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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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3주라는 긴 시간 동안, 그리스 서사시를 한 편을 읽었다. 그 이름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다.

<일리아스> 안에는 성경과 삼국지에 비견할 만큼이나 징글징글하게 많은 장수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들은 서로의 목적을 위해 싸우지만 그 싸움은 인간계로 그치지 않는다. 올림푸스 산에 있는 그리스 신들은 전쟁에 참여한 인간 중, 자신이 아끼는 인간을 돕는 것으로 트로이아 전쟁에 개입하게 되며 이로 인해 신들 역시 양갈래로 나뉘어 싸우게 된다. (물론 그 중심에는 인간 아킬레우스와 신 제우스가 위치한다)


흔히 '트로이'하면 트로이 목마와 아킬레우스를 떠올린다. 2004년에는 볼프강 페터젠이라는 감독이 트로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적 감각에 맞춘 영화를 세상에 내놓기도 했다.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영화 <트로이>를 반복해 보며 호메로스의 원작과 비교하는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어떤 부분은 원작을 충실히 표현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대중 입맛에 맞게 잘 각색해 놓았다. (충분히 그걸만하다. 몇 천년전의 작품을 사실 그대로 재현한다가는 대중들의 따돌림을 받을테니까)



02.

호메로스는 <일리아스> 초반에서부터 등장인물들에 대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어디서 태어났고, 누구의 자식인지 그리고 어떤 재주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명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한다. 예로부터 구술로 전해져온 내용들을 서사시라는 장르로 멋지게  완성시킨 호메로스 신묘한 재주에 놀랄 뿐이다. (이는 839페이지나 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나가는데 있어 의지력을 발휘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기도 했다)


사실 현대에서 호메로스의 독창성을 논할 때는 작품의 소재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솜씨, 이를테면 플롯, 문체, 오묘한 표현, 인생의 깊이를 꿰뚫어보는 통찰력 따위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런 측면에서 호메로스의 <일리어드>와 <오뒷세이아>는 방대한 분량과 거창한 구상 때문에라도 짤막한 작품처럼 이음새 없이 매끈하게 이어붙인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작품해설 중에서) 


호메로스의 위대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호메로스는 모든 것을 다 담으려는 욕심 때문에 이야기의 초점이 흐려지거나 재미없어지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호메로스는 트로이아에서 일어난 9년 동안 일어난 일을 단 50일 동안의 사건으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헥토르가 죽은 후 트로이아 전쟁이 일어난 기간은 단 며칠로 압축시킴으로써 사람들에게 흥미롭고 재미나게 읽혀지는 서사시로 남아 있게 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을 통해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03.

이 책을 읽음으로써 교정된 첫번째 사실은 파리스가 헬레네와 도망치는 전쟁의 서막부터 트로이 목마가 도성 안으로 들어와 트로이아가 몰락하는 모든 내용이 <일리아스>에 담겨진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트로이아 서사시는 총 8편의 서사시로 구성되어 있는며, 그 첫번째는 파리스의 심판에서 그리스군의 트로이아 도착까지를 취급하고 두번째가 이번에 읽은 일리아스이며 세번째는 아킬레우스의 죽음 그리고 나머지는 그 이후의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기록했다는 점이다. (작품해설 중에서) 


이야기가 점점 진행되면 될수록 <일리아스>의 신들은 사소한 이해관계 때문에 편을 갈라 전쟁에 개입함으로써 인간의 전쟁이 아닌 트로이아를 둘러싼 신들의 전쟁으로 비춰지게 된다. 심지어 신들끼리도 서로 속이고 싸우다 다치기까지 하는데, 이 부분은 책 뒷편의 작품해설에서 좋은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신의 개입은 호메로스가 신들의 자의와 정의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천병희씨는 이를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음을 제시한다. 서사시는 귀족계급을 위한 문학이기 때문에 서사시에 등장하는 신들은 아무런 도덕적 제약을 받지 않는 자유롭고 충만한 삶을 누리는 보다 위대한 인간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해서 귀족계급이자신들의 생활 태도를 의도적으로 이상화한 데서 비롯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작품해설에 중에서)  

좋은 해석이다. 천병희씨와 말로 그리스 문학에 관한 국내 최고의 권위자이다보니 그의 해석에 의심을 품기보다 탄성이 먼저 일어난다.



04.

<일리아스>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해도 아킬레우스다. 헥토르도 굉장히 매력적인 남성이자 가정과 국가에 충실한 모범적 영웅이지만 그래도 전장의 승패를 쥐고 있는 건 살생을 위해 신에게서 태어난 인간병기 아킬레우스다. 아킬레우스는 참전하기 전 부터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 이는 어머니와의 대화에서도 많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킬레우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그저 자신의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이에 대해 천병희씨는 다음과 같은 해석을 곁들여 놓는다.

호메로스적 인간은 외계(밖의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데,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자기에게 주어진 몫, 운명이라면 죽음조차 흔쾌히 받아들인다. 일리아스에서 보여지는 아킬레우스의 모습은 이를 전형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인간은 주어진 가능성 안에서 자신이 원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행동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작품해설 중에서)


신이 인간을 돕기도 하고 방해하기도 하는데, 호메로스에게는 이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신의 개입으로 훌륭한 인간, 용감한 인간이 되느냐 마느냐만을 문제로 보고 있다. 또 당시에 추구하는 최고의 덕목은 명성이었다. 명성만이 모든 것을 보장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양심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기에 명성만이 유일한 가치 척도라고 말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탓하지 않고 주어진 가능성 안에서 무엇이 최선이고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명확히 안다는 사실은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철학적 사유였고 이 질문에 대한 무게감은 꽤나 컸다.



05.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에게 던져진 사과 하나로 인해 시작된 트로이아 전쟁은 결국 트로이아의 멸망을 가지고 왔다. 그 과정에서 아킬레우스와 핵토르라는 멋진 영웅들을 사람들은 기억한다. <일리아스>를 단순히 이런 줄거리를 담은 한편의 그리스 서사시로 알고 있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천병희씨가  책 뒤에 덧붙인 작품해설은 호메로스와 <일리아스>가 가진 매력을 쉽게 설명하고 있어 그 유익이 무엇보다 좋았다. (부록까지 893페이지나 되는 바벨같은 이 책을 들고 다니며 꾸준히 읽은 보람이 느껴진다.)


천병희씨의 <일리아스>를 읽음으로 고대 그리스인들의 우주관과 인간관에 대해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정식으로 고대 그리스 문학작품을 읽어냈다는 자부심은 1+1처럼 따라왔다.




작품을 통해 알게 된 이색적인 사항들.

1.

<일리아스>에서는 반복적인 문구들이 꽤나 많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훌륭한 정강이받이를 댄 아카이오이족'이라든지 '훌륭한 무구들이 그 위에서 울렸다'라든지, '어둠이 그의 눈을 덮었다'라든지 하는 문장들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이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무수히 많다.


2.

전투를 하다가 적장의 목을 베고 나서는 패장이 장착한 무구(Armor)에 굉장히 집착을 많이 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 무구에는 온갖 화려하게 세공이 되어 있는 값진 것일텐데 왜 안 그렇겠는가? 현대물(영화, 소설)등에서는 그런 부분이 치졸하게 느껴졌는지 대부분 이를 표현하지 않는다.

무구라는 키워드는 작품내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며 명예와 더불어 장수들이 가장 우선시 하는 전리품이자 승리에 대한 상징물이기도 하다. 심지어 헤파이토스가 아켈레우스를 위해 만들어 준 최고의 무구를, 아킬레우스 사후에 오뒷세우스와 아이아스가 결투를 벌이기도 하니까. 무구에 대한 호메로스의 표현은 새로움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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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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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오르한 파묵은 평생동안 동서양의 문명이 충돌하는 위치에 서 있는 자신의 조국, 터키에 대한 정체성을 끊임없이 껴앉고 살았으며 그 생각을 표현한 작품인 <하얀 성>은 결국 그에게 터키 최초의 노벨문학상이라는 영예를 안겨다 줍니다. 제가 읽었던 <하얀 성>을 쓴 작가, 오르한 파묵을 설명하는 것으로 리뷰 아닌 리뷰를 시작합니다. (리뷰로 부적절함은 나중에 따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읽게 된 이유는 인문정신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질문 중 하나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성찰을 위해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책이었고 그 끌림에 감흥하여 읽게 된 책입니다. 책은 1985년에 출판되었지만 소설의 배경은 16세기의 오스만 제국을 배경으로 씌여졌습니다. 동서양의 차이와 이해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소설의 이야기로 풀어냈습니다.



책이 전하는 메시지를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이 책은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주인공을 통해 동서양의 자체를 모색하는 동시에 이해하고자 하는 작품이며,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느냐에 관한 자기성찰적인 소설이다'라고 옮긴이가 책에 대해 두 줄로 평하고 있습니다. 


서양에서 태어나 우연히 이스탄불에 잡혀와 노예가 된 책의 주인공과 주인공과 너무 닮은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사람이 서로에게 배우고 영향을 주며 닮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누구의 생각이 먼저이고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을 정도로 서로는 서로에게 닮은 꼴 이상으로 변해갑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서로의 신분을 바꿔 서로가 태어난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마쳐지는 것이 이야기의 흐름입니다. 그 과정에서 <왕자와 거지> 혹은 영화 <광해>에서 사용되었던 서로가 바뀌는 분신모티프가 적용되었습니다.를 사용했습니다.


작가 오르한 파묵은 터키의 정체성을 다룸과 동시에 <나는 왜 나인가?>라는 메시지를 주인공을 통해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했던 삶을 살게 된다면 과연 행복할까?'라는 질문도 같이 던지고 있지만 파묵은 책에서 그 대답을 말해 주지는 않고 있습니다. 책은 제게 어려웠습니다. 어렵다는 의미는 책의 의미, 파묵이 껴앉았던 <나는 왜 나인가?> 라는 핵심적 질문을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보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책의 줄거리를 읽어 냈지만, 사실 책의 분량은 많지도 않고 푸르스트처럼 난해하게 씌여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알랭 드 보통처럼 골때리는 문체도 아니기에 책은 무난히 읽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안하셔도 좋겠습니다. 

<나는 왜 나인가?>라는 질문처럼 무겁고도 어려운 철학적 명제가 또 어디있겠습니까?  하지만 다른 작품들에서는 원문과 해설서를 읽으면 이해되었던 경험들이 이번에는 적용되지 않았지요. (<모든 것은 빛난다>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허무가 무엇이고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라는 핵심 질문이 내 삶과 생각을 돌아보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거든요)


다른 문학작품을 읽어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하얀 성>을 읽은 후에도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와 그 화두를 붙잡기 위해 이 책을 읽었던 많은 네티즌들의 리뷰를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리뷰들 조차도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세계의 문을 열어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의 글도 피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파묵이 주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울림에 반응한 글들은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더 안타까웠습니다. 


지금의 이 생각을 더 오래 붙잡고 그 의미를 더 분석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현재의 문학적 역량으로는 더 이상의 의미 발견도 실패할 것 같다는 타협의 심리가 발동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리뷰는 리뷰가 아닌 내 마음 속의 아쉬움을 정리하는 노트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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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한 파묵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작품에 대한 흥미가 일었습니다. 다음에는 이 작품을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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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조영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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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스노우보드와 사이클, 스타워즈와 레고는 좋아하지만 

책읽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한 남자가

어찌해서 <나쓰메 소세키>라는 발음도 힘든 일본인 작가의 책을 읽게 되었을까?

나 스스로도 신기할 뿐이다.


이번에 리뷰할 <한눈팔기>라는 책은 과제로 읽어야 할 도서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소재나 주제가 내 취향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언가에 끌려 <한눈팔기>를 골랐고 이렇게 리뷰까지 쓰게 되었다.


사실 책은 많이 지루한 편이다.

많이 지루하다.

(이 리뷰를 읽고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만약 그렇다면 지루하다는 사실은 알고 읽길 바란다)




About.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는 메이지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으로

일본 근대문학의 형태를 확립해 대문호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후세에 일본인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준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을테고.


그 영향력이 어떤 정도인지를 말해 볼까?

그는 천엔짜리 지폐에 그려진 인물이다.

이 정도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겠지.

(문학사와 일본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의 영향력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보다 더 어찌 잘 설명하리오. ^)^)


소세키는 1900년에 일본인이라는 신분으로 서구 자본주의의 상징인 대도시 런던으로 유학을 가는데,

그곳에서 목격한 노동자 계층의 생활과 열악한 주거환경은 

그의 문학에 짙게 표출된 문명비평적 성격의 원체험으로 작용하게 된다 (조영석씨의 한눈팔기 해설. p283)

그런 경험들이 이 책 <한눈팔기>에서도 주인공에게 그려진다.




Title, 한눈팔기

그렇다면 왜 이 책의 제목은 <한눈팔기>일까?


한눈팔기란 길가에 난 풀, 한눈팔다, 해찰하다라는 두 가지 사전적 의미가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또 '해찰하다'라는 단어는 무슨 뜻인가?

(이런 식으로 식자층들이, 자기들이 먹물 먹은 티를 내려는 그 잘난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좀 더 친절하게 입문자들을 인도했으면 좋겠구만, 건방진 새끼들)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면 '해찰하다'는 다음의 의미를 지닌다.

마음에 썩 내키지 아니하여 (물건을) 부질없이 이것저것 집적거려 해치다.


소세키는 출생과 성장에 대한 자신에 대한 탐색과 

자기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이해관계와 소통방식들을 

관찰하고 탐색하기 위해 <한눈팔기>라고 지은 것으로 이해된다.




Features, 소통(커뮤니케이션)


몽테뉴가 자기 일상의 관찰을 통해 사유를 기록함으로써

시대적 보편성과 문학사적 위치를 얻었다면


<한눈팔기>는 부부사이에서 벌어지는 불소통을 

마치 우리 부부이야기인 것처럼 그려 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 침대만 같이 쓰는 현대 부부들의 자화상이랄까.


<혀> 표절사건으로 기억되는 작가 조경란이 소개하는 <한눈팔기>는

'나는 결국 무엇을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하는 질문에 의미를 담았다.


하지만 나는 <한눈팔기>를 읽으며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에 대한 화두를 더 많이 느꼈다.

아내와의 냉담함 그리고 주변인과의 이해관계의 비틀거림.

이것이 내가 이 책을 통해 느낀 주요 화두였다.


생각과 달리 나오는 상처주는 말이라든지

자신의 가치관과는 부합하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라든지..

이런 모습을 보이는 주인공 겐조 자체가 실제 내 모습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화성 남자, 금성 여자처럼 두 부부의 온도는 아주 냉담하다.

서로가 서로를 탓하며 밀어내는 대화들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곳곳에 나타난다.

이 중 가장 공감갔던 대목들을 옮겨본다.


(59)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냉정한 인간은 아니야.

단지 내가 가진 따뜻한 애정을 밖으로 내보일 수 없게 만드니까 자꾸만 이렇게 되는거야"

"누가 그런 심술궂은 짓을 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당신이 늘 그렇게 만들고 있잖아" 


(176)

"당신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어"

"정말 독단적이시로군요. 당신은"

"판단만 정확하다면 독단적이라도 상관없어"


(191)

"당신도 당신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사는거야?"

"그렇고말고요. 당신이 당신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처럼요"

그들의 언쟁은 자주 이런 대목에서 일어났다.


(214)

부부의 태도는 좋지 않은면에서 일치했다. 

서로의 부조화를 지속하기 위해서라는 소리를 듣는대도

어쩔 수 없는 이 일치는 뿌리 깊은 그들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28)

"그러면 가르쳐 주시면 되잖아요. 그렇게 사람을 바보 취급하지 마시고요"

"당신쪽에서 배우려는 생각이 없잖아. 

나는 이미 이것으로 충분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뭘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어?" 



소세키는 주인공 겐조처럼 지식인으로써의 뿌듯함을 행복해 했으나

실제 살아가는 삶에서 흔들리게 되자 

비로서 반성하며 그 현상들을 주의깊게 관찰하려고 글을 쓴 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생각은 책 중에서도 볼 수 있는데, 몇 구절을 옮겨 본다.


(162)

도쿄에 정착한 겐조는 물질적인 면에서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가를 확실하게 알아차렸다. 

자신이 뛰어나다는 자각으로 행복했으나 그 자각이 돈 문제로 흔들리게 되자 

비로소 겐조는 반성하기 시작했다. 


(182)

'누님은 그저 하고 싶은 말을 다 뱉어내는 사람일 뿐이다.

교육이라는 껍데기를 벗기면 나도 크게 다를지 않을지 모른다' 



<한눈팔기>는 자서전적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어 

소세키의 작품을 읽으려는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읽을 것을 문학가들은 권한다.


책 뒷편에 있는 연도와 주인공의 삶은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그의 모습이고 어디까지가 덧붙여 진 것인지 구분하기가 힘들다.

(구분의 필요성을 사실 못느끼기는 하지만...)



Epilogue

'<한눈팔기>가 메이지 시대 일본인 정서는 물론 

현대 일본인의 정서와 일본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라고 옮긴이(조영석)는 말하고 있지만

이 부분은 솔직히 공감이 들지 않는다.


책에는 주인공 겐조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 소통의 부조화속에서 냉담한 채로 살아가는 아내.

- 가족을 위해 그만둘 듯하면서 못 그만두는 형.

- 천식으로 죽을 듯하면서 살아있는 누이.

- 새로운 지위를 얻을 듯 하면서 얻지 못하는 장인.

- 정중한 태도로 돈을 갈취하는 양부.


등장인물들이 보이는 행동들이 당시의 일본인들의 정서와 문화를 보여줄 수 있지만 

워낙 감수성이 낮은 늑대같은 나로써는 이해가 어렵다.


오히려 주인공 겐조라는 자서전적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의 의미를 탐색하고 관찰하려는 소세키의 성찰적 태도를 읽을 수 있었음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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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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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클라이막스로 다달을수록 내 감정은 동요되기 시작했고

마지막 대목의 책장이 넘어갈 때는 내 시울은 매우 촉촉해고야 말았다.

촉촉해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나서야 타인의 시선이 부끄러워 애써 감정을 추스렸다. 

하지만 북받쳐버린 내 감정은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 버렸다.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은 참으로 슬픈 이야기였다. 

감수성이 낮은 이성적 사고와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가득한 한 남자를 울릴 정도로 말이다.


톨스토이와 같은 대문호들이 만들어내는 문학의 위대함 앞에서는 

어설픈 깜냥이나 비판적 사고가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저 파도처럼 나를 향해 덮치는 감동을 온 몸으로 맞을 뿐이다.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은 상당한 행운이며 읽게 해준 그 무언가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든다.

올해의 베스트 책에 선정됨에 있어 검토의 여지가 없겠다.




02.

프랑스는 아프리카와 아랍인들이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불법입국을 감행하는 곳이다. 

한 방에 열 명 이상씩 자기도 하고, 아무데나 오줌과 똥을 싸는 그들의 주거시설은 끔찍하기 짝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먼 이국 땅에서 희망을 갖고 새로운 삶을 꾸려나간다. 


프랑스의 많은 창녀들이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대부분 창녀 엄마들은 자신이 아이를 기르지 못한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엄마 혹은 아이들을 발견하거나 신고하면 

아이를 바로 보호시설로 보내버려 아이와 엄마는 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녀 엄마들은 아이들을 도맡아 키워주는 곳에 맡기고 키워주는 댓가로 매월 일정 금액을 송금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끊겨 버리기가 다반사다. 

어쨌든 이런 아이들을 맡아서 키워주는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바로 주인공 모모의 평생친구인 로자 아줌마다. 


주인공 모모 역시도 창녀 엄마에게서 버려진 자식 중 한 명이다. 

그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길이 없다. 다만 창녀라는 직업을 가진 여자일 뿐. 

엄마가 창녀이니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알길은 더욱 막막하다. 

몇 년이 지나자 모모도 엄마로부터의 송금이 끊기지만 로자 아줌마는 모모를 내쫓지 않고 평생을 같이 한다. 

오히려 로자 아줌마는 모모를 의지한다.

로자 아줌마 집에 있던 아이들이 다 나가고 건강 때문에 더 아이들을 맡지 못하게 

로자 아줌마 곁에는 모모만이 남게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로자 아줌마는 건강이 점점 안좋아진다. 

나중에는 거동도 할 수 없어 자신의 힘으로는 외출을 할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른다. 

비록 가난하지만 다양한 국가 출신인 이웃들이 모모와 로자 아줌마를 돕는다. 




03.

작품의 클라이막스는 로자 아줌마가 점점 건강을 잃어버리면서 시작된다. 

로자 아줌마는 뇌에 문제가 생겨 자주 의식을 잃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로자 아줌마는 자신을 절대 병원에 보내지 말라고 모모에게 부탁한다. 

병원에서는 자신이 존엄하게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뿐 아니라 

식물인간이 되어서도 계속 치료라는 명목으로 두는게 두렵다고 말한다. 

그러니 자신을 절대 병원에 보내지 말 것을 다짐받는다. 모모는 이를 끝까지 지킨다.


이웃 중에 마음씨 착한 의사가 있다.  이 의사는 로자 아줌마를 병원에 빨리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모는 로자 아줌마의 약속 때문에 그러지 말아 달라고 의사에게 울며 사정 한다. 

아줌마가 식물인간으로 누워서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아줌마와 약속을 했다고 말한다. 

자신의 고향인 알제리에서는 안락사에 대한 권리가 있는데 왜 여기서는 안락사를 못하느냐고 울부 짖는다. 

태중의 아이는 죽이면서 안락사는 반대하는 당신들과 같은 이상한 어른은 되지 않겠다고 의사를 따진다.

의사는 아직 모모가 어려서 잘 모른다는 말만 할 뿐이다.



04.

로자 아줌마의 의식이 자주 끊기고 육체는 이제 아예 말을 듣지 않게 되버린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병원에 실려가는 것으로부터 그녀를 지키기 위해 

지하실에 있는 그녀의 은신처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로자 아줌마의 임종을 함께 한다.


로자 아줌마가 잘나갔던 창녀인 시절의 기억을 지켜주기 위해 

죽은 몸임에도 불구하고 화장을 계속 덧바르며, 온 몸에 비싼 향수를 뿌려준다. 

모모는 자신이 아픈 것도 마다치 않고 그 옆에서 자리를 지킨다. 


배가 고프면 지하실에서 나와 돈을 훔쳐서 밥을 먹고 

다시 향수를 사가지고 지하실로 들어가 로자 아줌마의 몸에 다 끼얹어 준다.


건물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악취의 원인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지하실로 들이닥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 마지막 대목에서 느낀 슬픔이 리뷰를 쓰는 지금까지도 다시 되살아남이 느껴진다.




05.

이 위대한 문학작품을 읽고 나서 

작품이 상징하는 표현과 생의 의미들을 글로 쓸 수 없다는 내 자신이 무척이나 안타까울 뿐이다.

이 책을 읽게 만든 그 파워블로거의 리뷰 역량이 존경스러워졌다.


책장의 마지막을 덮고 나니, 내 안에서는 알 수 없는 슬픈 감정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 느낌을,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답답함이 참으로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결국 선택한 것이 작품에 대한 줄거리를 적어 보는 것이었다.


책 마지막에는 소설가 조경란씨의 작품평이 실려 있었다. 

그 평에 의하면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파괴해가는 것이 다른 아닌 생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과연 내게 있어서, 우리에게 있어서 생(Life) 혹은 삶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한다.

늙은 창녀가 죽어서도 떠나지 못하고 함께 그녀를 지켜주었던 모모에게 생이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어떤 부분을 말하려 했을까? 매우 궁금해졌다. 


생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슬프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갈 뿐이다.



* 작가 역시 대단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 문호가이지만 

지금은 책이 전해준 슬픔에 흠뻑 빠지고 싶어 따로 적고 싶은 마음은 접어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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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5 18: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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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창조자 - 똑같이 주어진 시간, 그러나 다르게 사는 사람들
로라 밴더캠 지음, 송연석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프롤로그


바쁘게 살아가는 샐러리맨들과 영업사원들 그리고 크고 작은 조직을 경영하는 리더들, 더 많은 성취와 생산성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을 위해 시간관리 책들이 만들어지지만 이 책은 독특하게도 젊은 여성들에게 가장 먼저 권하는 책입니다. 물론 이 책은 남녀 누구나 봐도 좋습니다만 일과 여가의 균형을 잡지못하는 맞벌이 부부, 아이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젊은 부부에게 더 이 책을 권하고 싶다고 저자 로라 밴더킴은 말합니다. 그 만큼 저자는 가정에서의 균형과 여성입장에서의 깊은 고민이 많이 담긴 책입니다.


아마도 저자가 여성이라 가정에서의 시간관리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듯 합니다. 그래서 자녀와 함께 하기, 배우자와 함께 하기, 가사노동 재편하기, 여가시간 의미있게 쓰기, 자투리 시간 활용법과 같은 방법들에 대한 구체적인 시간관리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들은 아래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하기로 하지요.




똑같이 주어진 시간, 그러나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시간창조자라 부른다.

 

이 책은 세상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똑같은 일주일, 168시간을 남들과 다르게 활용하는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리고 개인 생활에서도 윤택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바로 시간 창조법이라고 저자 로라 밴더캠은 이야기 합니다. 


로라도 다른 시간관리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일주일 단위에 대한 관리 포인트를 맞추고 있습니다. 하루계획이 아니라 일주일 단위로 시간개념을 정립한다면 우리에게는 꽤나 많은 시간이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하지만 그 시작은 하루를 정확하게 관찰하고 인정하는 일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시간사용 내역서>를 작성할 것을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낼 이번 한 주인 168시간은 어떤 식으로든 채워집니다. 스마트 폰을 보는 것으로도 채워지고, TV를 보는 것으로 채워지고, 인터넷 쇼핑몰을 보는 것으로 채워지며, 시원한 치킨과 맥주를 먹는 것으로도 채워집니다. 다시 월요일이 되면 또 백지상태로 돌아가는데 그 백지를 어떤 식으로 채울 것인지에 대한 방법도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들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아쉬운 점은 조금 느껴집니다.

 

 

 

시간 창조자들이 일과 가정에서 균형을 맞추는 법

 

가사일의 경우에도 일에서도 핵심역량이 있듯이 가정에서도 핵심역량이 있기 때문에, 시간사용 내역서에 과도한 가시시간이 잡혀 있음을 발견했다면 과감히 아웃소싱을 하라고 말합니다. 요리와 세탁일에 스트레스 받고 소중한 주말을 집안 청소하느라 다 보내느니 아웃소싱이 낫다는 말입니다. 아웃소싱이라고 하면 비용적 반론이 나올테지만, 소탐대실이라는 말처럼 의외로 엉뚱한 곳에 돈을 쓰면서도 이런 일에는 인색한 우리 자신을 꼬집으면서 기회비용이라는 측면에서 검토해 볼 것을 로라는 권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수의 엄마들이 엄마가 해야 할 역할들을 부풀려놓고, 힘들고 많은 가사노동에 시간을 쏟아붓지만 정작 아이들과 교감하며 함께 보내는 시간은 많지 않음을 지적합니다. 밥, 빨래, 청소에는 시간을 다 보내면서 정작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는 수시로 스마트폰을 보거나 가사에 지쳐 TV를 보는 모습이 말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나요? 그래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미리 짜두지 않으면 이런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로라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들에게도 100가지 꿈의 목록을 적어보게 하세요. 그래서 자녀들이 어떤 것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관심있게 보고 그 소중한 것을 선택하세요. 그리고 그 소중한 것을 위해 168시간을 재편해 보세요. <소중한 것을 하라>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괜찮은 월요일과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 시간의 모자이크인 우리 인생의 모든 날들을 괜찮은 날로 살아가기 위한 가정에서의 시간관리 지침들이 가득한 책, 시간창조자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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