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일  오전 10시경.   

오전 어김없이 지하철을 타고 홍대로 나갔다. 짧은 2월이 끝났고, 새로 시작한 3월. 처음은 좋으니깐, 그러니깐 다시 시작해보자는 5호선 안내방송이 지나가고. 양평역 즈음을 지나고 있었다. 방송은 나쁘지 않았고, '내가 아직아이였을 때'를 읽고 있었다. 

예전에는 '있다'라는 사실이 기쁘게 했다. 적당히 기쁨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내심 생각했던 것 같다. 없지 않고 있는 세계! 내 앞에 있는 누군가가 있고, 토각토각 소리를 내는 키보드가 있고..그냥 내 주변의 사물들과 사람들이 있다는 것, 고거 자체가. 아래의 글은 있었던 세계이지만. 그 때가 떠올랐다.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문장이 나오면 은근하게 좋아진다. 어딘가에 써놓고 싶고. 무어무어가 있었다.  있었다. 없지 않고 있었다.

   
 

김천역을 빠져나오면 역전 광장 왼쪽에 뉴욕제과점이 있었다. 양 옆에 새시로 만든 진열창이 그 가운데 역시 새시로 만든 출입문이 있었다. 출입문 오른쪽에는 스티로폼으로 만든 모형케이크를 늘 진열해놓았고 왼쪽에는 주방이 있었다. 오후면 기울어진 햇살이 들어오는 바람에 차양을 드리워야 했다. 가게를 볼 때, 나는 오후 네시경이면 줄을 풀어 초록색 차양을 드리웠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으로 80년대 후반에 새로 들여놓은 최신형 케이크 진열대가, 오른쪽으로 개방된 형태의 빵 진열대가 있었다. 한쪽에는 위로 문을 여닫는 아이스크림 냉동고가 있었고 들어가는 길 맞은편에는 식빵, 롤케이크, 밤빵, 피자빵 등 좀 덩치가 큰 빵과 사탕 따위를 놓아두는 진열대가 하나 더 있었다. 거기를 돌아들어가면 1번부터 9번까지 테이블이 있었다. 8번과 9번은 수족관 뒤에 있었기 때문에 들어가면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출입문의 정반대편 벽에는 컬러 방송이 처음 시작된 해에 구입했던 텔리비전이 높이 설치한 받침대에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늘 케이크 상자나 포장용 비닐을 쌓아두는 1번 테이블 한쪽에 앉아서 낮에는 출입문 쪽을, 밤에는 텔레비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은 뉴욕제과점의 모습은 그와 같았다. 24시간 국밥집에 들어간 나는 옛날로 치자면 2번 테이블이 있던 곳쯤 돼 보이는 자리에 앉아 국밥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텔레비전도 옛날 그 받침대에 놓여 있었고 바닥의 무늬도 그대로였으며 나무 장식의 천장도 마찬가지였다. 내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서 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어린아이였다가 초등학생이었다가 걱정에 잠긴 고등학생이었다가 자신만만한 신출내기 작가였다가 빙수 판매 신기록을 세운 대학생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고개를 들고 실내를 바라볼 수 없었다.  이윽고 국밥이 나왔고 나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국밥을 먹었다. 국밥은 따뜻했다. 나는 셈을 치른 뒤, 새시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역전 거리의 불빛들이 둥글게 아롱져 보였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소설집, 2002, 91~93p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면 소년들은 어른이 될까" (뒷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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