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구역 서울
정명섭 지음 / 네오픽션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우리의 것이 아님에도 우리 것처럼 익숙한 대상, 좀비.
국내에는 거의 드물지만 영미 드라마나 영화 들에서 좀비는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공포의 대상이자 동시에 조롱의 대상이다.
사람과 비교해 매우 낮은 지능, 걷거나 뛰거나 하는 단순한 동작만 반복하는
공격 본능에 충실한 좀비는 종종 사회적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 핵폭발이 일어난 서울 시가지를 누비는 것은 좀비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 그것들을 죽여야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주인공이 고뇌하듯, 그 죽일 것들이
이 책의 소개 내용처럼 한때는 내 가족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이 소설이 노정하고 있는 비극성이다.

 

물론 소설 속 배경이 현실로 전이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잉여'라고 부르면서 비꼬는,
동시에 연민하고 또 부정하는 그 대상이 좀비와 동류라고 한다면 과연 지나친 것일까?

소설은 트레저 헌터라는 이색 직업을 소재로 하고 있다.
절박한 심정으로 살아남은 운 좋은 자들의 의뢰품을 찾아오는 트레저 헌터.
그들은 목숨을 걸고 담장 너머 '폐쇄구역 서울'에서 그 의뢰품들을 찾아온다.
물론 좀비들과 트레저 헌터는 각자의 목적을 위해 서로를 사냥한다.
이는 약육강식의 처절한 생존 방식이며 동물로서의 공격성이 극에 달한 지점이다. 마치 오늘날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배우는 생존 방식처럼 말이다.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은 독자로서 이 소설의 결말을 말한다면 불완전한 해피엔딩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인공을 둘러싼 일련의 음모는 해결되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는 고뇌하고 트레저 헌터로서 의뢰품을 찾아 목숨을 내거는 묵시록적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작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좀 더 내면화시킨다는 점에서 의식적 성장을 거둔 주인공의 모습에 책을 다 읽는 동안 가졌던 불안을 살며시 내려놓는다.

 

물론 이 소설이 지니고 있는 단점도 있을 것이다.
낯설지 않은, 좀비 세상이 가져다주는 익숙함이 살짝 불편할 수도 있고 중간에 삽입된 상황 설명이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차치하고 볼 때 이 소설은 매력적인 한 편의 좀비 스릴러로 볼 수 있다.
한 방에 날려버릴 더위는 없지만, 소설 속 현실과 현실의 현실을 비교하는 참맛을 가진 소설이라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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