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삔내로 나를 깨운다 - 인생 통찰을 통해 우리 마음을 치유하는 지개야스님의 잠언
지개야 지음 / 묵언마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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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자동차로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이동하기 위해서 그 먼 길에 모두 빛을 비추지 않아도 이동할 수 있다. 100미터 만 라이트를 비추면 그 100미터가 쌓여서 몇 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무언 가를 이루려고 할 때 욕심부리지 말고 한 계단 한 계단 나아가면 이룰 수 있다고 지개야 스님은 얘기한다. 현실의 복잡한 문제에 둘러싸여 앞을 못보고 있을 때 내려 놓을 것을 제안한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으면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는데 어차피 놓칠 것을 들고 있느라 둘 다 놓치고 만다고.


기도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지개야 스님은 내 안의 부정적인 무의식을 긍정의 무의식으로 바꾸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부처님께 드리는 기도는 나를 위한 나의 기도가 되어서는 안 되며 남을 위한 나의 기도라야 한다. 내가 하는 참회의 기도는 남에게 베풂을 주고자 진정한 나를 찾는 기도란다"


시간이 흐를 수록 나와 남은 결국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칭찬이나 험담을 하면 그것은 곧 화살이 나에게 돌아온다. 그런데 상황이란 정말 미묘한 것이라서 일방적으로 판단내리기가 어렵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상황이 필연적인 상황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거기에 대해서 마치 다 알고 있는 양 확신에 차서 비난을 할 때가 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내가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누군가 얼마 전에 내가 했던 행동을 그대로 재연한다.


지개야 스님은 서로 헐뜯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결국 자신을 돌아봐야한다고 역설한다. 문제의 근원은 결국 자신에게 있으니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스님의 취지에는 크게 동감한다.


다만 서울대 해체와 외국 유학 문제를 거론하면서 정작 본인들의 자녀는 서울대 보내기를 원하지 않느냐. 그리고 대기업 삼성을 욕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중소기업에 들어가기보다 삼성에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느냐고 다그친다. 물론 나 또한 중소기업보다는 골목 상권을 침해하는 대기업에 들어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반대하니까 난 그렇게 살지 않을거야'란 문제하고는 다른 관점인 것 같다. 가령,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데 앞에서 누군가 일어서서 영화를 본다면 영화 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나 또한 일어나서 영화를 봐야한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힘들게 일어나서 영화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영화를 어떻게 봐야하는가 고민해야 하는 것이지 영화 자체를 보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상황을 탓하기 보다는 다른 상황을 어떻게 인정하고 서로 진정성을 가지고 바라봐야 할 지에 초점을 맞췄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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