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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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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바퀴와 같은 일상을 반복하다보면, 권태에 빠지는 일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물론, 완전히 같은 일상은 존재할 수는 없겠지만 비슷한 무늬를 가진 매일이 반복된다는 사실이 가끔은 무섭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잠시 여행을 떠나는 일은 무척이나 효과적이다. “여행은 일상의 부재”라는 김영하 작가의 문장에서 알수 있듯이, 여행을 떠나는 행위는 일상을 벗어나는 기회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일상을 객관적이고 타자의 시선에서 보는 여행은 우리를 다시금 일상에서 살아갈 동력을 제공한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는 김영하 작가의 말을 다시 반복해본다.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은 문보영 시인이 한국에서 벗어나 아이오와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참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곳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일상을 섬세한 시인의 언어로 기록한 일기가 해당 책의 흐름이다. 30여 개국에서 작가가 참여했으므로 작가 각자가 사용하고 함께 소통하는 언어는 다를 수밖에 없다. 언어는 세상을 보는 창이기에, 자연스레 그들 사이에는 사고와 문화의 차이가 생긴다. 그러한 차이를 인정하고 좁히는 시도들은 재밌는 요소 중 하나다.

개인이 각각의 세계라는 말이 있다. 모두가 각자 다르다는 당연한 뜻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각각의 세계에서 온 ‘각각의 세계(=개인)’는 얼마나 다르고 개별적일까. 다른 언어, 다른 문화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을 바라보며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더 넓힐 수 있었다.

“자신이 사는 곳을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요?” 가장 마음에 닿았던 문장이다. 장소의 의미를 벗어나 일상의 맥락에서 접근했을 때, 지금의 삶, 현재의 장소, 주변의 관계들. 이런 것을 그저 사랑하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지금-여기’의 현존성에 집중하고 마음을 기울이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를 위한 수 많은 방법론이 있겠지만, 잠시 자신이 있는 곳을 떠나는 것이 좋은 해결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밤에는 세상과 멀어지는 연습을 해야 균형이 맞으니까.” 개인적으로, 나의 ‘지금-여기’를 애정한다. 대부분의 일상에 만족하고 크게 불만을 가진 적은 딱히 없다. 그럼에도, 권태나 불안과 같은 부정적 감정은 자연스레 찾아오곤 한다. 그런 순간, 과연 나의 ‘밤’은 무엇인지, 어떤 행위를 해야 삶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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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오래 산다 - 30년 문학전문기자 생애 첫 비평에세이
최재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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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오래 산다. 제목부터 반갑다. 문학에 공동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는 나에게,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는 정겹게 다가왔다. 책의 분량이 적지는 않지만, 시간 날 때 틈틈이 흥미롭게 읽었다.

 

 평소에 어떤 책을 가장 좋아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한국문학' 좀 더 풀어서 얘기한다면 '현대 한국문학'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러므로, 문학전문기자로 30년 동안 활동한 최재봉 기자의 글은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1990년부터 지금까지, 한국문학의 작가, 작품, 출판을 다루고 있으므로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더불어, 문학과 시대는 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에, 사회를 바라보는 기자의 시선도 찾을 수 있었는데, 사회와 문학의 연결성을 생각하는 시간도 재밌었다.

 

 문학의 현장에서 오랜 기간 함께한 그의 시선과 이야기는 재밌는 요소가 많았다. 미래파에 대한

 논란, 표절 및 절필 선언, 펜데믹 등등. 급변했던 사회의 흐름과 문학이 맞물리는 점을 찾을 수 있었다. 더불어, 작가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담은 점 역시 반가웠다. 책으로만 마주했던 작가들이 더욱 친숙하게 느껴졌다.

 

 "문학은 발언이며 증언이고 추억이라는 것,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찬양이어야 한다는 생각."(p.218)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사회에서, 오랜 기간 문학을 사랑하는-하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정겹다. 그의 이야기 더 나아가, 그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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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의 생활명품 101
윤광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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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20년 넘게 ‘생활명품’이라는 주제에 천착하고 있다. 물건이 쌓여있는 여러 장소를 넘어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도구와 물건에 관한 관심을 쏟았고 이 책은 작가의 깊은 관심과 애정의 결과물이다.

 책의 모든 부분을 보지 않고, 흥미가 가는 부분을 주로 읽었다. 단순히 물건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 작가의 이야기와 더불어 다양한 내용이 함께해서 지루하지 않았다. 어떤 물건에 관한 애정이 깊어지면, 그것과 얽힌 사연이 생기곤 한다. 나 역시 특정 책이나 음악에 얽힌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다.

 여하튼, 어떤 물성과 사연이 얽힌 이야기는 그 사람의 취향과 삶을 엿보는 느낌이 들어 재밌게 다가온다. 「윤광준의 생활명품 101」을 읽으며 물건과 사람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어 좋았다.

물건에 관한 이야기를 보는 것만으로, 관심이 생긴 물건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쌓여 취향이 되고 삶이 되는 것이 아닐까. 쏟아지는 물건과 정보의 시대, 그 속에서 자신의 취향을 확고히하는 것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해당 책을 통해, 누군가의 깊은 취향을 엿보고, 자신의 취향을 깊게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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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라이프
가이 대븐포트 지음, 박상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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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 스틸라이프(still life)는 정물화를 뜻한다. 예술이나 미학 관련 서적을 가까이하는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정물화에 천착한 책은 처음 접했다. 정물화에 관련된 지식이 적어, 처음에 망설였으나 책의 내용이 어렵지 않아 흥미롭게 읽었다.

 

 가이 대븐포드는 "책을 읽는 행위는 그 책을 읽는 방에, 의자에, 계절에, 달라붙는다."라는 문장을 쓴다. 앞의 문장이 참 와닿았는데,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내용이라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는 '계절에' 달라붙는다는 표현이 가장 가깝게 다가왔다.

 

 책을 읽는 동안, 집 안을 종종 둘러보았다. 최근 이사를 하여 집 꾸미기에 열중하는 시기가 있었다. 오늘의 집을 비롯한 플랫폼을 찾아보았고, 관련 영상도 자주 보았다. 집 안의 가구나 오브제를 신중히 골랐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요소도 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삶과 비슷한 느낌으로 내고 싶었다. (내 입으로 말하니, 굉장히 부끄럽지만) 최근에, 집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들어 기분이 좋기도 했다.

 여하튼, 최근의 경험으로 인해 어떤 오브제에 관한 의미나 예술적 배경을 설명하는 <스틸라이프>가 더욱 흥미롭게 읽혔다. 발터 벤야민은 "실내(그러니까 가구를 들여놓는 실내)는 우주일 뿐 아니라 사적인 개인이라는 사건이다. 거주한다는 것은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남겼는데, <스틸라이프>는 문학, 예술에 남아있는 이런 흔적을 찾는 책이었다.

 

 비근한 예를 들면, "배는 인간과 신성 간의 조화를 상징하고 사과는 인간과 신성 간의 만남을 상징한다.", "사과는 포도의 북유럽 유사체다." 등의 내용이 있겠다. 그리고 에덴의 금지된 과일이 사과가 된 것은 악(malus)과 사과(malum) 사이의 말장난에서 비롯된, 언어적으로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었다는 문장이 재밌었다. 이 외에도, 정물 배치의 의도, 언어유희 등이 기억에 남는다.

 

 생소한 주제인 만큼, 부드럽게 읽지는 않았지만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던 책이다. 작가가 예술에 해박하다는 점이 느껴지기도 했다. 정물화에 흥미나 관심이 있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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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뤼아르 시 선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21
폴 엘뤼아르 지음, 조윤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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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뤼아르는 다다이즘 운동에 끼어들고 초현실주의의 대표로 활약한 프랑스의 시인이다. 평소, 책을 읽기 전에 작가를 비롯한 정보를 찾는데, 『엘뤼아르 시 선집은 별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다. 시집을 읽으면서 작품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고 생각했다. 130여 편이 되는 시를 읽음에도, 다양하고 색다른 관점을 계속해서 접할 수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었다.

 

 엘뤼아르의 재밌는 점은 낭만적인 사랑과 투쟁적인 실천의 시가 동시에 있다는 점이다. 시집을 읽고 사랑과 자유라는 두 단어가 각각 맴돌았는데, 글을 쓰는 지금은 그 두 단어가 맞닿은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의 의미를 좁게 생각하면, 특정 대상에 대한 감정으로 거칠게 정의할  수 있는데, 대상의 크기를 달리 할수록 그 정의가 계속해서 커질 수 있지 않을까. 어떤 가치나 집단으로 확대한다면, 자유 역시 사랑의 감정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시집을 다 읽고, '엘뤼아르는 사랑이 가득한 시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집을 읽다가 "나는 소망한다, 나에게 금지된 것"을 전문으로 한 시가 나와 놀랐다. 시의 전문을 제목으로 한 양귀자 작가의 소설을 전에 읽었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작가가 인용했다고 한다. (저 문장은 계속 봐도 참 멋있다) 이 외에도, 엘뤼아르는 다양한 예술가들의 영감을 준 시인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장 뤼크 고다르의 영화,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도 엘뤼아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엘뤼아르는 "시인은 영감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실제 많은 예술가가 그에게 영감을 받는다는 점이, 그의 말을 뒷받침하는 듯하여 뜻깊게 다가온다.

 

 전술했듯이, 엘뤼아르의 시는 다채롭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더불어, 아름답고 재밌는 문장과 시상도 많아 모두가 부드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생소한 시인일 수도 있으나, 일독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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