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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의 이름에는 이야기가 있다 - 생각보다 인간적인 학명의 세계
스티븐 허드 지음, 에밀리 댐스트라 그림, 조은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8월
평점 :
<생물의 이름에는 이야기가 있다>를 읽은 이유는 이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김춘수의 <꽃>에서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특별한 존재가 되거나,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서 소소하지만 특별한 아름다운 이름들을 열거하는 것처럼 이름에는 지칭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 생물학에서 이름을 지어주는 것, 즉 학명을 정하는 것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궁금했다.
지극히 문과적인 관점에서 시작한 책이지만 학명에 대한 다양한 지식도 얻었다.
또한 생물에 대한 지식이 없지만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므로 큰 장벽 없이 재밌게 읽었다.
짧게 여러 챕터로 구성되어 시간 날 때마다 한 꼭지씩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군데군데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어, 도감을 읽는 느낌도 났다.
'학명을 왜 짓는가'에 대해 학자 입장에서 생각했을 땐 단순히 분류체계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보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이유로 무엇을 정확히 지칭하는지 색인 기능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대상을 지배한다는 기분까지 들게 한다는 부분에선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낭만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다른 관점이라 신기했다.
유명 인사의 이름으로 학명을 짓는 것이 과연 좋은 생각인지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학명의 가치를 낮추고 대중에게 종의 발견과 계통분류학을 시답잖은 장난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말한다.
오히려 엄숙주의를 타파하고 분류학이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유명 인사의 이름으로 종을 명명했다가 시간이 지나 후회하거나 철회하고 싶은 상황이 닥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명명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이를테면 유명 인사의 이름으로 학명을 지었는데, 그 유명 인사가 범죄자가 된다거나 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대로 후대에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사건을 상기시키고 경각심을 주는 역할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학명을 싫어하는 사람의 이름을 이용하여 대상과 유사점을 통해 모욕을 주는 경우가 있다.
학명으로 공격을 주고받는 것이 힙합의 디스전 같고 고상하게 느껴지던 학자들이 굉장히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달팽이 아이기스타 디베르시파밀리아의 학명은 모두에게 사랑할 자유가 있고 모두의 사랑이 동등하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나타낸다.
학명은 동성 결혼의 평등권을 지지하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다.
학명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정치적 표현을 전달한 것이지만, 평등을 전달하는 메시지라면 충분히 이용해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분류학에서 새로운 종을 발견할 때, 토착민의 공헌은 종종 무시되거나 적어도 강조되지 않는다.
굉장히 백인 남성 위주 사고방식의 학계인듯하다.
단순히 토착민의 이름을 가진 학명을 늘리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 어떤 문화 속에서는 사람 이름을 학명으로 짓는 것이 자연에 모욕을 주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토착민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그들의 공로가 인정되어야 한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자기 이름으로 명명하는 것은 이 바닥에 심한 결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라는 부분이었다.
가족이나 존경하는 인물, 연예인, 작품 속의 인물 심지어는 싫어하는 사람의 이름을 붙여도 되지만 본인의 이름만은 안된다는 것, 그것이 규칙이 아닌 암묵적인 약속이라는 것이 독특했다.
이 집단이 굉장히 겸손을 중요시하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이름들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학명에 사람에 이름이 붙은 경우에는 막연히 발견자의 이름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속에 드넓은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경험했다.
아마 내 평생 볼 학명들은 이번에 다 읽은 듯 하다ㅎㅎ
전혀 몰랐던 세계가 생각보다 인간적이고 흥미로웠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