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모들 창비만화도서관 7
근하 지음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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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모들>은 중의적인 제목이다. 주인공 효신이 사랑하는 이모들,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이모들. 부모님과 이별을 겪은 중학생 효신이 또 다른 가족을 받아들이는 이야기이다. 효신은 열여섯이 되던 해 봄, 교통사고로 엄마를 떠나보내고 아빠는 병이 생겨 이모가 있는 대구에 머무르게 된다. 십 년 만에 만나 어색한 이모와 더 어색한 이모의 동거인. 효신과 진희와 주영은 세 계절을 함께 보내며 서로를 이해하고 상처를 보듬어준다.





효신은 진희 이모와 이모의 동거인인 주영이 친구가 아닌 동성 연인 관계라는 사실을 알고 혼란스러워한다. 불편한 마음에 이모와 거리를 두고 방황하다 왜 이모와 십 년간 남처럼 지내왔는지 깨닫게 된다. 엄마와 아빠는 이모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아빠는 차별적인 발언을 뱉는 사람이었다. 기억이 떠오르자 효신은 부끄러워진다. 이들은 각자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고 사과하고 배려하며 손을 맞잡는다.




여기 이모, 이모의 동성 연인, 조카로 이루어진 대안가족이 있다. 이들을 가족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정상가족'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부모님 중 한 분의 전기문을 쓰는 방학숙제를 준다. 편견을 걷어내고 사랑으로 이루어낸 가족과 함께 사는 효신에게는 불편하고 이질적인 숙제였을 것이다.




진희와 주영의 관계에 혼란스러워하던 효신은 이모들과 함께 지낸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성장했다. 이모들과 보낸 시간을 평생 껴안고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이모들을 사랑하게 된다. 지금도 수많은 퀴어들이 지워지고 있다. 동거하는 연인을 친구라서 같이 사는 거라고 예상하듯이. 우리 주변에 존재할 이들과 함께 살고 나아가도록 응원하는 따뜻한 이야기이다. 나는 이모가 한 명도 없는데 두 명의 이모가 생긴 효신이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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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 - 신진 작가 9인의 SF 단편 앤솔러지 네오픽션 ON시리즈 1
신조하 외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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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는 신진 작가 9인의 SF 단편 앤솔러지다. 한국 SF 소설이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요즘, 신인작가들의 다양한 소설을 통해 취향에 맞는 작가를 미리 접할 수 있는 기회이다. 9편의 소설들은 SF적 상상력을 통해 현실과 전혀 다른 미래를 그리지만 현시대의 논의를 끌어당겨 '인간다움'에 대해 탐색한다.






<인간의 대리인>은 무뇌증으로 태어나 '투명 뇌'를 이식받고 변호사로 활동하는 내용이다. AI 판사가 활동하는 세계에서 인공 뇌 변호사를 차별하는 모습은 모순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가 이번에 맡은 사건의 쟁점은 알츠하이머 임상실험의 부작용으로 좀비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안락사 될 권리이다. '인공 뇌'와 '좀비' 다양한 형태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해보게 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단편은 표제작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이다. 주인공은 교통사고 가해자의 친척인 양 합의를 호소하는 등 대리로 감정을 소모하는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같은 처지의 남성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흐름은 일반적인 소설처럼 보인다. 그러나 AI 회사인 '토탈 이모션'이 등장하면서 SF스럽게 전환되는 전개가 재미있었다. 한 방송을 통해 그러니까 캡쳐본으로 여유 있는 사람은 오프라인 경험을 많이 하는 반면 가난할수록 온라인 경험에 치중된다는 연구를 접했다. 지금도 빈부격차가 경험의 차이를 빚어내는데, 경험 자체를 판매하게 되는 소설 속 세계관에 씁쓸해진다.




<도덕을 도매가에 팝니다>는 우주 공항 테러 이후 도덕에 규격을 매긴 사회를 그린다. 택배 배달부 정수는 도덕 베타의 미달로 인해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는다. 그러다 한 독거노인이 도덕 베타 5.4 칩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고 그것을 훔치려 한다. 도덕은 정량화될 수 있는가? 소설 속 규범은 지금 우리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황당한 억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각 버전에 해당하는 도덕규범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의도와 반대되는 결과를 도덕적으로, 비도덕적으로 단언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이 서평은 자모단 4기 활동의 일환으로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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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새소설 11
류현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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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은 '가족 간병'이라는 소재를 통해 한 가족의 갈등과 비극을 이야기한다. 파격적인 제목으로 눈길을 사로잡으며 가족의 의무, 애정과 증오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이 떠오르는 소설이다.

 

노부모 김영춘과 이정숙의 죽음. 소설은 찹쌀떡이 목에 걸려 죽어가는 어머니와 칼에 찔려 피 흘리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안정된 연금이 나오는 공무원 출신에 서울시내 자가 단독주택을 소유한 부부를 살인한 살인사건의 용의자는 그들의 네 자녀들이다.

 

첫째, 김인경은 초등학교 교사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똑똑하고 학벌도 좋은 남편은 걸핏하면 퇴사를 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건 김인경의 몫이었다. 삼수생인 둘째 아들은 수능을 끝내고 친구들과 놀러 갔다 오겠다고 김인경의 차를 몰래 가져가 사고를 낸다. 음주 운전으로 임부를 차로 친 것이다. 부모님, 동생들과의 갈등까지 더해지자 김인경의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학생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일까지 저지른다.

둘째, 김현창은 대학병원 심장내과 의사로 집안의 자랑거리이다. 그는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멸시하며 '생에 집착하는 대신 다음 세대에 자리를 내주고 조용히 비켜주는 것, 그것이 인간의 순리고 최고의 유산'이라 여긴다.

 

셋째, 김은희는 이혼 후 아들과 단둘이 햇빛도 들지 않는 열악한 집에서 살다 어머니가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 사건 이후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 함께 살며 간병을 하기로 결정한다. 길어지는 투병생활과 애인을 비난하며 사사건건 간섭하는 부모님의 태도에 김은희는 분노를 안고 살아간다.

 

막내, 김현기는 10년간의 공무원 준비를 포기하고 물류창고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로 살아가며 생계를 유지한다. 낙오한 삶이라는 열등감에 휩싸인 자신을 멸시하는 가족들에게 상처 입은 김현기는 단란했던 시절을 추억한다.

 

가족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관계이지만 누구나 가족을 미워한다.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상처 주는 키를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다.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에서 "가족이니까."로 설명되는 대부분의 말과 행동은 상처를 주고 파멸로 이끈다. 사랑해서, 걱정돼서, 아끼는 마음으로 한 모든 것들은 본연의 의도를 잃어버린 채 서로를 원망하고 외롭게 만든다. 가족인데 이런다고? 싶다가도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는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의 가족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잔혹한 단면을 조명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서평은 자모단 4기 활동의 일환으로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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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용기
휘리 지음 / 창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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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용기>는 긴 겨울방학 동안 서먹해진 두 친구가 우정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는 이야기이다. 겨울에서 봄까지 계절이 변하는 동안 두 친구의 관계의 변화가 따뜻하고 투명한 그림체로 표현된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서먹해진 친구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는듯하다. 어릴 적 우리들은 친구가 세상의 전부였고 사소한 감정 변화 하나에 안절부절못하곤 했다. 방학 동안 친구를 보지 못해 서먹해지기도 하고, 새 학기의 부산스러움에 다른 친구를 사귀는 동안 옛 친구와 멀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용기를 가지고 편지를 보낸다.

 

두 친구가 편지를 통해 오해를 풀고 처음 맞닥뜨렸을 때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펼쳐진다. 빈 여백에 두 주인공만이 놓여 서로를 바라볼 때 그들은 같은 감정을 주고받는다. 그리움과 반가움. 그동안의 무수한 고민들은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고 서로에게 손을 흔든다. 이들의 용기는 관계를 회복시키고 더욱 단단해지는 계기가 된다. 이전처럼 다시 가까워져 손잡고 인사하고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다 말할 수 있는 친구로 돌아온 것이다. 이들은 흔들리는 봄을 견디고 여름으로, 가을로 함께 나아간다.

 

어른이 된 우리는 쉽게 관계를 포기하곤 한다. 사는 게 바빠 연락을 하지 못하고 만남을 미루다다 보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도 하고 때를 놓쳐 서먹해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용기를 내기 힘들어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용기를 낼 생각을 접어버린 채 영영 용기를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잊었던 용기>를 읽고 떠오른 친구가 있다면 용기를 내어보자.

 

연두색을 좋아하는 터라 <허락 없는 외출>을 통해 휘리 작가를 접하고 관심을 가졌는데 <잊었던 용기>를 읽게 되어 기쁘다. 휘리 작가가 표현한 함박눈, 목련, 개나리, 벚꽃, 봄비는 페이지를 가득 채워 계절의 변화를 나타낸다. 맑고 투명한 그림체로 따뜻함을 선사하며 독자에게 포근한 위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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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와 야생란
이장욱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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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겨울을 떠올리는 일을 좋아한다. 반대편의 계절을 생각하고 있으면 왜 가질 수도 없는 날씨를 좇고 있나 싶기도 하다. 지금은 다다를 수 없기에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눈송이들을 상상하고 있으면 겨울인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더위가 누그러지는 기분이 든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트로츠키와 야생란>을 읽으며 겨울을 떠올렸다. 한여름에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읽으니 '너'를 그리워하는 일에 더욱 몰입이 되었다. 바흐의 연주를 들으며 책을 읽었는데 단정하고 담백한 바흐의 음악이 무척이나 어울리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떠올리고, 추억한다. 누군가는 이미 죽은 사람이기도 하고 옛 연인이기도 하고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어릴 적 친구이기도 하다. 담담하고 건조한 이야기들은 아름답고도 슬프다. 이미 떠나간 이들은 기억됨으로써 이 세계에 존재한다. 그 과정에서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현실과 꿈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기묘한 분위기를 준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삶 속의 세밀한 감정들이 아름답게 빛나는 소설이다. 이 감정들은 큰 울림으로 다가와 어딘가에 존재할 인물들을 기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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