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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개정신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공지영 작가님의 소설은 왠지 정이 가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츠지 히토나리와 함께 쓴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 너무 실망을 해서였다. 첫인상이 너무 나빴던 탓에 공지영이라는 이름만 적혀있으면 왠지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도가니'영화를 보고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무릎 팍 도사에 나와서도 매우 진보적인 여성 처럼 보여서 글도 조금은 남성적이고 시원시원할 줄 알았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여성적이고 섬세했다. 정말 푹 빠져버릴 것 같았다.
이 책은 혜완을 주축으로 돌아가는 여성의 삶, 특히나 봉건적인 사회에서의 여성의 삶을 강조한 듯 하다. 1993년에 쓰여진 책이니 만큼 그 시대상황이 너무나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 불쾌했다.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여자는 일을 포기하는게 당연시 되고 그것을 지키고자 한 여성은 모든 모욕과 손가락질을 감내해야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며 학업을 포기한 여성에게는 남편의 외도라는 것이 뒤따랐다. 아들을 낳지 못한 어미는 죄인이 되어야 하는 시대였고 그런 설움을 겪고 자라왔어도 또 자신의 딸에게 아들을 강요하는 그런 시대였다.
이 책에 나오는 혜완은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라며 집에서 시위라도 하듯 누워있는 남편에게 보란듯이 아이의 손을 잡고 출근을 하다가 파출부의 손에 채 넘겨주기 전에 눈앞에서 아이의 죽음을 겪는다. 이혼 후 남편과 결혼하기도 전부터 알고 지내왔던 남편의 친구인 선우에게 의지하며 삶을 보낸다.
아이의 죽음과 이혼으로 비뚤어지기 시작한 혜완에게 보내는 선우의 메시지는 보는내내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불편했다. 혼자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악을 써가며 발버둥을 치고 주변 사람들에게 당당히 얘기해 보지만 사실은 의지하고 싶었음을 선우는 정확히 깨고 있었다. 외로움을 피하고 싶으면서도 점점 자신을 더 외롭게 만드는 혜완에게 사실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곱씹어 보기도 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열등감, 비꼬임, 상처, 처해있는 이 상황이 남의 탓이 아니라 결국 자승자박하고 있는 나의 탓이라는 걸.. 상황을 비뚤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나의 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진창과도 같은 곳에서 빠져나오려는 용기는 단 0.01%로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단지 나는 어리광을 부리며 책에서 나오는 것 처럼 유리구두를 가지고 나를 찾아주는 왕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나오는 혜완의 친구인 영선은 결국 자살을 택한다. 학업을 포기하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다 남편의 외도를 경험하고 결국 무식하다고 경멸을 당하곤 약을 삼킨다. 남편이 밥을 찾으면 밥이되고, 커피를 찾으면 커피가 되고 아이가 젖을 찾으면 젖이 되는 그런 여자의 일생이 고스란히 영선에게는 담겨있었다. 찾아갈 때마다 웃으며 반겨주는 정신과 의사들도, 매일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찾던 술도 결국은 영선을 다독이지 못했나 보다.
하나의 동화가 소개된다. 한 아이의 엄마가 악마에게 아기를 빼앗기자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찾아나선다. 아이의 행방을 가르쳐 주는 대신 사람들은 엄마의 눈과 모든 것을 요구했고 엄마는 순순히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다. 가시밭 길도 마다하지 않고 피투성이가 된 엄마는 결국 아이를 찾아낸다. 그런 엄마를 본 아이는 엄마에게 말했었다.
'이런 몰골의 사람은 우리 어머니가 아니야'
이 시대에는 이런 엄마의 모습이 강요되었고 아이들도 이게 당연한 듯 들으며 컸다. 세대가 바뀌어 여성의 역할이 많이 바뀐 요즘, 그래도 나의 엄마는 이런 시대를 경험했고 또 지금 나의 엄마 또한 이렇게 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자식의 모든 잘못은 어미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이 나오는데 괜시리 코가 시큼했다.
혜완의 엄마가 혜완에게 이야기 하듯 하고싶은 것 다 하고 살고 간혹 가다 연애도 좀 하고 맘 맞는 사람 생기면 같이 살기도 하라고 했던 말을 언젠가 우리 엄마도 나에게 했던 적이 있었다. 결혼하지 말라는 말. 나 역시도 결혼에 대해서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었던 적이 있었다. 재능이 그리 있지도 않지만 나의 재능을 어느정도 포기하면서 까지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를 낳지 않은 여자는 진정한 여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 어머니라는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말해도 아깝지 않는 것 같다. 지금 이 시대의 여자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물론 어느 선택을 하든 세상사람들은 별로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직장을 가지며 크게 성공을 하며 소위 말하는 골드미스가 되는 것,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아이를 낳고 소소하게 잘 사는 것. 무엇이 더 나은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결국 이 책의 제목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겠지만 뭔가가 혼자 걸어갈 수도 그렇다고 함께 가기도 어려운 이 현실에서 참 많은 고민을 하게 하는 책인 것 같다.
열등감, 상처, 비꼬임, 비관 등이 뒤섞인 이 진창에서 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걸어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무언가 소리없는 아우성처럼 마음속에 휘몰아치는 걷잡을수 없는 이 감정의 동요가 오늘 밤 잠을 또 한껏 뒤척이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