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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7년 9월
평점 :
퍽이나 매력적인 제목이었다. 나를 지키며 일하기란 그리 녹록치 않다는 걸 알기에. 그래서 대뜸 서평지원자로 나섰다. 최근 나의 고민과 맞물려 있기도 했고.
내 나이 벌써 사십 중반을 향하고 있다.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 사십은 까마득했고 상상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서른 너머도 내다볼 수 없는 당장의 문제가 더 큰 탓이기도 했다. 나의 욕구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나의 20대는 그런 어설픈 자세로 두세 개의 일을 전전하며 끝나갔다. 다행히 20대의 끝 무렵, 평생의 업을 찾았다(고 그 당시에는 생각했다). 얼마나 뿌듯하던지 생계는커녕 용돈이라고 부를 정도의 월급을 받으면서도 그저 신나했다. 하루 네다섯 시간을 자는 일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10여 년의 시간이 지나면 번듯하게 자리 잡고 있겠지 생각했다. 사실, ‘번듯하게’의 기준이 매우 모호했으므로 당장의 짜디짠 월급과 불규칙한 일 따위 알 바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낭만적이었다. 최저생계 하한선을 밑돌고 있으면서도 10여 년 후의 번듯한 자리를 담보로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다니 말이다. 저자의 말대로 나는 꽤 괜찮은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그 일을 하고 있다. 여전히 그 일의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므로 ‘번듯한 자리’라는 담보는 무용하게 되었다. 이제는 잡을 만한 담보도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니 첫 마음은 그저 향수에 지나지 않는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한계를 못 벗어나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했다. 전직을 하려고 두어 번 시도도 해 봤지만 ‘목구멍’에 걸려 번번이 좌초되고 말았다. 그러나 나의 일이 싫다거나 지겹다거나 한 건 아니다. 나의 일로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고, 일로써 어떤 족적을 남길 수 있다면 아직도 애정할 수 있는 일이다. 방해꾼은 고학력 저임금이라는 현실이다.
이쯤 되니 직업에 대한 낭만은 소멸되고 현실만이 남아 괴롭기 그지없었다. 복잡한 심정으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질서정연한 구성, 자연스러운 흐름 게다가 독자를 세심히 배려하는 사려 깊은 말투,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 등 민감할 수 있는 주제를 겸손한 태도로 잘 전달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의 이력이나 사회적 지위 등은 자칫 ‘꼰대’로 흘러가기 쉬운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또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현 사회에서 시의적절하고 납득할 만한 조언들이 많다. 게다가 현실을 무시한 낭만적인 이야기보다 현실을 인정하고 ‘낭만과 현실의 균형’을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 균형감은 직업을 선택할 때 매우 중요해 보인다. 20대의 나는 ‘낭만’은 있었으되 ‘현실’감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부분에서는 할 말이 참 많다. 개인 탓보다 사회구조 탓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노동강도나 노동시간,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 사회안전망 등 한국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현실을 무시한 개인의 낭만이 문제가 될 수 없는 탓이다. 만약 낭만이 문제가 된다면 현 시점에서 택하지 말아야 할 직업은 너무나 많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육체노동, 시간강사, 돌봄 영역 등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인 일들이 상당하다. 그러나 개인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직업 선택 과정에서 이러한 세세한 분석은 너무나 포괄적인 내용일 것이다. 이 책에서도 전반적인 사회의 흐름을 분석할 뿐 노동조건, 임금격차 등은 다루지 않고 있다.
상대적으로 사회안전망이 약하고 노동조건이 열악한 한국사회를 일본사회와 동일선상에서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굵직한 흐름은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저자가 말한 대로 ‘학력사회모델’은 이미 저물고 ‘개인경력모델’이 대두되었으며 이에 따라 ‘좋은 학력’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책임지며 모든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멀티인재가 요청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따라서 예전처럼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나와 대기업에 취직해야 된다는 직업관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내가 전직을 하려다 실패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축이 되는 다리 하나는 한 곳에 두되 나머지 다리로는 다른 곳에 걸쳐두지’ 않은 탓에 있었다.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즐겁게 일했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벗어나려 했을 때는 막상 아는 세계가 없었다.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억울한 느낌이 북받쳐올랐다. 그 시절엔 한 우물을 파면 물이 나온다고 여겨지던 시대였으니, 언젠가는 나름의 결실이 있으리라 믿었다. 사실, 세상의 변화를 빨리 내다볼 수 있었다면 그런 시절의 끄트머리임을 일찍 알았을 텐데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저자는 내 안에 바꿀 수 있는 채널을 몇 개쯤 만들어뒀다 일이 끝나면 다른 채널로 의식을 옮기라 말한다. 이 이야기는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늦은 듯하지만 이제라도 여러 분야에 발을 걸치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취미든 자원봉사든 또는 지역활동이든 자신의 인생의 축을 한 곳에만 두지 않는다면 엉뚱한 곳에서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 그러나 기회가 오더라도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하기에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는 일은 중요하다. 저자는 세상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고 대처할 수 있는 자세를 기르기 위해 인문학 독서를 추천했다. 특히 요즘처럼 세상의 변화가 요동치는 세상에서 하나의 특기로 평생을 살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으므로 어떤 변화가 찾아오더라도 버틸 수 있는 내재적인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서도 한 분야에 국한시키지 말고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조금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분야부터 경제, 철학, 역사 등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분야까지 골고루 읽어보라 추천한다. 또한 내게는 꽤 유용했던 3단계 독서법까지 차근차근 소개해 준다. 늘 독서에 허덕이지만 읽지 않은 책으로 쌓여가는 책장을 답답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내게 저자의 독서법은 제법 유용해 보인다.
청년실업률이 끝나갈 줄 모르고, 취업재수생뿐만 아니라 경력단절여성의 직업 찾기도 만만치 않은데다가 대기업을 다니면서도 과연 자기가 맞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늘 정신적 결핍을 느끼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요즘 ‘직업’이란 것을 여러 층위로 살펴보고 직업을 찾아가는 과정까지 세세히 소개해 주는 이 책이 많은 이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