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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프로젝트
다비드 사피어 지음, 이미옥 옮김 / 김영사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재미있다. 유쾌하다. 술술 읽힌다. 재기발랄하다. 통통 튄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떠오른 말들이다. 불교에 관심이 많다는 독일 작가, 다비드 사피어는 불교의 윤회사상을 짧은 호흡을 뱉어 가며 한 권의 장편소설로 풀어낸다. 보통 긴 이야기를 장편소설이라 하지만 이 책에는 장편소설이란 이름을 붙이는 게 무색할 정도로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읽으면서도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 빨리 책을 꺼내들게 되니까.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소재를 재미있게 버무려내는 작가의 재치와 재능이다. 사실 윤회란 상당히 무거운 주제이다.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전환시키면서도 그 무게감을 잃지 않는 균형감각은 다비드 사피어가 타고난 이야기꾼임을 알게 해 준다. 물론 그동안 시나리오 작가로 쌓은 경력도 도움이 되었겠지만. 두 번째로 주인공 킴 랑에를 들 수 있다. 주인공 킴 랑에는 이 소설을 유쾌하게 끌고 나가는 핵심인물이다.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형처럼 킴 랑에도 자신이 원하는 것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주 이기적이고 도발적인 여자다. 남편을 얻기 위해 친구를 버리고, 출세를 하기 위해 가정마저도 소홀히 하지만 절대로 후회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 그녀는 죽어서도 하루라도 빨리 딸과 남편 곁으로 가기 위해 거짓 선행을 저지르기도 하며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고 다른 이들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그녀를 보면서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자꾸 응원하게 된다. 아마도 킴 랑에의 솔직하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자신의 불행을 극복하려는 의지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인간의 탐욕이 그녀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그 모습이 나와 닮아 있기에 그녀를 욕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치졸하고 탐욕스러운 자신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자세는 손가락질을 하는 이를 무안하게 한다. 마치 ‘너도 그렇잖아. 다 알면서 왜 그래?’라는 듯이. 인간은 탐욕스럽지만 도덕적 욕구도 강해서 자신의 더러운 모습을 애써 외면하려 든다. 그렇지만 킴 랑에는 그것을 에둘러 감추려 하지 않는다. 그 모습이 대단해 보인다. 자칫 신파로 가기 쉬운 이야기를 주인공은 적절히 인간적이면서 구질구질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마지막으로 개성적인 주변 캐릭터들의 등장이다. 주변 인물 하나하나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조연은 개미로 환생한 카사노바다. 수많은 여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그가 정작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는 초라한 동물일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가 얼마나 웃긴가.
이러한 요소들의 힘을 입어 이 소설은 탄탄한 스토리를 자랑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의 문제가 이토록 가벼워도 될까라는 너무나도 개인적인 의구심이 든다. 두렵게만 느껴졌던 죽음이 삶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분명 큰 수확이다. 그러나 삶과 죽음에 이르는 제반문제가 그리 단순명쾌하지만은 않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철학적 한계도 엿보인다. 이는 주인공이 다 죽어가는 여자의 몸을 빌려 환생한다든지 바람둥이처럼 보이는 다니엘이 진정으로 킴 랑에를 사랑했다든지 딸을 구하기 위해 죽음 문턱까지 갔던 주인공이 되살아난다든지 하는 장면으로 돌출된다. 더 아쉬웠던 점은 주인공과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모습이 단편적이라는 점이다. 특히, 킴 랑에가 어머니를 마음속에서 화해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은 열심히 옷을 만들다가 나중에는 후다닥 마감을 해서 천이 우는 듯한 인상이 들었다.
그러나 분명 이 모든 아쉬움을 덮고도 남을 만큼 재미있다는 점은 이 소설의 큰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