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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요시다 슈이치.
일본 작가라하면 에쿠니 가오리, 츠지 히토나리, 요시모토 바나나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오쿠다 히데오.
요시다 슈이치라는 작가 이름은 처음 듣는데 <악인>이라는 소설로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유명한 작가였다.
습관적으로 책을 읽기 전에 작가 소개나 머리글을 꼼꼼히 살펴보는데,
68년도에 대학을 졸업했다는 대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68년도에 태어났다고 하면 모를까, 대학을 졸업했다면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작가임이 분명하다.
내 고정관념에 의하면 그 나이대의 작가들은 자전소설 혹은 대하소설을 집필하는데 열을 올릴 것만 같았는데,
연애소설이라니 뭔가 안어울릴듯 하면서도 기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책 표지에 '이제 다시 연애다!' 라는 구문을 보고 한참을 생각했다.
왜 이제 다시 연애일까 라고.
다 읽은 지금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생각보다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책 표지는 뭔가 조금 어지러운 듯하여 책 내용이 혼란스러운 사랑이야기는 아닐까 라고 고민했다.
하지만 일본의 연애소설 정서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굉장히 평이하고(맞는 표현일까?), 잔잔하면서도 일상적인듯 하다.
<사랑을 말해줘> 역시도 기존 일본 연애소설과 같이 정적이고 잔잔했다.
우리나라의 연애소설은 진행이 꽤 빠르고, 주요 사건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은데
일본소설은 대체로 주인공들의 감정이나 그 감정으로 인한 미묘한 갈등을 세세하게 묘사한 것 같다.
그래서 어떨 땐 읽고 나서도 마음의 울렁임이 없는 일본소설이 좋을 때가 많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슌페이와 귀가 들리지 않는 교코의 사랑이야기.
우연히 공원에서 만나서 사랑을 시작하는 그들.
자신의 일에 누구보다 적극적인 슌페이와 늘 그의 곁에 머물러주는 교코.
요즘 급박하고 시들시들해진 마음으로 읽어서 그런지 큰 너울과 같은 느낌보다는 바닷가에 던져진 돌맹이의 여운이랄까......
듣지 못하는 여인을 사랑하면서 겪게 되는 소통의 문제점..
문제점이라고 할건 없지만 교코의 말대로 떠들면서 해소할 수 있는 어떤 감정들을 추스려야만 한다는 게 어쩌면
슌페이에게는 너무 힘들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티비나 영화에서 나오는 이러한 이야기를 보면 그저 아름답고 장애를 함께 극복해 나간다는 결론으로 끝나고 마는데
결국은 그건 단면적인 부분이고 실제로는 슌페이와 교코처럼 소통의 어려움을 느낄 것 같다.
글로써 소통하며 최소한의 감정만 표현해야한다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결국 어떤 감정인지 확실히 알순 없지만 교코가 곁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슌페이와 그러한 슌페이를 이해하는 교코.
세기에 한번쯤 있을 격정적인 사랑은 아니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고 서로를 천천히 깨달아 간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했다.
일에 치이고 몰두하면서 교코와의 소통을 답답해하며 조금 멀어지지만 결국은 곧 다시 돌아갈 곳은 교코라는 것을 깨닫고
떠난 교코를 찾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며, 사랑은 꼭 말로 소통하고,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다.
물론 말로 시작하고 말로 모든것을 이루어왔던 사랑이 아니었기에 서로는 마음으로 그리고 느낌으로 소통하지 않았을까.
글을 읽다보면 일에 관한 스트레스나 말로 풀수 있는 그런 답답한 심경을 굳이 적어서 교코를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슌페이.
가끔 교코를 귀찮아 하는 듯 하기도 해서 밉기도 했다.
그래서 나중에 사라진 교코를 못 찾고 헤맬 땐 얼마나 기뻤던지...
'그래, 없을 때 존재의 소중함을 좀 알아야 해!' 라고 꾸짖어 주고 싶었었다.
돌아온 교코나 교코의 존재를 새삼 다시 깨달은 슌페이나 그들의 사랑에 대해 한층 더 성숙해지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제목이 무엇을 말하는지 마지막 장을 넘기며 알 수 있었다.
'사랑을 말해줘...'
초 여름..
지겹고 나른한 무더위가 시작될 듯한 시점의 느낌이 드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