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말 숙제 글 숙제
박승우 지음, 김경우 그림 / 학이사(이상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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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시에서 아포리즘을 읽다

말 숙제 글 숙제-박승우(학이사, 2016)

 

샤르트르는 시인은 먼저 이름을 통해서 사물을 인식하는 대신에, 우선 사물들과 무언의 접촉을 하고, 그 다음으로 말이라는 또 하나의 사물 쪽으로 돌아서서는 그 말들을 건드리고 더듬고 만져보는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서 어떤 고유의 작은 광채(光彩)를 찾아내고, 또 땅과 하늘과 물과 창조된 모든 것과의 독특한 유사성을 발견하기도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시를 읽을 때마다 표층자아가 아닌 심층자아를 읽어 내려는 강박관념에 작가가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한 권의 시집을 접할 때마다 의식적으로 작가를 등가적 교환 대상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의식적 노력 덕분에 한 편의 시를 읽을 때마다 작가와 최소한 접점을 형성할 수 있었다.

박승우 시인의 동시집 말 숙제 글 숙제는 공감하고자 하는 의식적인 수고가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각각의 시들에서 아포리즘을 발견하게 된다. 동심을 미학적·철학적으로 표현하면서 관념적으로 흐르지 않는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시를 읽으면서 복합적 감정이 들쑥날쑥했다.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고, 무거우면서도 무겁지 않는 시들을 읽으면서 잘났어. 정말핀잔 아닌 핀잔을 던지고 싶은 놀부 심보가 작동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에피퍼니(epiphany)를 경험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확장된다.

작가는 200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푸른문학상을 필두로 오늘의 동시문학상, 사계 김장생 문학상 대상 등등 많은 상을 받은 저력 있는 시인으로 공인 받은 작가이다. 동시집 백 점 맞은 연못, 생각하는 감자에 이어 말 숙제 글 숙제는 세 번째 동시집이다. 서문의 제목 맨 처음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첫사랑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사춘기 소년처럼 쭈빗쭈빗 거리면서도 과감한 목소리로 어머니에게 사랑합니다!”를 외치는 순수성을 지니고 있다.

말 숙제 글 숙제에 실린 동시들을 읽다 보면 보편적 관념을 자신만의 언표로 표현하는 메커니즘을 선험적으로 갖고 있는 작가로 느껴진다. 그래서 한 편의 시들을 읽을 때마다 작가가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적 사유에 과도하게 밀착된 독자가 되고 만다. 그러면서도 한 번씩 터지게 하는 해학적 묘미로 시를 읽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굴참나무 아래서똥을 누며 숲속이 알콩달콩해지는 상상을 하고, ‘나무와 새에서는 슬프게 두근거리는 나무의 심장소리를 아련하게 들려주고 있다. ‘가을 하늘에서는 너무나 파란 시린 하늘을 바라보게 하고 어쩌나에서는 배추벌레를 챙겨야할지, 배추를 먼저 챙겨야할지 고민하게 한다. 그러다가 잠자리가 바지랑대에 앉아서 한 생각에 와서는 한참을 머물게 한다.

 

여기까지 날아오르는

여치나 메뚜기가 있다면

프러포즈할 거야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함께 갈 수 있을 테니까

잠자리가 바지랑대에 앉아서 이런 생각과 결심을 하고 있을 줄 어떻게 알았을까? 작가는 잠자리가 잠자리가 아닌 존재로서의 가치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긍정적 관계를 형성하고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신뢰가 최우선 과제이다. 신뢰가 형성된 관계는 어떠한 난관도 믿음과 헌신으로 극복할 수 있다. 이는 곧 사랑이 아닐까? 잠자리가 바지랑대에 앉아서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함께 갈 수 있을 테니까라는 생각이 곧 진정한 사랑의 필연적 귀결이다. 작가는 가시적인 잠자리에게서 진정한 사랑이란 비가시적인 존재로서의 가치를 반추할 수 있는 전지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작가의 전지적 시각은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며 한 생각에서 다람쥐를 화자로 등장시켜 사고의 역전을 보여주고 있다.

 

나를 가둬뒀다고 쳇바퀴만 돌리는 줄 알지

아냐, 난 생각의 바퀴를 돌리고 있어

 

생각의 바퀴는 지금 숲속을 달리고 있어

떡갈나무를 오르고 있어

 

내 생각까지 가둘 수는 없어

난 다람쥐이기를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다람쥐 쳇바퀴 돌기는 항상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빗댈 때 쓰는 말이다. 쳇바퀴 안의 다람쥐는 그 환경을 조성한 주인의 도움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다람쥐가 갖고 있는 선택권은 쳇바퀴 돌기와 정지뿐이며 그 외의 자유는 제한된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람쥐를 가두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동적이지만 정적일 수밖에 없는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를 주체적인 존재로 생성하게 하고 발현하게 한다. 다시 말해서 다람쥐를 정신적인 향상심이 있는 존재로 방점을 찍고 있다. 작가는 패턴화된 일상 속에 다람쥐를 가둘 수는 있지만 생각까지 가둘 수는 없다고 완곡하게 말하고 있다. 다람쥐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수용이라는 회피로 선택하지 않는다. 작가는 다람쥐가 운명에 대한 자각을 통해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함으로써 독자들에게도 나이기를 포기하지 말라.’라는 울림을 주고 있다.

거미줄에 걸린 파리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면 무엇일까? 당연히 살려주세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만약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 사람에게 나를 지배할 힘을 넘겨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독자의 예상을 뒤엎는 시어로 대답한다. 파리가 거미줄에 걸려서 한 말에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파리는 거미님, 사실 난 똥을 잔뜩 먹은 똥파리에요. 그래도 드실래요?”라고 응수한다. 파리의 마지막 한마디는 심히 심각한 상황에서 무장해제와 함께 웃음을 안긴다.

이처럼 말 숙제 글 숙제는 동시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보편적 시어를 통해서 그려내고 있다. 그러면서 자아와 세계를 고찰하고 통찰하는 지혜도 함께 얻게 해 준다. 당장 긴 시간이 아닌 자투리 시간만이라도 내어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동심의 온도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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