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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의 역사
라나 톰슨 지음, 백영미 옮김 / 아침이슬 / 2001년 7월
평점 :
품절
필자는 종교, 의학적 압력이 자궁에 어떻게 가해졌는지를 사람들에게, 특히 여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책제목 <자궁의 역사>는 곧 '자궁 수난의 역사'요, '자궁 수난의 역사'는 곧 '자궁'으로 상징되는 '여성 수난의 역사'임을 알겠다.
나는 히스테리의 어원이 자궁인줄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자궁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히스테라가 영어 히스테리의 어원이라니. 그래서 자궁을 갖고 있는 여자는 늘 히스테리를 부리면서 살아간다니.
자궁에 관한 고대의 유명한 사람들이 한 말이 더 가관이다. 철학자 플라톤은 '자궁은 아이를 생산하고 싶어하는 짐승 안의 짐승이다. 사춘기 이후 너무 오랫동안 자궁을 방치해놓으면 몹시 괴로워하며 몸 속을 돌아다니다가 호흡을 막아 극심한 고통을 가져온다'라고 말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역시 자궁이 여자의 몸 속을 돌아다니다가 다른 장기와 충돌함으로써 병을 일으킨다고 가르쳤다. 스스로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자궁이 간에 가서 부딪치고 위장을 때리고 췌장을 짓눌러서 통증을 유발하고 폐를 압박해서 호흡곤란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중세의 의학자들은 '자궁은 일곱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다, 자궁의 내부는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털로 뒤덮여 있다'고 책에 썼다. 르네상스시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수태 이후 월경 혈이 유방으로 가서 젖의 분비를 돕는다고 믿었고, 또 이 시대에 자궁은 전체적으로 페니스 비슷하게 생긴 기관으로 인식되었다.
바로크시대에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마녀사냥에 열중했는데 대부분의 산파들을 마녀로 몰았다. 기형아가 태어나면 산파에게 원인을 밝히라고 요구받았다. 남자 외과 의사가 여자 산파에게 경쟁심을 느끼고 있었던가 ? 아, 마녀사냥은 남성의 산부인과 지배와 궤를 같이하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17세기 들어서야 겨우 자궁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 '붙박이 장기'로 인식하게 되었다.
계몽주의시대에 루소는 여자들을 단지 남자의 쾌락의 도구로 생각했다. 루소는 그의 유명한 <에밀>에서 '여자는 특별히 남자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창조되었다. 여자는 타인에게 기쁨을 주고 순종하도록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여자들은 남자의 분노를 돋우지 않도록 입 속의 혀처럼 굴어야 한다.' 라고 말했다. 이성의 가치를 외쳤던 시대에도 여자들을 이성의 주인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인본주의에서의 '사람'은 오직 남성들이었고, 천부인권의 '사람' 또한 오직 남성만을 의미했던 것이다.
20세기 들어와서도 자궁의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이 시기 역시 침실에서 분만실에 이르기까지 오직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였고, 자궁에 대한 남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계속되었다.
포스트 모던 시대의 자궁의 사정은 어떠한가 ? 제왕절개를 보자. 제왕절개는 의사의 골프경기가 없는 때에 태어나도록 엄마에게 호르몬을 주사한다. 제왕절개는 친절하게도 아기의 생일이 식구들과 겹치지 않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제왕절개가 의사들의 재정적 이득과 관련 있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하기야 인간이 의료기관의 상품이 된 마당에 의사들의 재정적 이득을 우선한 결정은 여성만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지만. 수세기에 걸쳐 '남자'의사들은 '여자' 환자들에게, 여자의 자궁에게 신처럼 군림해 왔으며 그것은 지금까지 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필자는 '생각실험'을 제안하고 있다.' 필자의 '생각실험'이, 가정이 우스운가 ? 말도 안 되는가?
만일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월경기간 동안 보건휴가는 말할 것도 없고, 아마 온갖 잘난 척을 다하면서 난리 법석을 떨 것이 틀림없을 거라는 우스개가 있다. 우선 생리대에 매겨지는 부가가치세만이라도 내려, 평생 동안 몇 년이라는 기간을 월경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의 처지를 공감해보자는 여성들의 요구에 '여성'의 모든 정책을 결정하는 이 세상 잘난 '남성'들은 아직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