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민트 창비청소년문학 112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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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프록시모로 인해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6년째 간병하고 있는 19살 시안은 학교가 끝나면 매일 병원으로 간다. 평범한 고등학생의 삶을 살고 있는 지원의 이름은 원래 해원이었다. 해원의 가족이 프록시모의 국내 최초, 슈퍼 감염자가 되어 전 국민의 비난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해원은 개명을 하고 과거로부터 도망쳤다. 시안은 우연히 해원의 오빠 해일을 마주치고 가족이 엄마의 안부를 묻는 말에 완쾌했다는 거짓말을 한다. 이어 해원의 가족이 평범한 일상을 회복 중이라는 소식을 듣자 시안은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그리곤 쌍둥이 자매처럼 친했던 해원을 찾아간다. 고통의 시간을 공유했지만 현재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마주하며 충돌이 일어난다.


<페퍼민트>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돌봄 노동과 팬데믹이다. 소설 속에서는 다양한 돌봄이 등장한다. 해원과 해일은 강아지 소금이를 돌보고, 식물을 돌보던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어 시안과 아빠, 간병인 최선희 선생님의 돌봄을 받는다. 돌봄 노동에는 끝이 정해져있지 않기에 더욱 고통스럽다. 시안이 거짓말을 한 것은 간병을 하는 지치고 구차한 삶으로부터 자신을 속이고 싶었던 마음이 아닐까 싶다. 평범한 학생의 삶을 살며 미래를 계획하는 해원이 부럽고 미웠을 것이다.


해원의 엄마는 외국에 사는 여동생을 만나고 오면서 전염병에 감염된다. 해원의 가족이 슈퍼 감염자가 되어 받는 비난은 코로나 초창기 n 번째 확진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동선이 공개되고, 행적 하나하나를 꼬투리 잡으며 욕을 하고, 신상을 털며 마녀사냥을 하던 시기가 기억난다. 지금은 나와 우리 가족 역시 감염되었던 경험이 있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경험한 전염병이지만 당시에는 한 자릿수 두 자릿수의 사람들만이 전염되었다는 소식에 외출을 하지 않을 정도로 공포감이 심했다. 공포는 사람을 잔인하게 만든다. 


시안과 해원의 비극에서 잘못한 사람은 서로가 아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어긋난 세계에서 이들은 충분히 혼란스러워하고 불안해하며 서로를 이해한다. 그리고 함께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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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 내 삶을 바꾼 아웃사이더 아트
이소영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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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은 ‘내 삶을 바꾼 아웃사이더 아트’라는 부제로 이소영 작가가 오랜시간 관심을 가져온 아웃사이더 아트에 대한 애정이 전해지는 책이다. 이소영 작가는 다양한 아티스트를 소개하며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상, 고백을 담아 처음 보는 아티스트들이지만 쉽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들의 인생에서 내 삶의 순간들을 맞대고 나아갈 길을 발견하기도 한다.



여태껏 주목받아온 작가는 대부분 남성, 백인, 서양 강대국 중심, 제도권 내 화가들이었다. 최근 현대미술계가 집중하는 세가지 키워드는 여성, 다문화, 아웃사이더 아트이다. 잊히고 숨겨진 아티스트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차례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은 대부분 고단한 삶을 살았고 그림과 관계없는 직업을 가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예술을 택한 이유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기쁨이 되고 위안을 주고 해방감을 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신분열증을 앓은 아우구스트 나터러는 세상의 종말을 매일 겪으며 자신이 지진과 홍수에 책임이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서 주택들은 자주 물에 떠 있거나 조각난다. 그는 괴로운 분열과 광기를 작품으로 표현해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 독특함이 인상적이다.

파울러 모더존베커는 여성 화가 중 최초로 누드 자화상을 그린 작가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그림을 통해 도달해보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주체적인 노력이 작품에 드러난다.

플로린 미트로이의 기쁜지 슬픈지 인물의 감정을 느낄 수 없고 외롭고 공허한 분위기의 오묘하고 단순한 그림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오랜시간 바라보게 된다. 실제로 보게 된다면 어떠한 감상일지 궁금한 작품이다.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에서 소개하는 아티스트들 중 한 두명 빼고는 새로 알게 된 작가들이다.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그림을 얻어가게 되어 기쁘다. 책에 등장한 아티스트들의 전시가 한국에서 열리거나, 해외에 나가 이들의 작품을 마주친다면 무척 반가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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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블루 창비교육 성장소설 1
이희영 지음 / 창비교육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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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블루>는 어려서부터 미대 입시를 준비해온 바림이 고민하고 선택하는 이야기다. 빙판길에 넘어지면서 오른손을 다쳐 당분간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바림은 어릴 적 추억이 있는 시골에서 혼자 사는 여울 이모와 겨울방학을 보내기로 한다.




어떤 책은 나의 경험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고3 겨울방학이 떠올랐다. 나는 바림과 같은 시기에,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여섯 살 때부터 꿈이 선생님이었고 중고등학생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은 수백 번도 바뀐다는 장래희망인데 나에게는 한 길뿐이었다. 내가 이 직업과 성향이 맞지 않다는 것을 중학생 때 깨달았지만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없다고 대답하기 부끄러워서, 새로운 길을 찾기에는 내가 너무 게을러서 생각하기를 미루며 살았다.



인생에도 가끔 있는 길치가 나였다. 아닌데 싶으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그러다 고3을 앞두고서야 나에게 꿈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조급해졌다. 직업이라는 구체적인 미래를 정하려는 압박감을 내려두고 어차피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해야 한다면 그래도 내가 좋아해왔던 과목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타협을 했다. 괴로웠던 시기에 <챌린지 블루>를 읽었다면 내가 나를 덜 미워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업, 꿈, 미래에 대한 압박은 고3이 지난 현재에도, 앞으로도 끊임없이 맞닥뜨릴 순간이다. 나는 여전히 바림과 비슷한 고민을 또다시 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이 언제나 뜨겁고 열정적이고 불꽃처럼 타오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완전히 확신할 수 없어 망설이고 있다. 이럴 땐 좋아하던 일을 싫어하게 되었다고 인정하는 바림의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잠깐 멈추어 서서 나의 세계를 차근차근 살펴보는 일,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일. 조금 헤매더라도 이 시간들이 흐르면 온전한 내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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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호소의 말들 - 인권위 조사관이 만난 사건 너머의 이야기
최은숙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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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호소의 말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여년간 인권조사관으로 일해온 최은숙 저자의 경험이 녹아든 책이다. 진정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파헤친 무수한 사건들과 그 너머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다. 최은숙 조사관의 다정한 시선과 성찰은 깊은 울림을 준다.




'인권'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많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임에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무수하다는 모순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자에게 연약한 요소이기 때문에 시선이 간다. 그런 나에게 국가에서 운영하는 인권전담기관에서 조사관으로 근무하는 이의 기록이라니! 너무 흥미로웠다.




인권위의 도움을 받고자 찾아오는 이들은 억울한 일을 당한 약자이고, 문제 해결 과정 속에서도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통조림 두 개를 훔쳤다는 혐의로 구금된 노숙자, 말이 통하지 않아 정신병원에 감금된 이주 노동자, 관행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견디는 운동선수 등 우리가 뉴스나 기사로 접해본 적 있는 사건도 등장한다. 이 책은 기사 단 몇 줄만으로는 알 수 없는 당사자들의 실정은 섬세하고 사려깊게 들여다본다.




저자의 확고한 직업관과 일에 대한 애정, 사명감이 담뿍 느껴지는 책이다. 편견과 고정관념이야말로 인권침해의 시작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인권위 조사관이지만 때때로 자신의 한계를 느끼며 성찰하기도 하며 이제는 의도를 가진 악행보다도 무관심과 관행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인권침해가 더 늘어나고 있다며 관심을 촉구한다.



인권의 피해자들이 위선적인 범죄자일 때 깊은 회의감을 느끼며 인권의 이념과 현실 사이의 거리감을 자조하는 모습은 인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다가도 은퇴 후에도 인권 활동을 하려 계획하는 모습은 일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 즐거움이 전해진다.



안타까운 사건들에 마음이 아리기도 했고, 악질적인 범죄를 저지른 진정인의 뻔뻔함 모습에 같이 화가 나기도 했다. 간결한 문체와 에피소드 형식의 구성 덕분에 재밌게 술술 읽혔다. 강권하지 않고 부드럽게, 다정한 목소리로 건강한 가치관이 전해져 마음을 말랑하게 만든다. 호소하는 마음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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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갈증 트리플 13
최미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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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갈증>은 최미래 작가의 첫 소설집으로 코로나 시대의 고립감과 불안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소설의 제목인 녹색 갈증은 에드워드 윌슨에 의하면 다른 형태의 생명체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구다. 코로나로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 시공간에서 '나'는 결핍을 느끼며 소설 속과 현실 세계를 오간다.




'나'는 소설을 쓴다. 소설은 현실도피의 수단이기도 하고 자기혐오적인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창구이기도 하다. 과거의 나는 소설 속 윤조의 세계를 만들어가며 편안함과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소설 밖 현실에서 윤조를 맞닥뜨리며 어색함을 느낀다. '나' 대신 다정한 딸, 동생의 역할을 해내는 윤조의 모습을 보며 내가 쓴 소설에 윤조가 등장하는 것이 아닌 윤조의 소설에 내가 등장한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소설에서 '설탕으로 만든 사람' 이야기가 몇 번 등장한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 직접 설탕으로 세상에서 아름다운 사람을 빚은 공주가 나오는 이야기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빚어내듯,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이뤄내고 싶지만 무너질까 봐 불안해한다. 불안감에 짓눌린 '나'는 외부에 의한 실패가 아닌 스스로 망쳐버리는 길을 선택한다. 쌓아온 노력들을 쉽게 망치고 싶다는 자기파괴적인 마음을 생각해본다. 아무리 노력해도 평범한 삶에 가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다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나'에게 과거의 연인인 명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나'가 명을 이해할 수 없어서 사랑했다면, 명은 '나'를 이해할 수 없기에 사랑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당신이 사랑을 말한 순간 당신의 사랑은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난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최근 본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한 대사가 떠올랐다. 흔히 사랑은 상대와 같은 마음을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되지만 완벽하게 어긋나는 것이기도 하다.



현실과 소설의 경계가 모호하여 이해하기 쉬운 소설은 아니지만 무엇을 의미하는 은유인지 알고 싶은 갈증에 계속 읽게 되는 소설이다. 소설과 관련된 작가의 에세이와 해설이 함께 실려 미처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에 대한 답을 읽을 수 있다.



이 서평은 자모단 4기 활동의 일환으로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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