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술의 아름다운 경영 - 벤처 대부의 거꾸로 인생론
정문술 지음 / 키와채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서점에 가 유심히 보는 코너는 단연 베스트셀러 코너. 평소 관심도 없었던 경제경영서가 서너 권씩은 눈에 띄는 걸 보면 경제가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란 생각이 든다. 아침형 인간이니 한국의 부자들이니 하는 타이틀의 책들이 인구에 회자되는 것만 봐도 현 독서문화의 풍토가 교양보다는 처세가, 도의보다는 성공이 우선시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

 

시간관리나 업무효율, 마케팅 등의 경영 전략을 소개하는 책을 매뉴얼 형 경제경영서라 할

수 있다면 성공신화의 주역의 삶을 담은 책은 에세이형 경제경영서라 할 수 있을텐데 매뉴얼 형

이건, 성공기건 경제경영서의 목적은 단 하나, 성공의 길을 찾는 이들에게 허황되지

않은 성공의 ‘지름길’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특히, 성공한 인물의 일대기는 단순한

기술이나 공식에 머물지 않고 한 개인의 실제 이야기에 근거해 성공 도식을 도출한다

는 점에서 생동감과 진실을 맛볼 수 있다.

 

문제는 성공한 주역들의 라이프 스토리를 전개하는 데 있어서 연관성 없는 사실까지 결과적 성공을 위한 요소로 편집한다는 것이다. 민간인(?)의 입장에서 그런 식의 기술 방식에 거부감을 느낄 때도 많은데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수의 성공담이 일면 드라마틱하면서 일면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건 바로 그렇게 무리한 성공 도식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개인적으론 처세술 읽기의 목적을 실리성보다 스타의 판타스틱한 신변잡기로 여기게 된다.  

 

그런데 [정문술의 아름다운 경영]은 좀 달랐다. 이 책은 최근 자신의 기업을 가족이 아닌 직원들에게 물려주고 은퇴한 후, 카이스트에 자기 재산 수백억을 기부한 정문술의 회고록이자 자서전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된 건 어느 소개글에서 정문술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를 노욕(老慾)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늙은 자의 욕심이라, 이 말은 정문술에게 겉만 번지르르한 겸손의 예가 아니다.

 

그가 온 직원들이 울면서 말리는데도 결연히 은퇴를 선언한 것도, 은퇴 이후 회사에 어떤 식으로도 관여하지 않은 것도(심지어 은퇴 전까지 자신이 주도하던 연구소의 준공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카이스트에 수백 억을 기부한 것도 전부 노욕, 즉 자기만족의 발로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월든]의 데이빗 소로우가 자선은 이기적 자기만족이라고 했던 걸 기억했는데, 정문술은 소로우의 그 냉소를 긍정적 행동주의로 바꾼 것이다. 거기에서 진실의 울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처세술이 아니라 처세철학책이라고 할 수 있다.

 

처세철학임을 강조하는 건, 정문술의 성공과 진실을 작동하게 한 힘이 단순한 생존문제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고차원적인 자기만족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정경유착과 족벌체제를 당연시하는 기업이 절대다수인 현대 한국 기업문화에서 정문술의 경영은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문술의 아름다운 경영]을 한 장 한 장 읽어 나가면서 독자는 정문술의 아름다운 신화가 결코 위선이나 가공의 결과물이 아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쉽지 않은 정도를 걸어가는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정문술 자신이 가장 많은 유혹과 욕심에 시달렸다고 고백하고 반성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사회에서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도덕경영인인 그가 상도의의 기준을 초등학교 도덕책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그래서 거짓되게 들리지 않는다. 카이스트에 수백 억을 기부하기 전까지 내 돈인데 하는 안타까움에 시달렸지만 막상 기부하고 나니 그렇게 홀연할 수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도 진행형 무사무욕을 실감하게 된다. 그가 끝까지 놓지 않으려고 매달렸던 건 도전과 패기의 정신 이면에 공존하는 신중함과 절제력이다. 그는 그걸 8할의 자족이라고 말한다. 이것 또한 다른 경영 스타와는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결과보다 결과를 향한 과정을 즐길 줄 아는 경영인. 멋지지 않은가.

 

그래서 이 책은 물질적 성공을 위한 단기코스 매뉴얼이나 다름없는 유수 경영 경제서들과 질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단순히 기업인들이나 직장인들을 위한 지침서 이상의 읽을 거리라고 생각한다. 제목의 경영인생의 경영이자 욕심과 집착을 다스리는 경영이기도 하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직면하게 되는 가치와 문제점에 대한 진정한 방법론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걸 발견하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며 얻게되는 잔잔한 기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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