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이마를 쓰다듬는 꿈속에서 창비시선 480
유혜빈 지음 / 창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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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빈 시인의 첫 시집인 <밤새도록 이마를 쓰다듬는 꿈속에서>는 마음과 꿈의 시집이다. 차분하고 따뜻한 언어들이 늦여름, 초가을의 높은 하늘과 어우러진다.

 

<카프카의 집> 속 '세는 일을 그만두면 마음이 새어나가는 것만 같아서 무언가 해야만 했'다는 구절이 마음에 박힌다. 내가 가진 유무형의 것들이 달아날까 봐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공감이 간다.

 

<파도의 법>은 붕괴하는 시간을 이야기한다. 당연한 시간의 흐름이 먹먹하게 다가온다. '도둑처럼 오는 시간이 있다고' '물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도둑질 당하듯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의 감정을 느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그 당시가 아닌 종결된 후이기도 하다. 감정과 시간의 비동시성이 슬프고도 아름답다.

 

영원이라는 단어는 시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다. <카페 산 다미아노>의 영원은 누군가의 이름인 것 같기도 하다. 울림소리가 반복되는 부드러운 어감도 좋고 0과 1로 이루어진 단어라는 점도 좋다. 0과 1 그 자체로 무한함을 의미한다.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는 것. 본질을 알 수 없기에 영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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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다이브 소설Q
이현석 지음 / 창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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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이 가리려고 했던 사실은 방관 또는 가해였다는 점.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어보아도, 결코 가려지지 않는 사실은 그것이 비겁하디비겁한 가해였다는 점.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합리화를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방관 역시 가해라는 것이다.




'민스서프'의 서핑 강사 태경은 3년 전 서핑에 빠져 발리에 정착했다. 민스서프는 마케팅의 일환으로 인플루언서 '민다'에게 협찬을 제공하기로 한다. 그러나 태경은 카메라를 들이밀며 수업을 진중하게 대하지 않은 것만 같은 민다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런 민다가 태경에게 자신을 못 알아보느냐 묻는다. 태경은 민다가 종합병원의 검진센터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임을 알게 된다. 민다는 간호계 내 직장 괴롭힘 즉 '태움'의 피해자였다. 인간은 타인의 상처를 너무 쉽게 잊곤 한다. 태경과 민다의 관계는 투명한 벽이 가로놓인 듯 이질감을 주며 불화한다. 그러나 끝끝내 외면해 온 과거를 직면할 때, 늘 같은 자리에서 멈췄던 둘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시계는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다.



덕다이브는 서핑 용어로 “바늘을 꿰는 것처럼 수면 아래로 파고들어가” 파도를 흘려보내는 기술이다. 가를 수 없이 높은 파도라면 그 위로 올라서지 않고 되레 파도 아래로 깊이 침잠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을 모든 상황에 대입할 수는 없다. 즐길 수 없다면, 너무나도 고통스럽다면 피하는 것 역시 방법이 된다.



장편소설이지만 미니시리즈처럼 여러 장의 형식이라서 부담 없이 호로록 읽혀서 책장을 연 순간부터 끝까지 읽어나갔다. 갈등의 극점에서 짧고 간결한 문체로 전환되는 특징이 매력적이다. 혼잣말 같은 문체는 태경의 심리에 더욱 집중하게 한다. 시적이다. 태경과 함께 감정의 소용돌이로 빨려 드는 듯하다. 여름의 잔상이 사라지기 전에 뜨거운 섬 발리의 파도를 느낄 수 있어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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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주의자 고희망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7
김지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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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주의자 고희망>은 언젠가 종말할 것이라 믿는 중학생 고희망의 성장소설이다.

 

희망은 종말에 관한 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희망은 어린 시절 동생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사고 이후, 희망은 단 하나의 표정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듯한 부모님과 거리감을 느낀다. 그런 희망에게 종말에 관한 소설을 짓는 것은 감정의 분출구이다.

 

희망에게는 가족 중 유일하게 제 편이라고 생각하는, 친구 같은 삼촌 고요한이 있다. 완벽하게만 보이던 그에게서 비밀을 목격하고 서운함을 느끼지만 이내 비밀을 공유하며 관계는 단단해진다. 고희망이 부모님과 마찰을 겪으며 동생의 죽음이 제 탓인 양 괴로워할 때도, 고요한이 아웃팅을 당해 사회의 따가운 시간에 괴로워할 때도 이 둘은 서로에게 손을 내밀며 바닥을 딛고 일어설 힘을 건넨다. <종말주의자 고희망>은 고요한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고요한과 고희망의 유대감이 무척 부럽다. 나이를 넘어 서로의 속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는 흔치 않으니까.

 

희망이 인류의 멸종을 말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나 역시도 인류애가 사라지는 세상의 어지러운 뉴스들을 접하고 나면 왜인지 멸망 속에서 반짝이는 사랑 이야기에 눈이 가기 때문이다. 희망이 죽음과 종말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진 것은 역설적으로 지속되는 삶에 대한 의지임을 깨닫는 것처럼, 흐릿해지는 인류애 속에서 사랑을 믿어보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이 서평은 자모단 4기 활동의 일환으로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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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첫번째 - 2022 시소 선정 작품집 시소 1
김리윤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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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첫번째 : 2022 시소 선정 작품집>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매 계절 발표된 시와 소설을 한 편씩 선정하여 좋은 작품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작품집이다. 안미옥, 손보미, 신이인, 이서수, 김리윤, 최은영, 조혜은, 염승숙 작가의 시와 소설이 실려있다. 다양한 작가진들의 작품을 한 데 모아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보다 일찍 접할 수 있고 알지 못했던 작가들을 발견하는 기회가 된다. <시소>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작가와 평론가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의 해설과 비하인드, 근황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터뷰 말미에 있는 큐알코드를 통해 인터뷰 영상까지 시청할 수 있다.

시 중에서는 신이인 시인의 <불시착>이 마음에 들었다. 외계인이 선물이라며 주고 간 운석은 나의 집을 파괴한다. 운석이 신기한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이 집구석을 구경하러 온다. 그리고 '나'의 삶도 파괴된다. 악의라고는 한 톨도 없는 선물일지라도 누군가에겐 거실에 드러누워 울고 싶어지는 원한 적 없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시를 읽으며 나와 타인의 관계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 혼자만의 선한 의도로 타인의 영역을 침범한 적은 없는지에 대해 말이다.

이 책을 처음 본 순간부터 가장 기대가 된 작품은 최은영 작가의 <답신>이다. 최은영 작가가 그리는 인물 간의 관계를 좋아한다. 어쩌면 무기력하다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다정한 인물들이라서 좋아한다. 연약한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연약하고 표현에 서툴지만 다정한 마음이 반짝이는 이야기를 자꾸만 찾게 된다.

<답신>은 '나'가 조카인 '너'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나'는 언니에게 정신적,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형부를 견디다 결국 폭력을 휘둘러 감옥에 다녀온다. 폭언을 일삼는 아빠 밑에서 자란 '나'와 언니는 아빠를 벗어나려 하면서도 또다시 폭력에 갇히게 된다.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나'는 조카인 '너'를 통해 조건 비로소 사랑을 알게 된다.

이 서평은 자모단 4기 활동의 일환으로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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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2022.여름 - 53호
자음과모음 편집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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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계간지는 매호 게스트 에디터와 여러 필진을 통해 한 주제를 깊이 톺아본다. 2022 여름호의 게스트 에디터는 2022년 안데르센상 심사위원, 큐레이터, 어린이 책 기획자, 번역가 등 그림책을 둘러싼 다양한 분야에서 활보하는 이지원이다. 이번 호의 주제는 '그림책'으로 우리가 몰랐던 그림책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한다.



이지원 게스트 에디터의 꼭지 <2022년, 이수지의 안데르센상 옆에서>에서는 다소 생소한 안데르센상의 선정 과정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수상자인 이수지 작가의 꼭지 <어린이는 한계가 아니라 자유: 그림책이라는 예술>에서는 그가 그림책에 임하는 태도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이외에도 김혜진, 엄혜숙, 이우만, 키티 크라우더,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김지은, 명유미, 김보나, 샘 맥컬른, 마츠카타 미치코, 노정민 필진이 참여했다.



제12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은 김이숲의 <관객>이 선정되었다. 빈민촌 별산동에 살던 누리는 여섯 살에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된다. 테라장의 다큐멘터리 <별산동 프로젝트>는 큰 인기를 얻으며 쇼룸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누리는 자신의 삶을 안타까워하며 좋은 사람들이 되고 싶어 하 사람들의 시선에 불쾌함을 느낀다. 연극 '마우스피스'가 떠오르는 소설이었다. 실존하는 인물을 모티브로 창작물을 다루면서 지켜야 할 윤리와 시의성을 가진 예술의 필요성 사이의 아슬함을 엿볼 수 있다. 창작자라면 누구나 빠질 수 없는 딜레마에 대한 담론을 누리의 시선을 통해 드러낸다.



제5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은 김종연의 <마트에 가면 마트에 가면>이 선정되었다. 이외에도 구병모, 김나현, 김화진, 한숙현 작가의 단편 소설들이 실려있다.




기록|과학자의 마음에서는 과학자들의 글을 만날 수 있다. 뇌신경과학자 박솔은 일상의 조건이 무너지고 재편된 팬데믹 시대를 보낸 우리에게 평범성이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이외에도 박은정, 박한선, 신혜우 필진의 글이 실려있다.



김승일, 문보영, 박규현, 박지일, 안미옥, 조혜은, 최재원 시인의 시들과 장희원 작가의 장편 연재 소설, 백지은, 조연정, 김뉘연, 윤아랑 필진의 비평과 2022 여름의 시소까지 다양한 분야의 다채로운 글들을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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