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코스텔로 창비세계문학 90
J. M. 쿳시 지음, 김성호 옮김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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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코스텔로>는 노벨 문학상, 부커상 2회 수상자인 J.M.쿳시의 후기 문제작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서구 식민주의의 야만에서 자유주의적 지식인의 취약성과 작가의 윤리까지 근현대의 첨예한 문제들을 집요하게 탐색하는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작가이다. 이번 책에서는 리얼리즘과 윤리, 인간과 동물의 권리, 아프리카 소설과 인문학의 본질, 악의 문제와 에로스 등에 대해 다룬다. 동명의 작가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는 주제들에 관한 강연, 토론을 통해 앞선 다양한 사유를 내보인다.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의 도발적인 질문과 극단적인 답변은 청중을 당황하게 하며, 독자들에게 불편함을 준다. 불편한 경이로움, 예리한 통찰의 즐거움은 이 소설이 주는 경험이다. 특히 동물권에 관한 주장이 돋보이는데, 다소 파격적이지만 20여 년에 쓰인 글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진보적이다.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는 농장을 농장이라 부르기 주저된다며 대신 '생산시설'이라고 일컫는다. 도살장, 실험실에서 동물들에게 자행되고 있는 일을 "무방비 상태에 있는 존재들에 대한 학살"이라 표현하며 그 살육은 홀로코스트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동물권과 비건에 대한 논의가 이제 막 관심을 받고 있는 현재로서는 놀랍게 느껴진다.





아프리카인들은 다른 사람들한테서 단절돼서 사적 세계로 빠져들고 싶어 하지 않으며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아프리카에서 만드는 책은 교과서 같은 교육용 책이 대부분이며 소설, 시를 다루는 아프리카 작가들은 해외 출판을 예상해야 밥벌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아프리카 소설은 구비 소설이며, 단어에 숨을 불어넣어 큰 소리로 말할 때 문학적 의미를 지닌다. 이런 점은 한국의 고전소설, 판소리와도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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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 창비시선 477
이설야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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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설야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시집은 폭력의 순간을 기록하여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는 그 순간을 엿보거나, 당사자가 되는 체험을 제공한다. <공중>에서는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전화를 걸며 오열하는 여자를 바라보고 <심지음악감상실>에서는 상점의 좁은 계단 아래에서 폭력의 순간을 엿보고 있는 상황으로 이동한다. <도마뱀의 고백>에서는 피해자 모임의 일원이 된듯한 기분이 든다. 이들과 비밀 하나씩을 엿듣고 있는 체험과 더불어 나 또한 말하고 싶은 욕망을 준다.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 비밀을 고백하면 폭력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심지음악감상실>은 이 시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였다. '입속으로만 미친 개자식아! 그만해! 외치며 덜덜덜 떨고' 있는 화자는 나와 동일시하게 된다. 음악감상실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은 음악으로 비유된다. '세상의 모든 음을 다 삼켜버리고 있었다 음이 음을 버리고 있었다' 폭력에 멜로디와 리듬감이 부여되는 상상을 하게 되어 더욱 참혹하고 끔찍하게 다가온다. '달력을 너무 많이 삼킨 여자들'은 시간이 흘러도 참는, 폭력에 익숙해진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심지음악감상실 아래에서 벌어지는 한 폭력에서 시작하여 지금도 폭력을 당하고 있는 무수한 여자아이들을 환기시키며 시는 마무리된다.

 

<심지음악감상실>에서 음악이 간접적으로 등장한다면 <가족 모임>에서는 음악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음식을 나눠 먹으며 말을 많이 하는 모습은 가족처럼 보인다. 그러다 언성이 높아지고 삿대질을 하며 소음이 발생한다. 너덜너덜한 말을 '크레셴도! 크레셴도!' 주고받고 나는 '데크레셴도, 데크레션도' 상태로 이 상황을 숨죽여 지켜본다. 이들이 흩어지는 모습은 '스타카토! 스타카토!'로 표현된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시는 음악을 활용하여 다툼과 폭력의 순간이 유쾌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 그들은 등을 보이며 나갔다 가족처럼'이라는 마지막 연은 씁쓸하게 다가온다. 가족이라면 상처를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싶다.

 

<감열지>에서 생각을 분리배출한다는 발상과 <증상들>에서 '공중은 한숨을 걸어놓기 좋은 장소', '한 숨이 한 숨에게 전염된다'며 코로나 시대에 전염되는 우울감을 표현한 부분들이 독특하고 신선했다. <상자>에서 나를 상자 안에 구겨 넣어 상자만큼만 기쁘고 슬프기로 하는 모습은 정량만큼 감정을 느낀다면 힘들지 않을 텐데, 기복이 없을 텐데. 감정의 과잉이 인간을 괴롭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라스틱 아일랜드>를 읽을 땐 환경에 관한 시는 처음 접해 새로웠다. 후반부 행갈이를 하는 부분은 눈이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에는 숨, 눈송이처럼 가볍고 공중에 날아다니는 오브제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비유는 이설야 시인이 주목하고자 하는 폭력과 착취가 우리 사회 곳곳에 공기처럼 만연하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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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브 (양장) 소설Y
단요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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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망해도 누군가는 살아간다. <다이브>는 빙하가 모두 녹아 홍수가 난 2057년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홍수보다는 물에 잠긴 세계에 더 가깝다. 물꾼 선율은 잠긴 도시에 입수해 쓸만한 물건과 전리품을 건져온다. 그러던 중 기계 인간 수호를 발견하고 깨우게 된다. 사 년의 기억을 잃은 채 멸망 후의 세계에 깨어난 수호는 전리품을 겨루는 내기에 나가는 대신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달라고 제안한다.

 

"서울은 언제나 한국의 동의어였다." 첫 문장부터 무척 공감이 되어 사로잡혔다. 자연재해로 인한 디스토피아는 환경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지금, 더욱 실감 나게 다가온다. 빙하가 모두 녹아 해수면이 상승해 물에 잠겼다니. 근 미래에 충분히 가능한 일로 느껴진다. 소설 속의 이야기 같지만은 않아서 마음이 힘들었다.

 

조예은 작가는 추천사에서 “내가 디스토피아를 읽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바로 <다이브>의 선율과 수호처럼.”이라고 소개한다. 온 세계가 물로 차오른 세계에서 살아지므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서로를 만나 삶의 이유를 발견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단요 작가의 첫 소설인데, 앞으로의 작품들도 기대된다.

 

수호는 어린 나이에 암으로 인해 일찍 죽는다. 딸을 떠나보내기 힘들었던 수호의 부모는 당시의 시냅스 스캐닝 기술을 통해 수호의 기억을 지닌, 수호와 같은 외형의 기계를 구현한다. 죽은 이의 기억과 의식을 그대로 구현했으니 환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이브>는 죽은 딸을 기계로 살린 상황은 윤리적으로 어떠한가 질문을 던진다. 수호는 죽음 후에 무언가가 있길 바라지 않았다. 수호가 기계 인간으로 다시 살아난 것은 온전히 부모님의 욕심이었다. 인간의 능력으로 죽은 이를 되살릴 수 있다면 애도의 의미, 삶의 의미가 존재하는 것인가 의문이 든다. 출생은 자신의 의지로 조절할 수 없으나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는 가능하다면 존중되어야 하지 않을까. 수호의 선택이 공감되었고 고통스러움이 전해졌다.

 

<다이브>는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 떠나지만 정체되어 있지 않다. 회피해 온 갈등과 마주하여 서로의 상처를 위로한다. 세계가 가라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아픔과 슬픔을 공유하고 그리움을 발판 삼아 미래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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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쇼핑목록 네오픽션 ON시리즈 2
강지영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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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쇼핑목록>은 설현, 이광수가 출연한 동명의 드라마의 원작 소설로 총 7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서늘한 스릴러에 판타지스러운 설정들이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소설과 웹툰 두 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강지영 작가는 일상적인 소재와 기묘한 사건들을 통해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오컬트적인 소재를 다뤄 낯설지만 신선한 재미가 있었다. <덤덤한 식사>는 길고양이를 화자로 삼았다는 점이 소설의 독특함을 더했다. <용서>는 선의로 한 행동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이끌었다는 점이 안타까워 주인공에게 가장 마음이 갔던 소설이다.




가장 재밌었던 소설은 <러닝패밀리>이다. "쌤, 러닝패밀리 캐릭터가 죽으면 그 숫자만큼 사람이 사라진대요. 그래서 우는 거예요, 주하." 러닝패밀리는 게임 쿠키런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게임과 현실이 혼재할지도 모른다는 기이한 현상은 섬찟함을 불러일으킨다.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러닝패밀리의 개발자라는 설정은 판타지보다는 sf스럽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소설은 소외된 이에게 미지의 구멍은 출구가 아닌 입구이라 외치게 하는 사회의 문제를 제기한다. <러닝패밀리>를 읽고 나니 한 문장이 떠올랐다. '올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다양한 소재의 7편의 소설이 서늘한 재미를 준다. 무더운 여름, 킬링 타임 용으로 빠르게 몰입하여 읽을만한 장르소설을 찾는다면 <살인자의 쇼핑목록>을 추천한다.




이 서평은 자모단 4기 활동의 일환으로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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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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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는 어린 딸이 살해당한 사건을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로 뻗어나간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히가시노 게이고는 사형제도에 대한 첨예한 대립을 보여준다. 지금의 법은 범죄자에게 더욱 관대한 것처럼 보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 알 수 없을 어린 딸이 살해된 고통과 그 고통을 관통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사형제도의 부당함을 증폭한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 있는가? 교도소에서 반성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과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면서 사는 것, 무엇이 진정한 속죄인가? 작가는 사형제도의 허점과 모순을 드러내며 끊임없이 질문을 건넨다.

 

일본 소설은 잘 읽지 않는 편이라 놀랍게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처음 읽어본다. <공허한 십자가>는 과거에 딸이 살해당한 사건에서 지금은 전부인인 사요코가 살해당한 사건, 사요코를 살해한 노인의 숨겨진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이 과정 속에서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던 두 부부가 촘촘히 연결된다. 추리소설의 대가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답게 탁월한 서스펜스를 보여준다. 이 책은 사형제도라는 소재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던진다. 미스터리 소설의 역할인 재미를 주면서 독자가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 여운을 남긴다.

 

*스포일러

후반부에서 인물들의 사고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사오리와 후미야 이 둘은 갓난아이를 살해한 살인자이다. 그러나 사오리는 후미야가 피임에 책임을 지지 않아 임신하게 된 피해자이기도 하지 않나. 사오리 역시 강하게 거절을 했어야 하지만 후미야를 사랑한 여성들을 멍청할 정도로 순진하고 남성에 순종적인 성격으로 그린다. 사오리는 내내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데, 후미야는 사오리의 현재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속죄를 위해서 만삭의 미혼모인 하나에와 결혼한 것이 동정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사오리의 인생을 망친 것에 대한 죄의식은 하나도 없으면서 생판 남인 하나에를 구원해서 속죄하겠다는 것은 선민의식이라 생각한다. 이는 하나에에 대해 우월감을 가진다는 반증이다. 내가 하나에라면 자신을 구원한 고마움과 그의 가식적인 사고에 역겨워하는 마음이 동시에 생기면서 양가적인 감정이 들 텐데 <공허한 십자가>의 하나에는 자신을 향한 사랑이 숭고한 영혼에서 나왔다는 것을 깨달아 감사의 마음이 한층 강해졌다는 부분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서평은 자모단 4기 활동의 일환으로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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