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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늙어버린 여름 - 늙음에 대한 시적이고 우아한, 타협적이지 않은 자기 성찰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지음, 양영란 옮김 / 김영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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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늙어버린 여름>은 어느 여름날 노인이 되었음을 깨닫고, 노화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서술한다. 20대인 나에게 노년의 삶이란 너무나 멀게 느껴지기에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멋쟁이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기에 여성 노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사회에서 보이는 노인의 삶은 우아하고, 안정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이 대부분이며 사람들은 그런 모습들을 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언젠가 반드시 겪을 노화 그대로를 솔직하게 말하는 앞선 세대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반세기를 앞서 태어난 작가의 이야기지만 단순히 늙음에 대한 책이 아닌 여성으로서의 삶 또한 다루기에 공감이 되었다.

 

나의 엄마는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얼굴에 주름이 생기지 않도록 마스크팩을 하고, 마사지를 하고, 크림을 바르며 부단히 노력한다. 나이 들어 보이지 않도록 옷을 입고, 피부가 처지지 않도록 운동한다.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아? 주름 생긴 것 같지 않아? 엉덩이가 처져 보이지 않아? 끊임없이 물어보는 엄마가 귀찮았고, 왜 이렇게 외면에 집착할까 의문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엄마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이 사회에서 학습된 여성성은 내 경험으로 넘을 수 없을 것이므로. 엄마가 이 책을 읽으면 공감과 위안을 얻지 않을까 싶다. 내 경우 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처지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눈이 침침해지고 몸이 뻐근해지고 질병이 생기는 것은 두렵다. 벌써부터 허리와 목이 뻐근하고 눈이 뻑뻑한데 평생 이 몸을 부양해야 한다니 애석한 일이다. 교체할 기회를 한 번은 줘야지...

 

내가 늙어버린 '여름'이지만 부쩍 추워진 요즘 읽기 좋은 책이다. 노년은 계절로 따지자면 겨울에 가까우니 말이다. 짧은 챕터들로 구성되어 머리맡에 두고 잠들기 전 포근한 이불 속에서 편안하게 읽기 딱 좋다. 읽는 동안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가 떠올랐다. 두 책의 결이 비슷하기에 <명랑한 은둔자>를 재밌게 읽었다면 <내가 늙어버린 여름>도 취향에 맞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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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하다는 사실은 조심하지 않으면 닥칠 수 있을 모든 일에 불안해하는 겁쟁이가 되도록 하는 걸까? 어제보다 위험해진 세상에서 삶의 방식을 변하게 하는 걸까? 나는 이제껏 해왔듯 단호한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온갖 구실을 대면서 주춤거리게 될까? /23p

 

늙은 몸을 보여준다는 건, 남성의 몸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으면서 여성에 대해서는 외적인 아름다움과 젊음을 높이 치켜세우는 우리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일이므로. /74p

 

예전에 비해서 피로를 느끼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어쩌겠는가. 야심 차게 세웠다는 계획도 속을 들여다보면 전에 비해서 훨씬 소박하고, 과거지사에 대한 추억만 훨씬 더 또렷해진다. 매사에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눈에 띄게 소심해지는 가 하면, 주름살이 한층 깊어지고, 내딛는 발걸음은 훨씬 조심스러워지며, 몸의 구석구석이 점점 더 자주 속을 썩인다. /156p

 

하지만 이 주제에 관해 글을 쓴 여성들 중에 자신들의 개인적인 쇠락을 보다 광범위한 사회의 쇠락과 비교한 사람은 아주 드물다. 그 까닭은 어쩌면 여성들은 어차피 힘이나 권력을 가져본 적이 없으므로 그걸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따위는 느끼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170p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결별이며 오해, 멀어짐을 겪은 탓에 나는 당장 해결해야할 집안 문제에 집중하고, 분노 속으로 피신하는 편이 슬픔이 나를 무차별 공격하도록 방치하는 것보다 훨씬 쉬었다. /181p

 

죽음, 나에게는 현실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죽음이 내가 늙은이가 되어버린 그 여름 이후 줄곧 나를 따라다닌다. /1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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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 변론 - 미래 세대와 자연의 권리를 위하여
강금실 지음 / 김영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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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환경 관련한 SF 소설들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구의 종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뉴스에서 동해안 해변 침식의 가속화를 접하고 머나먼 시간 후의 일도, 북극이나 저 태평양만의 일이 아니구나 생각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변에 환경을 생각하고 비건을 지향하는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라이프 스타일에도 신경을 쓰게 되었다.

<지구를 위한 변론>은 환경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의 흐름을 가볍게 톺아본다.

단순히 환경만에 대한 책은 아니다. 지구를 위한 '변론'이라는 제목에 맞게 법학 담론에 대해 다루는 '지구법학 이야기'이다.

지구의 현 상황을 자각하고 미래세대를 위한 다양한 의견, 자연의 권리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5부 구성에 여려 챕터로 짧게 구성되어 있기에 자투리 시간에 틈틈이 읽기 좋다.

여성 법무부 장관이 환경에 관한 책을 썼다는 것이 신선했다.

강압적으로 느껴졌던 법을 전체 중심으로 시야를 돌려 자연 해방의 관점으로 바라봤기에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챕터가 시작할 때마다 소제목, 핵심 문장, 일러스트가 등장하는데, 표지에서 보이듯 일러스트가 핵심적이고 간결해서 취향이다...

그래프와 도표를 곁들여 한눈에 들어왔다. 이해가 쉬웠다.

그래, 지구온난화가 심하니까 환경을 위해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야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충격적이었다.

몇십억 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기간을 살아온 지구를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죽음 코앞까지 내몰고 있었다.

이에 대해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화성 이주가 현실화되더라도 머지않아 화성은 지구처럼 삭막해질 것이다.

우리는 다른 행성에 의지하는 것이 아닌, 지구를 살리는 것에 목적을 둬야 한다.

자연을 공동체로 여기는 것이 단순히 보호하는 것이 아닌,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인간만이 지구 구성원이 아닌, 모든 생명과 자연의 존재들이 주체이므로 기존의 법과 다른 체계를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동안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시기에서 당연한 것으로 건너온 것처럼 이룰 것이다.

단순히 환경 위기를 깨닫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과거부터 다뤄온 환경에 관한 다양한 생각들을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특별한 존재가 아닌 동등한 존재로서 다른 존재들을 존중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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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의 이름에는 이야기가 있다 - 생각보다 인간적인 학명의 세계
스티븐 허드 지음, 에밀리 댐스트라 그림, 조은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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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의 이름에는 이야기가 있다>를 읽은 이유는 이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김춘수의 <꽃>에서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특별한 존재가 되거나,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서 소소하지만 특별한 아름다운 이름들을 열거하는 것처럼 이름에는 지칭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 생물학에서 이름을 지어주는 것, 즉 학명을 정하는 것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궁금했다.

지극히 문과적인 관점에서 시작한 책이지만 학명에 대한 다양한 지식도 얻었다.

또한 생물에 대한 지식이 없지만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므로 큰 장벽 없이 재밌게 읽었다.

짧게 여러 챕터로 구성되어 시간 날 때마다 한 꼭지씩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군데군데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어, 도감을 읽는 느낌도 났다.

'학명을 왜 짓는가'에 대해 학자 입장에서 생각했을 땐 단순히 분류체계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보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이유로 무엇을 정확히 지칭하는지 색인 기능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대상을 지배한다는 기분까지 들게 한다는 부분에선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낭만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다른 관점이라 신기했다.

유명 인사의 이름으로 학명을 짓는 것이 과연 좋은 생각인지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학명의 가치를 낮추고 대중에게 종의 발견과 계통분류학을 시답잖은 장난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말한다.

오히려 엄숙주의를 타파하고 분류학이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유명 인사의 이름으로 종을 명명했다가 시간이 지나 후회하거나 철회하고 싶은 상황이 닥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명명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이를테면 유명 인사의 이름으로 학명을 지었는데, 그 유명 인사가 범죄자가 된다거나 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대로 후대에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사건을 상기시키고 경각심을 주는 역할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학명을 싫어하는 사람의 이름을 이용하여 대상과 유사점을 통해 모욕을 주는 경우가 있다.

학명으로 공격을 주고받는 것이 힙합의 디스전 같고 고상하게 느껴지던 학자들이 굉장히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달팽이 아이기스타 디베르시파밀리아의 학명은 모두에게 사랑할 자유가 있고 모두의 사랑이 동등하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나타낸다.

학명은 동성 결혼의 평등권을 지지하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다.

학명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정치적 표현을 전달한 것이지만, 평등을 전달하는 메시지라면 충분히 이용해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분류학에서 새로운 종을 발견할 때, 토착민의 공헌은 종종 무시되거나 적어도 강조되지 않는다.

굉장히 백인 남성 위주 사고방식의 학계인듯하다.

단순히 토착민의 이름을 가진 학명을 늘리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 어떤 문화 속에서는 사람 이름을 학명으로 짓는 것이 자연에 모욕을 주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토착민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그들의 공로가 인정되어야 한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자기 이름으로 명명하는 것은 이 바닥에 심한 결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라는 부분이었다.

가족이나 존경하는 인물, 연예인, 작품 속의 인물 심지어는 싫어하는 사람의 이름을 붙여도 되지만 본인의 이름만은 안된다는 것, 그것이 규칙이 아닌 암묵적인 약속이라는 것이 독특했다.

이 집단이 굉장히 겸손을 중요시하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이름들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학명에 사람에 이름이 붙은 경우에는 막연히 발견자의 이름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속에 드넓은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경험했다.

아마 내 평생 볼 학명들은 이번에 다 읽은 듯 하다ㅎㅎ

전혀 몰랐던 세계가 생각보다 인간적이고 흥미로웠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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