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전쟁 - 제1차 세계대전부터 사이버전쟁까지, 전쟁의 승패를 가른 비밀들
박종재 지음 / 서해문집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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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정보란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우리 생활 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네요.
이런 정보들 중에서 전쟁과 관련된 정보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승패를 좌우하는 열쇠였는데요.

이 책을 읽다 보니, TV프로그램 중 흥미롭게 봤던 '서프라이즈'의 전쟁 관련 여러 에피소드도 생각이 나더라고요.
학창시절 막연히 암기하기에 급급하여 재미없었던 전쟁 이야기를 정보전과 관련하여 읽다 보니, 너무 흥미진진하더군요.
하나, 전쟁을 단순히 흥미로 치부하기엔 그에 따른 희생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다시는 그런 전쟁들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봅니다.
이토록 많은 전쟁 속에서 사용되었던 정보들. 도대체 어떤 정보들이 사용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

이 책의 부제는 제1차 세계대전부터 사이버 전쟁까지 전쟁의 승패를 가른 비밀들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과거부터 미래까지 이어질 정보전에 쓰일 정보들.
우리는 과거의 교훈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밑거름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이 책이 그에 대한 길잡이가 되어줄 거라 확신합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성공한 정보, 승리의 열쇠가 되다.
2부 실패한 정보, 대재앙의 불씨가 되다.
3부 정보의 성공&실패 요인과 과제 

<성공한 정보>

 

"여러분의 성공은 기억되지 않지만 실패는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1961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CIA를 방문해 행한 연설의 일부입니다.
그만큼 정보기관의 성공은 잘 드러나지 않는 반면, 실패할 경우는 말 안 해도 알 것입니다. 

 

 

저는 세계 전쟁하면 여러 전쟁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 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1914년을 시작으로 1918년에 끝난 이 전쟁에서 어떤 정보가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을지...

그 시작은 1914년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암살되면서 시작됩니다. 범인은 세르비아 청년이었죠. 오스트리아는 전면전쟁시 러시아가 지원할 것 같아 독일에 지원을 요청하게 됩니다. 독일은 러시아의 참전시 전면 지원한다는 백지 위임장을 약속하게 되고요. 이러면서 동맹국(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주축) 대 연합국(영국*프랑스*러시아가 주축)으로 나뉘고 미국은 중립을 선언하게 됩니다.

그런 유럽에서는 전쟁이 장기화되며 중립국이나 상대 진영의 국가를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려는 외교전이 계속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계속 고립주의를 고수하던 미국의 공분을 산 '치머만 전보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는 1917년 런던 주재 미국대사에게 영국 외무장관이 건넨 독일 외무장관 치머만의 외교전문의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그 전문의 내용은 독일 외무장관 치머만이 멕시코 주재 독일대사에게 미국이 중립을 지키도록 유도하되, 실패시 멕시코 및 일본과 동맹을 맺고 미군이 함부로 본토를 떠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멕시코와 일본에 민감한 미국의 영토 관련 조건을 만족시켜 준다는 한마디로 '기브 앤 테이크' 전략을 쓴 것입니다.
이에 미국대사는 윌슨 대통령에게 신속히 보고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국의 출처 보안에 대한 요청으로 진위 여부가 확실치 않아 의회와 국민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전보 작성 당사자인 독일 외무장관 치머만이 직접 전문을 보낸 사실을 확인시켜 줍니다. 이로 인해 윌슨 대통령은 의회를 설득하고, 드디어 미국의 참전을 공식 발표하게 됩니다.

이에 앞서, 영국은 전쟁 발발과 동시에 독일에 대한 정보 수집 활동을 대폭 강화하게 되는 과정으로 우선 대서양에 설치된 독일의 해저 통신 케이블을 절단해 버립니다. 그러면서 입수되는 독일의 암호 전문이 늘자 해독 전문부서인 '40호실'을 별도로 설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부서에서는 미국의 전문도 감청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독일 외무장관 치머만이 멕시코 주재 독일대사에게 보낸 암호 전문을 입수하게 된 것입니다.

1917년 패전을 거듭하던 러시아에서 마침내 혁명이 발생해 동부전선이 무너지면서, 레닌의 볼셰비키가 공산혁명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고, 1918년 브레스트리토프스크조약을 독일과 체결하며 연합국 대열에서 완전히 이탈해 버립니다. 이러면서 독일은 연합국에 대한 대공세를 전개해 보지만, 연합국은 미국 원정군의 지원을 받으며 방어를 하게 됩니다. 드디어 4년 반 동안 계속된 세계대전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영국 정보전의 승리가 연합국 전체의 값진 승리를 이끌어 낸 것입니다.

영국은 제일 먼저 전문 정보기관을 설립해 운영한 나라라고 합니다. 하지만 영국도 보어전쟁 이전에는 임시기구의 형태로 전쟁이 끝나면 해체하는 방식을 번복하다가 보어전쟁에서 성과를 거두며 전문 정보 조직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주장이 반영되어 1909년 국방부에 'MI-5'로 불리는 방첩 전문기관의 신설을 시작으로 1946년 정부통신본부(GCHQ)로까지 이어집니다. "정보력이 곧 국력"이라는 걸 경험한 영국은 계속해서 정보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영국이란 나라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 당시 영국의 끈질긴 노력이 없었다면, 독일한테 지배당한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하고 말입니다. 상상하기도 싫을 것 같네요.
이야기 전개가 시간순이 아니어서 좀 헷갈렸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국제 정치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정보 접근에 있어 더욱 박차를 가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도 알게되더군요. 선진국에서도 이같은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데 말이죠.

태평양전쟁, 제2차 세계대전, 중동전쟁, 냉전에 쓰여 승리를 이끈 정보들에 대한 이야기도 꼭 읽어보시기 바래요.

<실패한 정보>

제2차 대전은 연합국(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등) 대 추축국(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의 대결이었습니다. 추축국의 패배로 끝났는데요, 1939년을 시작으로 1945년까지 전개된 전쟁으로 전쟁이 끝나고 냉전시대를 맞게 됩니다.
이 전쟁에서 이 인물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리하르트 조르게. 2차 대전 초기 일본을 무대로 활동한 소련의 전설적 간첩으로 오늘날까지도 첩보활동의 모델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적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바쳐 수집한 첩보는 아쉽게도 활용되지 못하고 사장되어 버립니다. 이렇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스탈린의 의심 많고 외골수적인 성격이 크게 작용합니다.
이런 스탈린의 성격은 그의 불행한 성장과정에서 비롯되어진 것 같습니다. 스탈린 스스로가 '사람이 없으면 문제가 없다'라고 언급한 것처럼 스탈린은 인민의 적으로 판단되면 모조리 숙청하고 처형해 버렸습니다. 스탈린은 변방지역에 거주하던 3000만 명 이상의 주민들도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시켜버립니다. 이때 숨진 고려인만 2만 5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이렇듯 스탈린의 공포정치는 고위 관료 사회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스탈린에게 잘 보이기 위한 보고가 시작됩니다.

독일에서 히틀러가 1934년 집권한 이후 주변국들을 차례로 병합하여 나가자, 소련은 주변국과 히틀러를 막으려 했으나 결렬돼 버리면서, 급기야 1939년 독*소 양측이 유럽을 반분하자는 불가침조약을 독일과 체결하게 됩니다. 독일이 주변국을 점령해나가면서 다음 차례는 소련이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스탈린은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애써 외면해버립니다.

스탈린이 독일의 공격 징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데는 소련 정보기관 책임자들이 스탈린을 두려워해 사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군 정보기관 책임자인 골 리코프 부장은 독일군의 공격 징후와 관련된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스탈린에게 사실의 보고보다는 첩보원들이 적의 역정보에 속아 넘어갔다고 질책해 버립니다. 자신의 부하인 도쿄 주재 정보원 조르게도 이런 판단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정보기관 책임자들이 제대로 된 정보 보고를 하지 못한 것이 소련의 군사 준비 태세 부실로 연결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독일군의 공격이 있기 한 달여 전 국방장관 티모센코 원수와 참모총장 주코프 대장은 선제공격을 요구하지만, 스탈린은 이에 반대를 합니다. 그리고 독일의 공격이 있기 11일 전 또 군사 대비 태세의 상향을 허가해 달라고 강력 요청하지만 이것 또한 거부합니다.
결국, 이런 군사 준비 태세 부실로 그들은 전선의 병사는 물론 민간인들까지 나치 병사들에게 치욕을 당하게 됩니다.

1941년 히틀러는 사상 유례없는 대군을 투입해 바라 바로 사 작전을 개시하게 됩니다. 당시 소련의 병력은 오히려 수적으로 우세했지만, 대비 부족으로 인해 초기 피해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이런 지도부의 무능으로 러시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은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 것입니다. 이후 이러한 악전고투 속에서 소련은 2차 대전 전승국이라는 영광을 안게 되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너무 막대했습니다.

스탈린에 대해 히틀러와 비슷한 인물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해왔었는데, 구체적으로 자행한 일을 읽으면서 저 또한 분노가 일더라고요. 이 책에 의하면 스탈린으로 인해 희생된 자의 수가 히틀러가 유태인에게 행한 만행을 뛰어넘는다고 합니다. 상상이 가시나요?

이것 말고도 태평양전쟁, 베트남전쟁, 9.11테러,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정보의 실패로 인한 대제앙 이야기도 있습니다.

<정보의 성공*실패 요인과 과제>

이렇듯 전쟁뿐 아니라 우리 생활과도 밀접한 정보를 잘 활용하기 위해선 어떤 행동을 취해야만 할까요?
21세기의 안보 환경, 특히 사이버 분야에서 국가 간의 정보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 분석과 예측의 어려움은 21세기 정보전쟁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현상이 될 것이며, 정보기관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안보 환경에 맞춰 더욱 전문화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어려울 수 있지만 현재의 IT 기술 발전 속도를 통한 변화의 방향을 미리 예상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단기적 관점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그에 맞는 정보 보호 체계 등을 효율적으로 갖춰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점점 더 정보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시점에 그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함으로써, 다가오는 정보전쟁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손끝 하나만 대면 수많은 정보를 검색하는게 가능해진 요즘. 그 정보들 중 좋은 정보를 선별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것 또한 과제중 하나로 보여집니다.

사이버 전쟁의 틀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현명하게 미래의 정보를 접근하는데 도움이 될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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