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배부른 식당
김형민 지음 / 키와채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몰랐는데, [AM7]에서 연재되었던 글모음집이다. [AM7]때 부터 그의 에세이를 읽었던 친구의 집에 있길래 읽게 되었다.

처음, '냉면 속 고향'이랄지, '추억을 구워드립니다' 등의 글제목들을 보면서 다소 간지러웠다. '가난' 과 '과거'를 컨셉포장한 책이야 팬시 테마 레스토랑이 라이프스타일의 퀄리티와 동일시되는 '웰빙 시대'가 아니더라도 늘 있어왔던 상술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소박한 손맛을 강조하다가 전통과 장인정신을 찬양하는 내용 일색이겠지, 하며 읽어 나가면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일단 감탄한 것이 저자가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풀어 내려가는 솜씨였다.

여기 소개된 맛집들의 음식처럼 담백하고 맛깔스러우면서도
단순히 맛집을 소개하거나 구태의연한 미덕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이 나라 소시민들의 삶과 정치와 문화 뒤켠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것들과 아름답지 못한 것을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하게 골라내는 '내공'이 보통이 아니었다(알고 보니 PD 이전에 여러 권의 에세이를 출판한 '작가'였다).

방위 설움은 방위만이 알아준다고, 방위들의 아지트에서 펼쳐지는 하루의 정경을 유쾌하면서도 따뜻하게 풀어 낸 <방위들의 천국>을 보며 킬킬대다가도, 지방 콤플렉스를 사심없고 순박하게 드러내는 삼합 아줌마가 주인공인 <삼합으로 어우러지기 위하여>를 보면서는 가슴이 애잔해지다가, 급기야 조선족 할머니와 콩국수 할아버지간의 정겨운 실랑이가 벌어지는 <고집 센 콩국수>에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면 오바일까?

아무리 소재가 좋더라도 넘치는 문체였다면 지나치게 기름진 음식처럼 몇 페이지 못 가서 물려버렸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절제와 긴장을 잃지 않으면서 균형잡힌 시각을 제공해 준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책 한권 읽고 정말 좋은 사람들을 배부르게 사귄 것 같은 경험은 흔치않은 것이다.

몇달 전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를 여행하다가 한 동네에서 우연히 십여 년간 동네의 '사랑방' 구실을 하는 음식점에 들른 적이 있다. 여행객으로선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건 푸짐하고 맛좋은 음식과 주인과 손님들, 테이블과 테이블, 일행과 일행의 경계가 없어 보였다는 점이다. 할아버지부터 걸음마를 간신히 뗀 아이까지 허물없이 즐겁게 어울리는 그 곳을 나오며 우리 나라에도 이런 터줏대감같은 주인과 사랑방같은 공간이 아직 있을까, 싶었는데 이 책에서 해답을 찾은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뒷면에 소개된 소개 맛집들의 전화번호 리스트가 있는 것을 보고 환호했다. 내가 사는 근방에도 한 곳이 있다는 사실에 이번 주말에 식구들과 한번 가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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