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씨가 처음 동아리에 마음을 붙이게 된 것도 차승연 씨가 챙겨 준 덕분이듯이 자신도 좋은 언니가 되고 싶었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에게 꽃이니 홍일점이니 하면서 떠받드는 듯 말하곤 했다.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여학생에게는 짐도 들지 못하게 했고, 점심 메뉴도, 뒷풀이 장소도 여학생들이 편한 곳으로 정하라고 했고, 엠티를 가면 단 한 명뿐이라도 여학생에게 더 크고 좋은 방을 배정했다. 그래 놓고는 역시 무던하고, 힘 잘 쓰고, 같이 편하게 뒹굴 수 있는 남자들 덕분에 동아리가 굴러간다고 자기들끼리 으쌰으쌰했다. 회장도, 부회장도, 총무도 다 남자들이 했고, 여대와 조인트 행사를 열기도 했고, 알고 보니 남자들만의 졸업생 모임도 따로 있었다. 차승연 씨는 항상 특별 대우 같은 건 필요 없으니 여학생들도 똑같이 일 시키고 기회도 똑같이 달라고, 점심 메뉴 선택 같은 것 말고 회장을 시켜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 대부분 대충 웃으며 그래그래, 하고 넘겼는데 9년 동안 가장 열심히 동아리에 나오고 있는 박사 과정 남자 선배 하나가 매번 같은 대답을 했다.

"내가 몇 번을 말하니? 여자는 힘들어서 못해요. 너희는 그냥 동아리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우리한테 힘이 되는 거야."

"저 선배한테 힘 돼 주려고 나오는 거 아니거든요? 기운 없으면 보약 한 재 해 드시던가. 내가 진짜 다 때려치우고 싶지만 악착같이 나와서 여자 회장 꼭 보고 말 거야."

차승연 씨가 졸업할 때까지 여자 회장은 없었는데, 후에 차승연 씨와 정확히 10학번 차이 나는 여자 후배가 회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차승연 씨는 오히려 담담하게, 10년이면 강산이 변하긴 하는구나, 했다.

-알라딘 eBook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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