받으며 각자 타인들에 비해 보수적이고도 본능적으로 외로운 삶을 지향하는 태도가 생기게 됩니다. 성인이 되어 헬렌은 양부모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기 위해 뉴욕행을 결심하게 되고 뉴욕에 정착하면서부터는 가족들과의 연락이 거의 끊기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 갑작스레 들려온 동생의 죽음에 대한 소식에 헬렌이 느낀 감정은 당혹스러움과 더불어 끊임없는 자신만의 철학적 물음들이었습니다.
떨어져서 산지 꽤나 오래되었으나 간간히 동생을 맞이할 때 봐왔던 동생의 얼굴 표정, 분위기, 공기는 자살 소식과 너무 상이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헬렌은 동생이 몸담고 있던 양부모의 집으로 찾아가 동생의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풀려는 시도를 합니다. 연락이 거의 끊기고 난 뒤에 오랜만에 찾아갔음에도 미적지근한 양부모의 반응, 그토록 동생이 원치 않았던 가톨릭 방식의 장례, 전반적인 분위기, 친인척들의 태도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헬렌으로 하여금 동생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더욱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여러가지의 단서들을 통해 비록 자신이 원하는 명확한 답을 얻지는 못하나 동생이 남긴 자취들을 통해 동생이 어떠한 삶을 살고자 하였는지, 그 결과로서 주변인들에게는 갑작스러웠던 그의 자실이 자기 자신에게는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는지를 찾아가는 내용이 전개됩니다.
사실 책의 제목이 매우 유하고 유명한 디자이너가 제작한 책의 표지가 풍기는 고풍스러운 느낌때문에 자조적이고 사색적인 내용을 담은 책인 것 같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러나 표지를 넘기자마자 전개되는 극단적인 내용들과 주인공의 자극적인 독백들로 하여금 조마조마하고 추리 과정에서 읽는이마저 궁금증을 유발하는 플롯을 통해 특이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결말 부에서는 240페이지 가량의 분량에서 주로 설명된 것과는 달리 매우 짧고도 철학적인 문답으로 내용이 끝나면서 많은 여운까지 주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의 디자인적 측면에서 표지와 속지의 색의 조화가 너무 온화한 분위기를 연출하고는 있으나 표지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삭막함 또한 느껴져서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다시 책의 외양적 측면을 보았을 때 더 인상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