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2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리스토텔레스... 대단하네요. 정치학, 철학, 물리학, 윤리학, 수사학, 논리학 그리고 경제학까지... 아마도 이 책에서 전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학도 그 사상의 일면에 불과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그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경제 자체가 어려운 학문인데 시대를 거스르는 그의 학문적 체계 앞에서 이미 작아진 저는 문장의 판독에만 급급합니다. 그렇기에 이번 리뷰는 지극히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겉핥기에 불과한 잡설에 그치게 됩니다.

 

경제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에서부터 논의가 시작됩니다. 단순한 돈벌이인가 물질적 부를 생산하는 활동인가에서 희소성에 바탕을 둔 합리적 선택으로 잠정적 결론이 도출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합리성이란 '협소한 합리성이 아니라 포괄적인 이성적 존재로서 행동의 동기, 신념, 사회적 제도 등을 다 보는 것을 의미'(33쪽)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경제=희소성에서의 선택이라는 합리성은 목적 합리성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가치 합리성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33쪽)는 점을 지적합니다. 결국 합리적 선택에서의 가치 부분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2장에서는 경제라는 말의 역사적 고찰을 다루고 있습니다. 초기 경제는 '단지 가정의 살림살이'(40쪽)를 가리키는 의미였습니다. 혈연에 바탕을 둔 인간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었기에 윤리, 도덕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고 당시 사람들도 이를 당연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 이후 18c까지도 경제는 '국가라는 사회적 관계의 맥락에 포섭'(43쪽)되어 있었습니다. 여전히 독립적인 영역 혹은 학문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1890년, 마셜에 의해 최초로 경제학이란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이제 경제는 비로소 정치, 사회와 독립적인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 현상은 계급 관계라는 사회적 맥락에서 언급이 되었던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부를 노동가치나 물질적 부가 아닌 희소성하에서의 선택을 통한 만족의 극대화'(46쪽)로 보는 현대의 경제 관념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3장에서는 그리스의 시장의 변천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생활단위로서의 가정경제'가 초기 그리스 사회가 호혜성에 기반한 선물 주고받기를 바탕으로 형성되고 발전해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폴리스가 성장하고 가정 경제 단위의 주고받기가 불가능해지면서 기원전 6c 그리스 전역에서 화폐경제가 출현하고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 발전하게 됩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폴리스로 이주한 사람들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국가 재산의 재분배가 이루어지고 그것은 화폐를 매개로한 시장의 발전으로 귀결됩니다. 이 과정에서 키몬과 페리클레스 간의 정치적 경쟁이 사뭇 재미있게 다뤄집니다. 그러나 가정경제와 폴리스, 호혜적 선물 주고받기가 시장과 민주주의, 제국주의로 변모되면서 이제 그리스인들은 '국가를 한시적 이해를 위해 교역 관계에서 맺어지는 동업자 관계'(73쪽)로 보게 됩니다. 혈연적, 불가역적 관계가 계약적 관계로 변모됩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누구도 제기하지 않았던 인간의 덕(arete)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플라톤은행복한 삶의 정의, 행복에 이르는 방법과 사람들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으로서의 철인(철학자) 정치를 제시합니다. 다시 폴리스는 '시민에게 잘 사는 법을 훈련하는 훈육의 장이자 좋은 생활을 펼쳐낼 실현의 장'(78쪽)으로 돌아옵니다.

 

4장에서 비로소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가 등장합니다. 플라톤이 추상적인 인간활동과 경제를 언급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과 수단의 측면에서 접근합니다. '인간 활동에서 목적의 추구는 무한하지만 수단의 양은 그 목적에 의해 제한되며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폴리스의 운영기술과 가정관리 기술을 상위로 삼고 거기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획득의 기술을 하위로 삼아야 한다'(97쪽)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활동을 '행위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행위'인 프락시스(praxis)와 '무언가를 생산하는 행위'인 포이에시스(poiesis)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그는 인생은 포이에시스가 아니라 프락시스라고 단언합니다. 인간의 잠재적 능력을 풍부하게 계발하는 것이 바로 행복한 삶의 기본 전제가 되는 것입니다.

 

5장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관과 대비되는 '로빈슨 크루소'로 상징되는 개인 중심의 경제관이 소개됩니다. 가정경제와 폴리스 중심의 경제관이 '낱난의 개인들을 유일한 현실적 기본 단위'(131쪽)로 보고 '인간의 탐욕을 이성 실현이라는 세계사의 목적이 달성되는 원동력'(134쪽)으로 보는 근대 경제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원의 희소성에 기반한 근대적 경제관은 '인간세상의 부동의 진리'(139쪽)로 자리잡아 우리의 일상과 사고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6장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경제사상가를 소개합니다. 애덤스미스, 독일의 역사학파, 칼 마르크스, 베블린, 폴라니, 케인스가 그들입니다. 그리고 맺음말에서는 경제발전, 대량 소비, 자본 축적을 신봉하는 현대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그 전환의 바탕이 되는 것은 개인이 아닌 가정경제와 폴리스(사회) 중심의 아리스토텔레스 경제관이겠지요. 물론 그 토대는 바람직한 사회변화, 경제관에 대한 우리의 의식적 노력과 행동입니다. 숨가쁘게 정점으로 치닫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더이상의 사회(국가)의 개입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도 해서는 안되며, 설사 한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나 효과가 없다는 신자유주의의 수사학에 더이상 현혹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런 패배주의, 허무주의를 벗어날 때 진정한 인간 중심의 경제로의 전환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워낙 경제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다소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내용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보기도 어렵고요. 다만 거대한 사상가의 등 너머에서 그가 바라보는 세계의 일면을, 그 탁월한 통찰을 흘깃 바라본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던 책읽기가 아닌가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작금의 경제 상황에 관심이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그 과정을 거치면 경제에 대한 개념과 변천의 과정을 피상적으로나마 인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생은 포이에시스가 아니라 프락시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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