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 (영화 특별판) - 신의 선택을 받은 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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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성스러워야 할 교황 선출의 과정, 콘클라베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세속적인 인간의 얼굴을 드러낸다.
모든 추기경들은 입으로는 교황의 자리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저마다 조금씩 욕망을 품고 있고, 혹은 자신이 지지하는 추기경을 교황으로 만들기 위해 은밀한 선거운동을 서슴지 않는다. 신의 뜻을 묻는 자리에서 인간의 계산과 정치가 가장 노골적으로 작동한다.

이 콘클라베를 관리하고 주관하는 인물은 추기경 단장 야코포 로멜리(로멜리 추기경)다. 그는 누구보다도 교황의 자리에 관심이 없어 보이며, 오로지 이 성스럽고 경건해야 할 선거가 무사히 끝나기를, 그리고 주님의 뜻이 왜곡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오, 주여, 주께서는 이 신성한 콘클라베를 주관하도록 임무를 주셨나이다……
그저 동료들이 신중하게 투표하도록 준비만 하면 되나요? 아니면 어떻게든 개입해 결과에 영향을 줄 책임이 있습니까?
저는 주님의 종복이오니 주님의 의지에 혼신을 바칩니다……
어떤 행동을 취하든 간에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셔서 훌륭한 교황을 선출하도록 도우소서……
주여, 부디 저를 통해 주님의 의지를 실현하소서……
너는 종복이니, 너 스스로 판단하여…….”

그러나 그의 기도와 바람과는 달리, 콘클라베는 온갖 사건과 이슈, 암투와 정치로 얼룩진다.
로멜리 추기경은 결격 사유가 있는 후보자들의 실체를 하나둘씩 확인하고, 콘클라베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배제해 나간다. 하지만 그 과정은 의도와 다르게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선거의 흐름에 개입하는 인물처럼 보이게 되고, 일부 추기경들로부터는 교황 자리를 노리는 야심가라는 의심까지 받게 된다.
신의 뜻을 지키려는 행동이 인간의 정치로 오해받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끝까지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던 로멜리 추기경은 마침내 깨닫는다.
교황의 자리를 향한 욕심 자체가 죄가 아니라, 그것을 끝내 인정하지 않으려는 위선이 문제였음을. 그는 그것을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자신의 진짜 욕망과 마주한다. 이 장면은 소설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은 순간 중 하나다.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콘클라베 초기, 벨리니가 그를 야심가라고 비난하며 추기경이라면 누구나 교황으로서 사용하고 싶은 이름이 있다고 주장했을 때, 로멜리는 그 사실마저 부인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애써 부르지 않으려 했을지언정, 이제 그 자신도 마음속에 항상 이름 하나를 품고 있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오, 주님, 제 위선을 용서하소서.

그 이름을 염두에 둔 것도 벌써 몇 년 전이었다.
요한.

12사도 요한. 게다가 로멜리 자신이 성장한 배경도 혁명적인 교황 요한 23세 휘하였다. 그 이름이라면 개혁가로서의 의지를 가장 잘 드러낼 것이다. 요한은 또한 전통적으로 임기가 짧은 교황들과도 관계가 있다. 물론 로멜리 스스로도 교황직을 오랫동안 수행할 생각은 없다.
교황이 된다면 요한 24세가 될 것이다.
어쩐지 무게감도 있어 보인다. 진짜 같기도 하다.
발코니로 나가면 첫 행동은 물론 교황 강복이 되리라.”

하지만 운명은 또 한 번 그를 비튼다.
기껏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순간, 마지막 여덟 번째 투표에서 2/3의 표를 얻은 인물은 로멜리가 아니라 전혀 다른 추기경이었다.

“마지막 개표를 한 후(우습게도 마지막 득표는 로멜리였다) 로멜리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검표원들이 공식 집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후일 벨리니에게 자신의 감정을 설명할 기회가 있었을 때, 마치 돌개바람이 하늘로 몸을 들어 올려 소용돌이치게 하다가 그런 식으로 계속 돌면서 갑자기 누군가를 쫓아가는 기분이라고 고백했다.
‘아마도 성령이었겠죠. 그때의 기분은 무서우면서도 왠지 신이 나기도 했습니다. 잊지 못할 경험이었어요. 고맙게도.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자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욕망은 부정할 때보다, 인정했을 때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지는 순간, 원하는 것을 내려놓으려 애쓸수록 더 집착하게 되고,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놓아줄 수 있게 되는 인간의 역설. 로멜리 추기경은 끝내 교황이 되지 못했지만, 어쩌면 그 순간에 가장 인간다웠고, 동시에 가장 성스러웠다. 콘클라베는 신의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 소설이 아니라, 욕망과 책임, 그리고 자기기만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이 소설은 교황 선출 이야기, 카톨릭에 대한 이야기면서도,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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