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4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은 넓고 읽어야 할 책은 참으로 많습니다. 제목만 알고 있었던 '분노의 포도'를 중년이 되어서야 만나봅니다. 1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명작이네요. 제 취향에 딱 맞는 소설이었습니다.

 

소설 1장부터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코맥 맥카시가 존 스타인벡의 문체에 영향을 받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가뭄으로 인해 모든 것이 말라가고 대지에는 흙먼지, 모래바람이 가득한 오클라호마의 시골마을을 묘사하는 것으로 소설을 시작됩니다. 이 끔찍한 자연재해 속에서 농작물은 더이상 농작물이 아닙니다. 농부들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이지요. 흙먼지는 '평평한 담요가 땅을 덮고 있는'(13쪽) 것처럼 쌓이고 말라버린 옥수수만이 그들 곁에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들 곁에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만이 있습니다. 망연자실하게 상황을 바라보던 옹부들이 강인함과 분노와 저항의 표정을 보이자 그녀들과 아이들은 안심합니다. '남자들이 건강하기만 하다면 그 어떤 불행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알고 있'(14쪽)기 때문이지요. 이때 살인죄로 감옥에 들어가 있던 톰 조드가 가석방되어 그의 집을 향해 갑니다. 차를 얻어 타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집으로 향하던 도중 산에서 목사 짐 케이시를 만나고 집 근처에서는 이웃 멀리를 만납니다. 그리고 멀리를 통해서 고향의 상황을 전해 듣습니다. 소작을 짓던 그들은 극심한 가뭄으로 집과 밭을 은행에 빼앗기고 캘리포니아로 떠나기 직전이라는 것을... 두 사람이 집에 도착하자 가족들은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려는 준비를 거의 끝마쳤습니다. 세간살이를 헐값에 넘기고 캘리포니아로 가기 위한 트럭을 사서 할머니, 할아버지, 큰아버지를 비롯한 대가족(12명)이 단돈 154달러를 가지고 2천마일이 넘는 머나먼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말그대로 고난의 여정이지요.

 

이런 고난의 여정의 근본 원인은 극심한 가뭄과 트랙터로 상징되는 거대자본의 폭력 때문이었습니다. 가뭄으로 인해 빈사 상태에 빠진 농민들에게 은행의 대출금은 마지막 카운터 펀치를 남기고 대출금을 갚지 못한 그들의 밭을 트랙터가 점령합니다. 그들의 피와 땀이 배인 땅의 주인은 더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기계(트랙터)와 자본(은행)이 그들의 위치를 대신한 것이죠. 이렇게 서늘하게 자본주의의 비정성과 추악함을 잘 드러내는 소설도 드물 거라 생각합니다. 자본은 더욱 거대해지고 지주는 적어집니다. 땅과 집을 잃은 소작인만이 늘어납니다. 이제 그들은 어딘가로 떠나야 합니다. 그곳은 최소한 생계에 대한 걱정이 없어야 합니다. 다행입니다. 따뜻한 기후에 땅은 기름지고 1년 내내 노동이 가능한, 노동자를 구하는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정든 땅을 떠납니다. 그 먼 곳 캘리포니아로... 하지만 그들은 캘리포니아로 가는 내내 '오키'라고 멸시받고(우리나라의 지역감정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단어입니다.) 캘리포니아에 도착해서도 그 멸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결국 자본과 지주에게 쫓겨난 그들의 안식처는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사실 '1930년대 후반 오클라호마의 톰 조드 가족이 갖은 고생 끝에 캘리포니아에 도착했다.'

이 한 문장으로 1권을 정리해도 될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 톰의 형 노아의 이탈, 윌슨 가족과의 만남과 이별 등의 사건이 들어갑니다. 이렇게만 따지면 간단한 줄거리의 소설입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이 소위 말하는 고전 혹은 명작의 반열에 들지 못하겠지요.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톰 조드 일가의 생생하고 구체적인 수난사와 함께 교차적으로 제시되는 당대 현실의 압축적 장면입니다. 톰 조드 일가의 수난사는 사실성을 획득하고 교차적으로 제시되는 당대의 현실은 압축성을 획득합니다. 그래서 독자는 인물들의 삶에 마음 아파하고 그들의 말과 행동에 공감을 하기도 하면서 인물이 처하게 된 상황의 원인과 결과를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장에서는 분노의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이런 교차적인 서술 방식은 작품의 흐름을 방해할 수도 있지만 이 소설에서는 인물들의 비극성을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인물 중심으로 소설을 파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톰 조드. 자신을 칼로 찌르려는 친구를 삽으로 쳐서 살인죄로 복역한,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하던 소작인의 아들. 그는 가석방으로 출소한 후 가족들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떠납니다. 감옥에서의 삶이 그를 크게 변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여전히 그는 자신을 위협하는 대상에 대한 분노를 간직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지만 장자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장의 역할을 하면서 가족들과 머나먼 여정을 함께 하죠. 무엇보다 톰 조드는 상황을 냉정하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삶에 대한 긍정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그는 변화할 것입니다.

 

1권에서 톰 조드 못지 않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이 전직 목사인 짐 케이시입니다. 마치 모세와 같은, 예수와 같은 기시감이 느껴집니다. 자신의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교회를 떠나 수련의 기간을 가진 인물. 마치 인류를 구원하기 전 사막으로 떠난 예수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뒷표지의 줄거리를 참고하면 노동자들의 파업을 이끌다 죽음을 당하게 되는데 예수의 희생과도 자연스레 연관이 됩니다. 다만 그는 인간의 삶에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하는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고 스스로 목사이기를 포기한다는 점에서 예수와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종교인이 아니라 가진 것 없는 소작인과 동일한 위치에서 그들의 삶과 슬픔, 분노를 함께 하는 인물. 그리고 그들과 함께 저항하고 그들의 맨 앞에서 삶을 마감하는 그의 모습은 어떤 삶이 가장 인간다운 삶인가를 웅변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톰의 어머니. 온화하면서 전통적인 어머니의 역할에만 충실한 인물로 보이던 어머니가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날부터 현실적인 인물로 변화합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란 말을 형상화하는 인물입니다. 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가족의 앞날을 걱정합니다. 그러면서도 시부모의 죽음 앞에서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 톰의 안위를 걱정하며 그의 말과 행동을 제지하기도 합니다. 특히 가족들이 무사히 사막을 건너가기 위해 농산물검사소에서 시어머니의 죽음을 숨기고 그 곁을 지키는 모습은 절로 감동을 자아냅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힘이고 사랑의 힘일 것입니다.

 

톰 조드 일가의 여정과 아울러 압축적으로 제시되는 당대의 현실 모습은 카메라적 시선이 함께합니다. 어떤 감정이입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인물과 현실을 제시합니다. 상당히 메마르고 건조한 문체입니다. 그들이 떠나야만 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그들이 점차 하나로 모일 것임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작가의 신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이라고 볼 수 도 있습니다. 척박한 환경, 그보다 더 척박하고 매정한 자본과 기계. 그 속에서 억눌리고 쫓겨나야만 하는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 집단의 '우리'입니다. 여기서 진정한 희망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민중의 역사가 생성됩니다.

 

1권의 핵심은 자본과 기계 앞에서 힘없이 물러나는, 대대로 내려오는 터전을 잃어버린 소작농의 비참한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뿔뿔이 흩어져 캘리포니아로 향합니다. 아직 그들은 '우리'가 아닙니다. 낱낱의 개인은 결코 자본과 기계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대지주의 총 앞에 나설 용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당장 오늘의 끼니를 걱정하며 66번 고속도로에 오릅니다. 캘리포니아가 결코 살기좋은 곳이 아니며, 그들은 '오키'라고 멸시를 당한다는 말을 들었어도 다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버리고, 팔고 떠나온 길이니까요. 아무리 고달파도 오클라호마의 그 가난과 치욕과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한 가닥 희망을 안고 갑니다. '언덕 위의 하얀 집'은 아니더라도 더이상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 날을 상상하면서...

 

이것이 폭발의 시초다. 이것이 시작이다. ‘나‘에서 ‘우리‘로 변하는 것이.(31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