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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평점 :
신영복 선생의 '담론'을 읽었습니다. 아니 이 책은 읽었다는 표현을 쓸 수가 없겠네요. 총 독서 기간을 알 수가 없습니다. 1년이 넘은 건 확실하고요. 그래서 책을 '읽다'가 아닌 '보다'가 맞는 표현입니다. 더구나 책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고 어떤 부분('주역'편)은 읽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읽었다가 보다는 그냥 시간날 때 잠시잠시 흘깃 살펴본 책입니다. 이런 책에 대한 후기를 남기는 것도 웃기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선생의, 삶과 인간, 세상에 대한 격조높은 시선의 자취를 조금이나마 남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남깁니다. 따라서 이 글은 책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책을 '보며' 제 눈에, 마음에 와닿았던 문장들을 정리하고 소개하겠습니다.
책은 1부 -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 2부 -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로 구성되었습니다. 1부는 대학과 대학원 수업 원고를 녹취한 것이고 2부는 우리가 흔히 신영복 선생하면 떠오를 수 있는 삶과 세상에 대한 사색과 통찰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수업 원고는 동양 고전 강독입니다. 그래서 앎이 미천한 저같은 사람에게는 상당히 어렵게 다가왔습니다. 동양 고전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끊임없는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했지만... 언제나 문제는 실천입니다.
아무튼 다음부터는 제 마음에 들어온 문장들입니다.
'工'은 天과 地를 연결하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夫는 천과 지를 연결하는 주체가 사람(人)이라는 뜻입니다.(18쪽)
문사철의 추상력과 함께 그것의 동일성 논리, 시서화악의 상상력과 함께 그것의 주관성과 관념성, 그리고 영상서사의 압도적 전달력과 함께 인식 주체의 소외 문제를 해결해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29쪽)
현실의 조각 그림을 뛰어 넘어 진실을 창조하려고 하는 고민이 바로 이상과 현실을 결합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45쪽)
추상은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압축하는 것이고, 상상력은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읽어내는 것입니다.(52쪽)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79쪽)
사회에 대한 정의가 많지만, 사회의 본질은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라고 생각합니다.(108쪽)
비어 있음 즉 없음이 그릇을 유용한 것으로 만들어준다는 뜻입니다...... 무란 그냥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123쪽)
'노자' 영역본에서 자연을 'self -so'라고 번역합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최고의 질서, 가장 근본적인 질서입니다.(125쪽)
노자가 강물을 최고의 선이라고 하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다투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처하기 때문에 상선(上善)입니다.(133쪽)
기계는 도부재(道不載), 도를 실현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 장자의 문제의식입니다.(140쪽)
노동은 생명의 존재형식입니다.(147쪽)
'천자문'에 묵비사염(墨悲絲染)이란 말이 있습니다. 묵자가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 슬퍼한다는 뜻입니다...... 실이 물든다는 것은 사회의 허위의식, 즉 지배 이데올로기의 포섭 기능을 지적하는 것입니다.(265쪽)
법은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이고 술(術)은 신하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법은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고, 술은 임금의 마음 속에 숨겨 놓고 절대로 신하가 읽을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179쪽)
가슴이 공감과 애정이라면 발은 변화입니다. 삶의 현장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230쪽)
차이와 다양성은 그것을 존중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어야 합니다......차이는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의 대상이어야 하고, 학습의 교본이어야 하고, 변화의 시작이어야 합니다.(232쪽)
자기 변화는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로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바뀜으로써 변화가 완성됩니다. 이것은 개인의 변화가 개인을 단위로 완성될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239쪽)
중요한 것은 두 발 걸음의 완성이 아니라 한 발 걸음이라는 자각과 자기비판, 그리고 꾸준한 노력입니다.(243쪽)
美는 아름다움입니다.그리고 아름다움은 글자 그대로 '앎'입니다. 미가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은 미가 바로 각성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252쪽)
공부는 우리의 동공을 외부로 향하여 여는 세계화가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향하여 심화하는 인간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276쪽)
관계의 최고 형태는 입장의 동일함을 훨씬 뛰어넘는 곳에 있습니다. 서로를 따뜻하게 해 주는 관계, 깨닫게 해 주고 키워주는 관계가 최고의 관계입니다.(284쪽)
관계야말로 궁극적 존재성입니다. 자신을 개인적 존재로 인식하는 사고야말로 근대성의 가장 어두운 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358쪽)
경쟁은 옆 사람과의 경쟁이 아니라 '어제의 나 자신'과의 경쟁입니다.(370쪽)
인간을 원상태로 돌려놓는다는 것은 인간의 노동력이 사회적으로 계승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놓는다는 뜻입니다.(371쪽)
양심은 이처럼 인간과 세계를 아우르는 최고 형태의 관계론이면서 동시에 그것은 또한 가장 연약한 심정에 뿌리 내리고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품성이기도 합니다.(406쪽)
우리가 생명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은 기쁨만이 아닙니다. 슬픔도 사랑의 일부입니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418쪽)
우리는 '논어'의 '사십불혹'을 나이 마흔이 되면 의혹이 없어진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올바른 독법이 못 됩니다...... 가망없는 환상을 더 이상 갖지 않는 것이 불혹입니다.(421쪽)
앞서 언급했듯 워낙 드문드문 읽어서 책에 대한 감상을 쓰기가 어렵고 조심스럽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그리고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선생의 고결하고 명징한 사유의 세계를 엿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결국 모든 학문은 인간과 그 인간 사이의 관계 조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의 출발은 언제나 나로부터입니다. 누구를 사랑하든 미워하든 그것 또한 삶의 모습일 테니까요. 사람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발판 삼아 또 다른 관계, 사회의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것도 살아가는 우리의 과제일 것입니다.
순탄하고 무난한 삶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주위의 꽤 많은 사람들이 교직에 있는 저를 부러워하지만 학교에서의 일상은 자잘한 전투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밖에서 바라보는 것과 안에서 겪는 것의 차이지요. 그 자잘한 전투는 사실 수많은 인간관계의 다양한 모습입니다. 화를 내고 찡그리고 웃고 이해하는 그 모습들... 결국 이해와 배려, 주체와 실천, 없음과 채움, 경쟁과 관계 등등 선생이 말하는 그 모습들이 제가 있는 현장에 고스란히 존재합니다. 저 뿐이겠습니까? 인간 사회의 모습이 대동소이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의 말과 글이 실생활과 연관되어 더 아프게, 더 의미깊게 다가왔습니다.
선생은 떠나시고 그분의 말과 글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글과 말은 남아있는 우리에게 여전한 가르침과 깨우침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표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좋게 말하면 아껴두고 읽은 책, 나쁘게 말하면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읽은 책입니다. 그 독법이 어떠하든 간에 읽고 나면 모두에게 진한 여운을 남길 책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우리가 생명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은 기쁨만이 아닙니다. 슬픔도 사랑의 일부입니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4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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