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황제 역사 청문회
이태진.김재호 외 9인 지음, 교수신문 기획.엮음 / 푸른역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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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 있어서 일제 식민지시대는 매우 독특하고 중요한 시기이다. 이 지역에서 ‘한국인’이라는 역사적 종족 집단이 형성된 이후 처음으로 정치주권이 완전하게 다른 異종족 집단에게 넘어갔고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 또한 일본뿐 아니라 기타 외국세력에 대한 두려움과 동경이 교차하던 시기이기도 하였는데 이들 타자에 대한 인식과 반응이 이처럼 격렬하게 일어난 것도 처음이라고 하겠다.

開化와 近代化는 언뜻 보기에 비슷한 것 같지만 그 밑에 깔려있는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이 판이하다. 개화는 기존의 구조에 대해 골격을 유지하면서 말단부분을 변화시켜 적응할지, 기본적인 사상체계부터 고칠 것인지 하는 스펙트럼을 가진다. 반면 근대화는 ‘지금 이대로는 죽었다 깨나도 나아질 수 없고 저리로 가는 것이 역사적인 순리이므로 거스를 수 없고 거스르면 패배가 있을 뿐’이라는 의식에서부터 출발한다. 19세기 조선의 개화파가 말하는 ‘발전’이란 개념과 21세기 한국의 근대화 연구자들의 ‘발전’이란 개념의 차이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한국사학계는 식민사관의 극복을 위해 지난 수십여년간 고군분투하며 여러 가지 연구성과를 내었는데 그중 ‘내재적 발전론’은 현재 몇가지 점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내재적 발전론’이란 식민사관 중 ‘조선 정체성론’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론으로 실은 ‘일본의 내재적 발전론’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여겨진다. 문자 그대로 보면 내재적 발전론은 어느 특정 사회의 발전의 기초구조나 기폭제가 외부보다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에서의 내재적 발전론은 물론 일본이나 서구의 영향이 없었어도 조선은 자체적인 발전이 가능했을 것이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일부 논자들은 여기서 나가 조선시대에 자본주의의 맹아가 존재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한편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 식민지시대가 조선왕조와 조선민중에게 고통을 준 사실과는 별개로 한국사에 있어 근대화의 계기는 이 시기부터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웬만큼 급진적인 이가 아니라면 이를 토대로 ‘조선 정체성론’을 주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사실 어떤 학자도 자신이 ‘내재적 발전론자’나 ‘식민지 근대화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때때로 토론현장에서 반농조로 지칭하기도 하지만 기실 상대 주장의 명제를 정리하면서 붙여진 수식어이지 명확하게 주장되는 개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책은 고종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얘기가 시작되지만 실제로 ‘충격! 고종황제 4백원 비자금 파문!’같은 식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아니라 그 4백원이 어떻게 조성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가 그것이 의미하고 내포하는 대한제국기, 조선 후기와 일제 식민지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적 요구와 그에 대한 대응이란 문제를 말하고 있다. 결국 좀더 많은 자료검토와 후진들의 가열찬 연구활동을 주문하면서 논쟁은 일단락된다.

고종 개인에게만 시대의 조명이 모아지는 것이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계기로 한국근대사와 인간의 시대인식, 근대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다가갈 수 있다면 적절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제목과는 달리 고종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수시로 변하는 논의주제에 천천히 집중해본다면, 그리고 그때마다 느긋하게 가비차 한모금씩 해준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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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붉은 별 - 상 - 두레신서 10
에드가 스노우 지음, 홍수원 옮김 / 두레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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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snow의 ‘Red Star over China(이하 붉은 별)’는 미국 태생의 중국 특파원이던 필자가 1936년 당시 내전이 진행 중이던 중국 중서부의 바오안(保安)에 잡입하여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과의 회견과 필자 자신이 보고들은 여행기를 정리한 내용이다. 냉전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었던 남한 사회에서는 상당기간 금서로 분류되었다 80년대 말 해금조치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마침 내가 본 책은 그 당시 복제된 터라 종이의 질이나 번역된 용어들이 고스란히 당시를 반영하고 있던 것이 흥미로웠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 신입생 때로 당시는 학생운동권 선배들이 추천한 서적 중 하나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그보다 확고히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자였던 나에게 중국혁명사는 생소하고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책을 정독하기 전 까지는 말이다. 그전에 유시민씨가 ‘정리’한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서 홍군의 감동적인 대도하 장면을 읽었던 내게 이 책은 속편 같은 내용이었다. 비록 나와는 이데올로기 지점이 다르지만 그들의 장정 과정과 혁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분명 그런 열정 자체에는 거짓이 없다고 여겨진다. 그것이 사회주의에 호의적인 작가의 편견과 정당화라는 세례를 피할 수 없는 인터뷰 형식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말이다.

이후 근대중국사에 대한 나의 관심은 시간이 지나며 더 강해졌지만 불성실한 수업태도와 가벼운 엉덩이 덕분에 그다지 깊이 있는 이해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다시 ‘붉은 별’을 읽게 되었고 그간에 옅게나마 살펴본 내용들과 교차비교 할 수 있었다. 다시 검토하게 된 ‘붉은 별’은 이전보다 많은 정보와 강도가 떨어지는 감동을 주고 있었다. 사실 그간에 읽었던 딱딱한 논문들에 비한다면 ‘붉은 별’은 유려하면서도 깔끔한 문장을 구사했고 여전히 편향되었다고는 하나 덕분에 생생한 정보를 전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근대중국사와 중국혁명에 대해 분명한 想 을 정립하지 못한 나에게 ‘붉은 별’은 다시 한번 충동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리하기 위한 공부를 하라고 말이다. 아직 나에게는 ‘붉은 별’에 대한 서평을 할 만한 소양이 있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중국혁명에 대한 나의 입장을 정리해본다면 이럴 것이다.

혁명은 문제의식에서 나와 사상을 거쳐 총구로 전환된다. 혁명의 총구는 적을 부순 후 담론의 지배를 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하부구조는 토대로서, 언어는 도구로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근현대 중국에게 제기된 문제의식은 봉건구조를 타파하고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는 것이었고 이는 국민당과 공산당이라는 쌍둥이들에게 孫文이 내린 유시였다. 그에게는 국민당이나 공산당이나 중국혁명의 동지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애초부터 문제의식을 다르게 파악하고 있었고 이런 차이는 장차 혁명과정에서 분열로 이어졌다.

집안의 분열은 구성원들의 골육상쟁과 피폐로 이어지고 이웃의 참견을 부르게 된다. 더군다나 이웃에게 응큼한 속셈이 있다면 매우 위급한 상황이 전개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결국 10년간의 내전이 일본에 의해 말려지고(?) 다시 힘을 합쳐 외세를 물리치려 하지만 이미 형제의 골은 심해 서로 딴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일본과의 전쟁 와중에서도 양당은 분열되었고 심지어 상대를 기습하기도 했다. 일본의 패망 후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갔고 마침내 공산당이 오랜 내전에서 승리하여 국민당을 대만으로 축출하기에 이른다.

이후 국내에서 사상 혁명이 진행되며 숱한 오류와 반혁명이 위협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혁명은 진행형인 것 같다. 혹자는 마오 시대가 끝나며 혁명이 끝났다고도 하고 혹자는 2차 천안문 사태가 종결되며 혁명이 끝났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공산당은 중국국가를 독점적으로 통제하고 있으며 반체제분자들은 체제내화 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현재 중국의 안정과 번영에는 변혁의 움직임이 내재해 있으며 이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중국에서 혁명의 시대가 끝났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의 역동성과 불안정성은 혁명의 동력이었고 그 동력원은 아직도 존재한다.

손문은 생전에 삼민주의의 토대로서 서경에 나오는 ‘知難行易’를 인용했다. 과연 그럴 것이다. ‘신념의 강자’들에게 고난은 하나의 과정이고 그들이 이뤄낼 사회상은 그런 고난에 대한 보상기제로 충분히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쉬운 행동이 지혜를 구현하는 당위성이 되지는 못한다. 실제 중국혁명사의 내용은 실패와 오류로 점철된 정치의 연속이었다. 그 결과가 일정부분 성과를 거두었다고 해서 전체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긍정적인 부분을 계승발전하고 부정적인 부분을 비판도태 시키면 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과학적이고 진지한 접근이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붉은 별’이 그러한 작품 자체는 아니겠지만 오늘날 중국과 중국사에 관심있는 이들이 보아야 할 중요 참고문헌이자 사료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또한 ‘붉은 별’에 대한 보다 분석적인 연구결과들이 나와 당대사에 대한 통찰력을 발휘해 지금의 우리에게 지향점과 비판점을 제시해주었으면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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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치질서
김우현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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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국제정치國際政治(international politics)가 주권국가들이나 국제기구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정치현상을 말한다면 이에 비해 세계정치世界政治(world politics)는 지구사회의 국가간 현실정치 모습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가 작용의 움직임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데 비해 후자는 존재의 상태를 그 대상으로 한다. 우리가 국제협력,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여행, 세계지리라는 말을 쓰는 것은 이런 어감의 차이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국제정복'이란 말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세계는 정복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국제는 정복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에게 국제정치학이란 말은 익숙하나 세계정치학이란 말은 상당히 생경하다. 그것은 정치학같은 사회과학이 동적인 학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학문적 연구대상이 우파 일변도로 경도된 한국의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좌우의 기준을 어떤 기준의 변화정도나 방향으로 잡았을 때 대한민국 학문체계란 극우에 가깝다. 실제로 '세계정치'라는 개념을 강하게 사용하는 이들은 좌파에 해당한다. 그들에게 국제정치란 하나의 현실로 치환되어 세계정치가 되기 때문이다. 아마 어떤 이들은 눈치챘겠지만 이 둘은 태생적으로 장단점을 내포한다. 국제정치학은 어느 국제정치적 현상에 대한 서술과 분석에 유용한 반면 세계정치에 대한 거시적 전망이나 방향제시에서는 미숙하다. 세계정치학은 지구적 차원의 조망이나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할 수 있기는 하지만 개개 국제정치 상황에는 둔해보인다.

그런데 저자는 국제정치와 세계정치의 차이를 또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그 주장에 의하면 과거 국가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국가간 질서는 국민주권국가가 행위자이며 각자 간의 세력균형에 초점을 맞추는데 반해 앞으로의 문화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지역간 질서는 지역정부나 세계정부가 행위자이며 구성인자들의 질서유지에 초점을 맞춘다. 즉, 이 주장은 둘의 차이를 '문화'와 같은 가치기준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며 그 대상과 양태가 다른 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모습은 이 둘이 모두 나타나고 있는 단계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포용력이 없고 자기를 가지지 못하는 '나'는 다원적인 '우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흡수되어 버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세계정치질서(World Political Order)'는 세계정치 차원의 규범, 합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선 유럽과 미국, 중국, 일본이 전통적으로 어떤 세계질서를 구상하고 이를 현실화하려 했는가를 전반부에서 다룬 후에 후반부에서는 지금까지의 국민주권국가간의 국제관계가 변화하려는 모습인 지역통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세계화'라는 현상으로 나타나게 될 세계정치의 전망과 세계정치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우리가 휘둘리지 않을 수 있게 저자가 결미에 내세우는 두 가지 무기는 한글문화의 발전과 남북협력이다. 한글은 한반도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으며 외부세력과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고유의 문화이다. 구체적으로 소리글이라는 특징을 강화해 자음과 모음을 늘리는 연구를 제안하기도 한다. 남북협력은 살림을 합치는 차원뿐 아니라 외세의 시나리오에서 벗어나 '나'를 확립할 수 있는 기회이다. 갈라져 있다가 공동의 경제와 문화를 가지게 된다는 것은 덩치를 키운다는 것을 넘어 더 다양한 문화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 다양한 문화는 그 자체로도 구성원들을 풍요롭게 할 것이며 외부세력과의 경쟁력 자체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는 사회과학, 나아가서는 학문을 하려는 이에게 이론에 대한 기본적인 의심을 해볼 것을 말하고 있다. 이론이란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므로 현실을 따라간다는 것과 자기중심적이고 시공간에 제한을 받는 인간이 만드는 이상 그런 이론이 만들어진 배경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을 만든 사람의 세계에 갇혀 버린다는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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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쓴 중국 현대사 - 전쟁과 사회주의의 변주곡
오쿠무라 사토시 지음, 박선영 옮김 / 소나무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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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에게 '중국'이라는 말은 보통 4가지 상으로 생각되어진다. 첫째는 전통시대 역대왕조의 역사상(歷史像)이다. 둘째는 대륙(시장)으로서의 현재 모습이다. 셋째는 그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정치적 집합체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중화문명이라는 문화적 형상이다. 중국사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라면 첫 번째, '대륙진출'이라는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두 번째, 정치·군사적 분석 및 대응차원에서라면 세 번째, 그리고 문화분야 관계자라면 네 번째 형상을 떠올릴 것이다.

중국은 일개 국가단위를 뛰어넘어 문명이나 체제라고 까지 일컬어질 만큼 오랜 역사와 방대한 영토, 엄청난 인구를 가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에 압도되서인지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려 하기보다 매우 단순화시켜서 이해하고 있는데 앞에서 말한 4가지 상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이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닌 같은 존재의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망각한다. 중국에 대한 종합적이고 깊이있는 이해를 위해서 다양한 시각의 해설이 필요할 것 이지만 그러한 해설을 하나로 통합해서 단일한 이미지로의 중국을 재구성하는 것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역사란 구분될 수 없다는 간단한 명제를 우리는 가끔 잊어버리곤 한다. 과거는 현재와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현재를 구성하는 토대로서 존재한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른 존재인가? 10년전의 나와는? 비록 그 모습과 내용이 일치하진 않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같은 근원을 공유하고 같은 지향을 가진다는 점에서 동일한 구성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진행되었고 진행되고 있는 역사를 구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과거로서의 중국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중국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역사적인 중국에부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중국사에 대한 개설서는 꽤 된다. 문제는 어떤 각도에서 접근하냐이다. 많은 중국사 관련 서적의 경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전까지만 서술되고 이후는 사회과학 분야의 과제로 넘기고 있지만 이 책은 신해혁명 이후부터 1992년 남순강화까지 현대 중국의, 그 중에서도 역사적, 정치적 중국의 진행과 타국과의 비교를 시도하고 있다. 현실 중국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과 전개 및 쇠퇴를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진술하는 본문은 물론이고 사회주의 이념과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비교와 그 차이의 역사적 배경을 분석한 1장이나 아시아 사회주의 체제와 동구 사회주의 체제의 비교를 하고 있는 9장 모두 놓쳐서는 안될 부분이다.

저자는 일본 전공투 세대답게 중도 좌파로 파악되는데 중국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서술과 비판은 물론 제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해악과 결과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과연 사회주의 체제는 파산했지만 그 이념까지 폐기할 만한가. 비록 내가 사회주의자는 아니지만 말미에 나오는 저자의 이런 생각에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되며 고도로 국제화된 민주주의만이 사회주의와 지구를 구할 것이라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와본다면 어떨까. 중국이 완전히 사회주의 이념을 버리고 순순히 체제 변환을 무리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북한 정권 역시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체제 전환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역사적인 북한에 대한 서술과 분석이 절실하다 여겨진다. 현재 역사 전공자들 중에 북한현대사에 대해 이정도는커녕 독립적인 연구가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서 평화체제와 남북화해, '민족적 과제'인 통일을 어찌하려는지 의심이 된다. 설사 그런 의도가 아니더라도 학술연구자로서 흥미로운 주제가 아닌가.

이런 문제까지 던져주는 만큼 이책은 장점이 많다. 굳이 문제제기를 한다면 개설서치고는 '상당한' 배경지식이 요구된다는 점과 충분한 논거가 제시되지 못한 점이다. 배경지식이 요구된다는 말은 전통 중국사회와 일본사회의 비교부터 신해혁명의 배경, 근대중국의 과제, 국민당과 공산당의 차이, 일본의 침략과 대응, 국공내전과 한국전쟁, 소련과의 갈등과 문화대혁명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단락 하나씩만해도 몇십권의 연구서들이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너무 소략한 서술 때문에 중국 현대사에 대한 일체의 지식없이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핵심적인 부분을 추려서 말하는 저자의 능력에는 감탄을 보내지만 초심자에 대한 배려라는 측면에서 완전한 개설서라 보긴 힘들다. 논거 역시 같은 의도에서 볼 수 있다. 참고서적을 통해 상세한 논거를 말하고 있긴 하지만 내용이 조금 늘어나더라도 충실한 서술을 했었더라면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기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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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국가와 전쟁 나남신서 508
박상섭 / 나남출판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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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역사학계, 특히 국사학계의 주요 관심대상 중 하나는 '근대화'였다. 이는 한국의 역사적 경험에서 얻어진 교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쇄국정책으로 대외관계에 있어 폐쇄적이고 수동적이던 조선 말, 개항과 더불어 서구의 문물과 사상이 밀어닥치며 우리 선조들은 순식간에 이에 압도되었다. 더군다나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응하기도 급급하던 이들에게 이를 우리 나름의 눈으로 이해하고 소화해내기를 바란 것은 무리일 것이다.

20세기 한국사회에 던져진 공동의 목표는 바로 '근대화'와 '독립'이었다. 해방 이후 각기 다른 방법으로 '근대화'와 '독립'을 추구한 우리는 남북으로 갈려야 했고 전쟁을 겪었다. 그 이후에도 남북은 모두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경쟁했다. '근대화된 국민(민족)국가'라는 청사진은 21세기의 첫해인 오늘에도 우리에게 유효한 목표라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개념이 만고불변의 역사적 법칙이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어떻게 이런 개념이 나타나고 정리되었는지 살펴보는 과정이 먼저라고 본다. 사실 '모던'과 '내셔널' 개념 자체의 근원은 서구 유럽사회이다. 중세 이후 유럽 사회의 발전 과정을 후세 학자들이 연구정리하면서 형성된 이들 개념은 非 서구사회에 대해 서구사회가 가진 경쟁력의 원천으로 인식되었고 따라서 비 서구사회의 지식인들은 이들을 '실천'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런 실천 속에서도 이들 개념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한 연구는 계속되었고 계속되고 있다. 그 핵심을 자본주의와 같은 경제적 관계에서 찾는 이들도 있고 독특한 서구 문화의 일종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근대국가와 전쟁』의 박상섭은 이를 대내외적인 군사적 관계에서 바라보며 역사사회학 계통의 정치·군사사 전공자들의 자료와 문헌을 참고하고 있다. 역사사회학이나 군사사 자체의 국내 기반이 취약한 현실에서 외국학자들의 문헌에 의존해야만 한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만큼 국제정치학의 조류, 특히 서구 쪽의 근대유럽연구 현황을 알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근대국가의 양적, 질적 발전을 전쟁과 관련된 효과적인 자원동원 여부와 연결시키는 저자는 근대 국제체제(국가체제)란 근대국가들이 탄생한 이후 선택된 것이 아니라 그 성장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난 일면이라 역설하며 그 유기적이고 역사적인 진행과정을 주목케 한다. 이는 곧 한국의 경우와 연결되어 생각되는데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가화 과정 역시 서구 유럽의 '국가화'와 유사한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다.

국가의 자원동원 능력을 세가지 부분에서 지적하는 대목이 있다. 첫째, 효과적으로 자원을 추출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행정기구가 존재하는가. 이는 통일된 영토국가와 관료기구를 말한다. 둘째, 사회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복종동기가 존재하는가. 이는 자원제공에 동의할 만한 반대급부 즉 방위, 사법, 공공서비스, 정치참여 확대 같은 자원의 지속적 공급을 보장할 계약조건을 말한다. 넓게는 민족주의나 애국심 같은 이데올로기도 포함된다. 셋째, 실제 자원의 양과 질을 일정 수준 이상 공급할 수 있는 사회적 생산체계가 존재하는가. 이는 자원동원의 방식이나 그에 대한 저항의 정도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으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얼마나 발달했는가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책은 근대국가화를 군사적 관계에서 분석한 몇 안되는 국내서적이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정치학이나 역사학, 군사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저자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 후 육사 교수를 거쳐 모교에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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