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연결 - 검색어를 찾는 여행
아즈마 히로키 지음, 안천 옮김 / 북노마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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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음악을 들을 때 랜덤 재생은 하지 않는 편입니다. 보통 몇 곡을 정해두고 주야장천 반복해서 듣습니다. 랜덤이 아니라면 순차적으로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조차 거의 실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음악 감상을 한곡 단위로 계획적으로 하는 것이죠.

낯선 음악은 잘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귀에 감기는 음악을 만났을 때 설렘보다 별로인 음악을 만났을 때 실망감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들에게 이 두 가지 경험은 대체로 오십 대 오십이겠지만, 제 경우는 후자가 훨씬 커서 결국은 계획적으로 듣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증은 점점 커짐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습관을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질의 음악을 찾는 일에도 충분한 시간 투자는 필요한 법이니까요. 이를 넓게 말하면 저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생활방식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아즈마 히로키의 신간 <약한 연결>은 이렇게 효율성을 중시하는 삶을 부정하면서 시작됩니다. 어쩌면 저자는 누구보다도 효율적으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는 꽤 이른 나이에 자국의 학계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많은 땀과 노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 있어 효율성을 우선시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자신의 방식을 부정하는 뉘앙스의 책을 쓰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삶에서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것은 대부분의 현대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느새 경쟁은 양의 시대, 질의 시대를 지나 속도의 시대가 된지 오랩니다. 근로자들도 속도 경쟁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속도에 대한 강박은 휴식을 취할 때도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1분짜리 스포츠 하이라이트를 볼 뿐인데 15초짜리 광고를 봐야 하냐며 격노하고, 조금만 로딩이 늦으면 새로 고침 또는 뒤로 가기를 실행합니다. 이렇게 보기 싫은 것에는 가차 없이 반응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신문에서 모바일로 넘어온 뉴스 환경은 더 이상 우리가 보고 싶은 면을 위해 페이지를 하나둘 넘기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과거엔 종이신문을 열댓 장은 넘겨야 스포츠면이나 연예면에 도달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포털사이트는 원하는 분야의 메뉴를 순서대로 설정할 수 있게 해놓았고, 관심 없는 분야는 가차 없이 빼버릴 수 있는 자유를 주었습니다. 즉, 과거처럼 신문을 넘기다 우연히 다른 기사에 관심을 갖게 되는 체험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터넷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 세상이 우리의 지식과 견문을 더 넓혀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라고 아즈마는 주장합니다. 보고 싶은 걸 더 깊이 파고들게 되었을 뿐, 관심 없는 분야는 근처도 가지 않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아즈마에 의하면 전자는 강한 연결이요, 후자는 약한 연결입니다.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정보의 질의 평균치는 낮아집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강한 연결을 중시하게 됩니다. 정보 선택이 조심스럽다 보니, 섣부른 모험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아즈마는 약한 연결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오히려 우리의 삶을 환기시키고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원래 이 개념은 아즈마 히로키가 창시한 개념은 아니고 1970년대의  마크 그라노베터란 미국의 사회학자가 제창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유일한 존재입니다. 세상에서 한 명뿐이지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직장에서 사표를 낸다면? 회사는 그 자리에 비슷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누군가를 채워 넣을 겁니다. 그는 내 입장에선 나와 다르지만 회사 입장에선 외모만 다를 뿐 똑같은 일을 처리하는 직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만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도 타인에 대해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똑같은 교육을 받고 똑같은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데 어찌 다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것은 결국 환경이 얼마나 중요하느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아즈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환경에 규정되어 있다. 
'유일무이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좋아하는 것, 욕망하는 것은 
대체로 환경으로부터 예측 가능한 것에 지나지 않다. 
당신은 당신의 환경으로부터 예상할 수 있는 변수의 집합일 뿐이다. 
...
하지만 우리 모두는 유일한 나로 살고 싶어 한다. 
통계적으로 예측될 뿐인 인생 따위는 지겹다고 느낀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즈마는 이를 위한 방법은 오직 단 하나, 환경을 의도적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환경이 바뀌어야 자신의 사고, 발상, 욕망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이사를 가거나 직장을 옮기거나 할 수는 없는 법, 그렇기 때문에  아즈마는 여행을, 그보다도 관광을 하라고 주장합니다. 계획이나 거창한 마음가짐이 요구되는 여행도 필요 없고 그저 가이드가 안내해주는 몇 박 며칠의 관광을 가끔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이기 때문에 권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맨날 구도자처럼 여행만 다니며 살 수는 없죠. 우리는 대부분 생계를 위해 월급쟁이의 삶을 떠날 수 없는 존재들이니까요. 

"여행을 하라"라는 결론을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책의 제목을 다시 상기해봅시다. 이 책은 우리의 삶 속에 약한 연결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여행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인 것입니다. 중요한 건 우리 삶 가운데 약한 연결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좀 더 경제적이고 쉬운 방법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자가 실생활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제시해주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책이 되었겠지만, 그것들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 것 같습니다. 

저자는 그동안 학자로서 연구 및 저술활동을 위해, 다시 말해 강한 연결을 위해 많은 것들을 지나치며 바쁘게 살아온 듯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을 낳게 되고 키우는 와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내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지금의 딸을 만날 수 있을까? 지금의 딸은 전적으로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고, 우리의 삶은 어쩌면 이러한 우연들이 모였을 때 더욱 유일해지는 것이 아닐까? 환경에 의해 지배되는 변수에 지나지 않는 삶이란 지루하지 않은가? 결국 약한 연결에 의한 우연이 우리의 삶을 다채롭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때로 운명적 만남, 운명적 사랑을 꿈꾸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정해진 인연, 정해진 미래, 정해진 운명이란 게 있다면 그것만큼 재미없는 인생도 없지 않을까요? 

그는 이 사실을 이곳저곳 여행하면서 확인한 듯합니다. 기존의 환경과 다른 새로운 곳에 처했을 때 자신의 생각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그것들이 자신의 정신을 훨씬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아즈마는 인터넷에서 자료를 서치하고, 필요 없는 문서는 빠르게 스킵 하는 인생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는 이러한 깨우침을 여행한 도시에 따라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생각은 해봤을 것입니다. 자신이 이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더 좋은 내가 되어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하나 마나 한 생각 말이죠. 환경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대체로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매우 이해타산적으로 살게 됩니다. 한때 극도로 술자리를 피하고 무엇을 하든 목적 지향적으로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필요한 행동만 하고 필요한 관계만 유지하고, 필요한 정보만 습득하고 이외의 것들은 배제하며 사는 삶 말입니다. 이러한 삶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느끼면서도 그 문제가 뭔지 규명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계속 그렇게 살아가게 되죠. 그러면서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마음속에 묻어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악순환일지 모릅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삶에 대해 열린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획적인 삶은 계획한 만큼의 결과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삶을 바꿀지도 모르는 우연은 계획에서 오지 않습니다. 조금만 속도를 늦추고 주변을 둘러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낯선 곳에 자신을 던질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아즈마처럼 자주 여행을 갈 수는 없으니,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건 뭘까요. 책을 읽고 나니 숙제가 생겼네요. 우선은 가벼운 것부터 변화를 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귀갓길에 낯선 버스를 타볼까 합니다. 집으로는 향하지만, 조금 돌아갈지도 모르겠네요. 당장 떠날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움직여보는 거죠. 물론, 음악은 랜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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