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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소아 -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의 화신 ㅣ 클래식 클라우드 4
김한민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평점 :
아르떼에서 발간하는 클래식 클라우드 1탄부터 3탄까지에서 다루었던 인물들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그런데, 4탄에서 다루게 되는 인물의 이름은 매우 생소했다.
페소아? 누구지? 이런 사람도 있었나?
그래서 책을 구매하기 전에 페소아에 대해 알아보았지만, 그가 누구인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페소아가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그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이 쌓인 느낌이랄까........... 페소아에 대한 족집게 강의를 듣고 난 거 같은 느낌에 책을 덮으면서도 당황스러운 감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처럼 완결성을 갖춘 서평을 쓰기는 어려울 거 같다.
그저 페소아라는 사람을 김한민이라는 전문가를 통해 만나게 되고, 페소아의 다양한 정체성, 특히 스스로의 의지로, '이명(異名)'이라 일컫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낸 것에 나 또한 공감하며, 우리 모두는 페소아처럼 세상 속에서 여러 측면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페소아는 왜 계속해서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냈을까?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6살 때 첫 번째 이명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의 이명을 탄생시킨 페소아는 그에 재미를 붙여나가기 시작한 것 같다.
내가 아닌 내 속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그에게 이름을 부여해 가며 계발해 나가는 즐거움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겠지
완벽히 분별되는 자아를 만들고 그들의 이름을 빌려 문학적 재능을 한껏 펼쳐낸 그.
무한하게 솟아나는 영감을 한 사람의 자아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기에 수없이 많은 자아를 만들어 각각의 자아에게 표현할 기회를 주었던 그.
이렇게 추측해 본다.
정치가들은 제국주의 기치 아래 유럽은 세계를 정복해 가고,
문학가들은 폭발적으로 넓어지는 세상을 접하면서 다양한 문명과 문화를 접하게 되어 이를 변용하고 활용한 작품을 쏟아내게 되는데,
페소아 역시 모국어인 포르투갈어 외에 어머니를 통해 프랑스어와 영어를 배우면서 넓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고, 느끼게 되면서 하나의 인격으로는 도저히 이 많은 정보를 감당할 수 없게 되어 또 다른 나를 결국 만들어내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이면서 여럿이 되는 그.
정체(正體)가 정체(停滯)가 되지 않도록 고정된 틀 자체를 아예 많이 만들어 버린 그.
작가 김한민의 글을 따라 페소아의 정체를 느껴 보았지만,
뭐 하나 뚜렷하게 손에 잡히는 거 없이 여전히 혼란스럽고, 어려운 존재인 페소아~~!!
그를 느끼기 위해 먼저 그의 단상(斷想)이 난삽(?)하게 흩어져 있는 텍스트인 '불안의 책'을 꼭 읽어 보고 싶다.
김한민 작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터득한 요령꾼으로 전락하고 싶지 않고, 그저 페소아라는 덫에 빠져 허우적대고 싶기 때문이다.
결국은 이 책 또한 페소아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 P26
실제로 ‘율리시스‘ ‘파우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특성 없는 남자‘ 같은 두꺼운 고전들은 끝까지 제대로 읽는 경우보다는, 관련 해설서를 보거나 ‘족집게‘식으로 읽어놓고 읽은 척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쩌면 페소아도 그런 작가 중 한 명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 P25
특히 이명이라고 부르는, 문체와 정체성이 서로 다른 문학적 캐릭터들을 수십 명이나 창조해 그들의 이름으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친 기인.... - P51
가명이나 필명 등 문학적 페르소나를 이용해 창작을 한 사례는 문학사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지만, 대부분 이름만 달라지고 저자의 정체성은 유지된다. 반면 페소아의 이명은 그만의 고유한 문체, 인격, 목소리가 원저자와 별도로 변화.발전해나간다는 특징이 있다. 이 점에 페소아의 독창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처럼 각 이명의 문학적 정체성을 다양하고 꾸준하게 전개시키며 서로 다른 이명들 간의 관계까지 구체적이고 완성도 있게 구현해 낸 경우는 유례를 찾기가 힘들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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