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의 발견 - 믿는 것이 현실이 되는 마인드셋
데이비드 롭슨 지음, 이한나 옮김 / 까치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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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기대의 발견>은 이제는 상식이 된 플라세보에서 시작해 운동, 식이, 수면 등 삶의 다양한 요소에서 기대가 어떻게 우리의 몸을 바꾸고, 바뀐 몸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긍정적인 자세로 살라는 말은 뻔합니다. 이 책이 특별한 지점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전제들이 모두 미래에 대한 주관적인 예상이라는 지점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몸에는 좋지만 맛없는 음식에 금방 배가 꺼지는 것, 10rm 무게를 열 번 들고서 지치는 과정조차 모두 미래를 예측한 뇌의 계산입니다. 우리의 뇌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지금까지 입력받은 정보를 단서로 세상을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뇌의 ‘예측 기계’적인 측면은, 가짜 정보에 속아 잘못된 예측을 했을 때 두드러집니다. 제일 유명한 것은 가짜 약을 먹고도 질병이 치료되는 플라세보 효과입니다. 똑같은 원리로 가짜 도핑을 받은 스포츠 선수는 본인 신기록을 냅니다. 이러한 위약 효과는 모르는 사이에 속아 넘어갈 때 가장 극적인 효과를 만들지만, 책에 따르면 누군가에게 속는 대신 미래에 잘 될 것을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변한다고 합니다. 마음가짐에 따라 몸이 변할 수 있다고 자신에게 설득하는 것이 제일 어렵겠지만, 이 책에 나온 수많은 사례가 근거로 존재합니다.


플라세보 효과는 부정적으로도 작용합니다. 대부분의 자기실현적 예언은 비극으로 끝납니다. 책을 읽으며 제가 떠올린 예시는 요새 유행하는 ‘도파민’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재미있는 콘텐츠를 보며 ‘도파민을 채운다’고 표현하고, 볼만한 콘텐츠가 없으면 ‘도파민이 떨어졌다’고 말합니다. 실제 작은 분자가 신경 세포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와 무관하게, 이러한 표현이 내재화되며 머릿속에 ‘도파민이 차오르는’ 느낌을 받습니다. 1-2년 전에는 신경과학 연구실에서나 들어봤을 분자가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나는 도파민 중독이야(도파민은 중독의 결과로 작용하는 분자이니 이 문장은 중독에 중독되었다는 말만큼 이상합니다)’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게 됩니다.


스스로 부정적인 사고의 함정에 빠질 때, 이 책의 다양한 사례를 근거로 이겨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반대로 부정적인 사례를 읽고 섣부르게 자신에게 비춰보지는 맙시다. 저는 예방 주사를 읽을 때마다 문진표를 정독하지만, 끔찍한 부작용을 겪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기대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삶은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달라집니다. 뇌가 미래에 대처하기 위해 몸을 바꾸는 덕분입니다. 믿어서 나쁠 것 없는 이야기입니다.



까치 서포터즈로 책을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생각 없이 군것질거리로 손이 향하려고 할 때면 전에 먹었던 음식을 다시 떠올리며 맛을 음미하던 기억을 곱씹어보자. 이렇게 뇌가 들어오고 나가는 에너지의 균형을 예측할 때, 기억속 음식의 열량을 고려하도록 상기시키다 보면 생각보다 배고픔도 덜 느끼게 될 것이다. - P210

심리생물학 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과거의 경험, 심부체온과 같은 생리적 감각, 현재의 기분과 정신적 긴장감, 그리고 앞으로 남은 과제에 대해 예측한 내용을 활용하여 우리가 어느 정도의 강도로 얼마만큼의 운동을 더 수행할 수 있는지 신중하게 판단한다. 그리고 이렇게 계산한 결과를 바탕으로 운동에 사용할 근섬유의 비율과 신체가 지속할 수 있는 운동의 강도를 결정하여, 이보다 무리를 한다는 신호를 감지하면 근육으로 보내는 신호를 억제하고 운동을 지속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도록 피로하다는 감각을 만들어 움직임에 브레이크를 건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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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 - 나를 이루는 원자들의 세계
댄 레빗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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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히스토리를 좋아하시나요? 세상의 모든 기원을 담았다는 벽돌책을 휘리릭 넘겨보며 가슴이 뛰어본 적 있으신가요? 한때는 저도 빅히스토리를 동경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한 권의 책은 추상적인 나열이 되기 십상이었습니다. 다루는 시간이 방대할수록 초점은 희미해졌고, 벽돌책은 3장까지 가기도 힘들었습니다. 


<우리 몸을 만든 원자의 역사>는 세상이 만들어진 역사를 다루면서도 빅히스토리의 함정을 피해가는 책입니다. 한국어판 책 제목에는 ‘역사’가 들어가지만, 연대기순으로 서술한 책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가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 아주 작은 단위에서 볼 수도 있고, 덩어리로 뭉쳐서 볼 수도 있습니다. 책은 이러한 단위를 어떻게 발견했는지 원자와 쿼크에서 시작해 세포와 단백질까지 훑습니다. 우주의 기원을 묻는 질문이 화학을 거쳐 세포생물학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책을 읽고 지식을 알았다는 느낌이 든다면 착각일 것입니다. 책에 나오는 지식을 ‘제대로’ 알려면 대학을 20년은 다녀야 할 것입니다. 


지식 자체보다 과학자의 일화가 중심인 책입니다. 딱딱하고 차가운 지식이 과학자의 인간적인 열정에서 나왔음을 알게 됩니다. 과학자란 어린 제자의 무모한 실험을 말리다가도, 그가 발견한 사실에 최고 학술지에 다이렉트로 꽂아버리기도(!) 하고, 수십 번 되풀이한 실험을 자신도 믿지 못하고 논문에 자신 없는 주석을 달아놓기도 하니까요. 물론 책에는 범인의 열정을 아득히 초월한 집념도 가득하지만, 그런 일화도 '세상에 이런 일이!' 보는 기분으로 읽으면 재밌습니다. 


수많은 인명과 용어가 휘리릭 지나는 책이지만 지식을 바라보는 저자만의 독특한 관점이 있습니다. 저자는 당대 과학자가 빠지는 사고의 함정을 여섯 개로 분류했고, 그중에서도 ‘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상하다’, ‘전문가인 나도 지금까지 알아내지 못한 사실이 많은 것을 잊는다’의 사례를 강조합니다. 사람을 상대로 A/B 테스트를 해놓고도 잊혀진 비타민C 부터, 쓸모가 없다고 논문 투고를 거절당한 전자현미경까지. 사고의 함정은 비단 새로운 발견을 늦추었을뿐만 아니라, 수천 명의 목숨을 살릴 기회를 앗아갔습니다. 이 시대의 과학자들도 2024년의 상식에 묶여 명백한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관찰과 논리가 부디 상식을 뚫고 나오길 바라야지요.


과학을 전공했거나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 재밌게 읽을 책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책이 너무 방대해서 무슨 전공을 했든 모든 내용이 익숙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책에서 알게 된 몰랐던 사실은 삶의 다른 순간 개념이 등장했을 때 낯설지 않게 만들어 주겠지요. 반면 이미 알던 지식을 책에서 다시 보았을 때는, 그 지식이 어떻게 나왔는지 비화를 알게되어 재미있었습니다 (이중 나선을 밝히는 부분은 언제 봐도 안타깝긴 했어요. 제임스 왓슨은 제 마음속의 영원한 빌런입니다).


수많은 사례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자세를 논한다는 점에서, <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는 과학에 관심이 있거나 이제 막 연구를 시작한 분들께 마음가짐을 잡아줄 것입니다. 대학 입시 논술을 준비하던 과거의 저에게 주고 싶은 책입니다. 책의 범위가 넓다보니 근대과학의 어떤 지점 문제가 나오든 책을 기억해서 단서를 잇고(그 시절엔 지금보단 기억력이 좋았던 것 같아요), 지식 수준뿐만 아니라 과학을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으니까요. 실험실에서 알아낸 결과가 두서없어 혼란에 빠진 연구자 분들에게도 위로가 될 책입니다. 지금도 실수와 모순 사이에서 분투하고 계실 모든 분들이 이 책에 나온 과학자들처럼 사고의 함정 사이에서 논리의 디딤돌을 찾아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 출판사에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보는 것이 핵심이다. 불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시도를 해보자는 것이 아이디어였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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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왕국 유산 시리즈 2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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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묘사의 극한을 실험하면서 서사의 재미도 챙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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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만왕국 유산 시리즈 1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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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만왕국><부서진 대지 3부작>으로 유명한 N.K. 제미신의 데뷔작입니다. 주인공 예이네의 뿌리를 찾는 여정이자, 신과 인간의 암투가 복잡하게 섞인 이야기입니다. 한국에는 총 네 권으로 번역된 <유산> 3부작의 첫 번째 이야기이자, 자체로 완결성이 있는 작품입니다.


<십만왕국>은 새로운 이야기입니다. 어느 풍의 판타지도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세상에 없던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작가가 하나하나 고심하며 요소를 설정했습니다. 작중에 나오는 신은 오늘날의 종교와도, 우리가 아는 고대 신화와도 닮지 않았습니다. <십만왕국>의 주요 인물들이 속한 아라메리가문이 세상을 지배하고 자신을 지키는 방식도 독특합니다.


배경이 새롭더라도 인간은 한결 같은 법. 아라메리 사람들은 독자에게 익숙한 동기,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살아남을 힘을 갖기 위해 싸웁니다. 아라메리가 있는 하늘은 세상을 다스리는 자들의 세계, 권력을 갖지 못하면 목숨을 잃습니다. 그렇지만 작중에는 아라메리 사람들만큼 신이 자주 등장합니다. 불멸하고 전능한 신들에게 인간의 권력 다툼이 중요할까요? 이들에게 인간의 싸움이란 찰나에 일어나는 사건일 뿐인 텐데요. 작가는 신을 신답게 묘사하면서도 상상력을 발휘해 필멸자와 불멸자가 같은 무대에서 팔을 걷도록 만들어냈습니다.


작가는 이 세계를 만드는데 힌두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신과 세 주신(主神)이 있다는 개념은 비슷합니다. 제가 힌두 신화를 잘 알지 못해, 신의 종류와 각각의 상징이 얼마나 대응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신화는 신화일 뿐, 신과 인간을 섞어놓은 <십만왕국>은 제미신이 자신의 역량으로 새로 만든 세계입니다. 특히 주인공 예이네와 밤과 어둠의 신 나하도스의 교류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의 접촉을 생경하게 보여줍니다.


<십만 왕국>에는 제미신의 대표작 <부서진 대지>만큼 사회 고발적인 메시지나 비유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의 질서를 뒤집어 그리는 시도는 곳곳에 보입니다. 예이네가 통치하던 국가 다르는 여자가 남자보다 약해서는 안 되는 나라였고(다르에는 다르 나름의 야만적인 문화가 있습니다), 혈통으로 사람들을 옥죄는 아라메리 가문조차 권력을 잡는데 성별이 문제되지는 않습니다. 작가는 현실 인종을 기묘하게 뒤섞여 인간을 빚었고, 그런 인간을 초월한 신조차 인간을 닮았습니다.


이외에도 제미신다운 표현이 많아 즐거웠습니다. 새로운 작품에서 새로운 캐릭터가 이야기하는데도 이것은 제미신의 글이라는 느낌이 풀풀 풍깁니다. 시간이나 시점을 천연덕스럽게 건너뛰거나 속도감있게 사건을 쓰다가도 독자를 향해 의미심장한 문장을 툭툭 던지는 등입니다. 두서 없는 중얼거림 같다가도 결말을 알고 다시 읽으면 모든 퍼즐이 맞아 떨어집니다.


<부서진 대지> 이후로 제미신다운 글을 읽어 좋았습니다. <위대한 도시들>은 현실 뉴욕이 배경이라 한국 독자로서 100% 즐기지 못했습니다. 반면 모두에게 낯선 <십만왕국>은 그 낯섦을 즐기면 됩니다. 저처럼 <부서진 대지>를 읽은 후 제미신다운 글을 찾아 헤매던 사람들, <부서진 대지>를 읽지 않았어도 장르에 속하지 않는 장르소설을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 <십만왕국>을 추천합니다.


황금가지 서평단에 선정되어 작성한 서평입니다.


태양이 필멸자의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부터 그 마지막 빛이 사라질 때까지 그때를 황혼이라 부른다. 태양이 지평선 위로 고개를 내민 순간부터 지평선을 벗어날 때까지 그것을 여명이라 부른다. - P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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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는 기술 - 명화의 구조를 읽는 법
아키타 마사코 지음, 이연식 옮김 / 까치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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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이 편의점만큼 실용적인 곳이었다면 아키타 마사오의 <그림을 보는 기술>은 실용서로 분류되었을 책입니다. 책은 미술관에서 그림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그림의 구조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예시를 들어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같은 예시를 여러 번 사용하며 복습합니다. 비슷한 류의 미술 입문서(?) 처럼 예술가의 삶이나 미술사의 일화를 꺼냈다면 읽기는 더 재미있었겠지만, 이 책은 재미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독자는 모르는 화가를 마주처도, 사조에 배경 지식이 없어도 이전보다 오래 한 그림을 감상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림을 보는 기술>이 알려주는 메시지는 그림의 모든 곳에 화가의 의도가 서려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멋진 풍경일지언정 인간의 감상과 무관한 자연과는 반대입니다. 화가는 무엇을 어떤 구도로 그릴지 계산한 후에야 그림을 그립니다. 관객은 화가의 의도를 모두 파악할 수는 없지만 어떤 그림은 ‘느낌이 좋아서’ 머무르게 되고, 시대를 넘어 관객의 사랑을 받은 그림이 명화로 남게 됩니다.


책을 읽고서, 그림을 보는 것이 글을 읽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이 짧은 서평을 쓰는데도 문단의 흐름을 고려해서 글을 쓰고, 독자에게 더 잘 읽히도록 문장을 다듬은 후 내놓으니까요. 그러나 그림은 글만큼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기에, 그림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은 소설의 주제를 읽어내는 것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까치 서포터즈라는 좋은 기회로 책을 읽었고, 책에 나온 대로 그림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서평을 기회로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올해 초, 보스턴에 출장을 갔다가 보스턴 미술관에 들렀습니다. 인상파 관도 작게 있었는데, 그곳에 다른 그림들은 기억도 안 나게 만든 강렬한 그림이 한 점 있었습니다.



La Japonaise (Camille Monet in Japanese Costume)

Museum of Fine Arts, Boston


모네의 아내가 기모노를 입은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왜 인상적이었을까요? 당시에는 다른 그림보다 크기가 커서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림을 보는 기술>을 읽었으니 그 이유를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녹색 벽을 배경으로 새빨간 기모노의 대비가 선명합니다. 화랑의 다른 그림들은 풍경화이니 이렇게까지 색의 대조가 강하지 않지만, 이 그림은 모네가 직접 보색을 골랐을 그림입니다. 벽에 붙은 부채도, 아내가 든 쥘부채도 청색과 붉은 색이 반복해 나오며 통일감을 주지만, 기모노와 벽만큼 강한 채도를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림에서 제일 먼저 눈에 가는 것은 얼굴입니다. 금발 아내의 얼굴과 기모노에 있는 일본풍 무사의 얼굴입니다. 시선은 왼쪽 위를 올라가 시작해 오른쪽 아래로 끝납니다. 배경의 부채가 아내의 몸짓과 함께 사선을 그리기 때문입니다. 그림 밖으로 나가려는 시선을 다다미 바닥에 떨어진 부채가 잡고, 기모노의 화려한 아랫단으로 이끕니다. 


아내의 몸은 캔버스 중앙을 나누고 있지만, 얼굴을 정중앙에 두지 않고 손에 든 부채와 대칭이 되도록 위치했습니다. 허리춤의 무사도 얼굴을 왼편에 두고 근육이 눈에 띄는 팔을 오른쪽에 두어 균형을 나누고 있습니다. 배경의 벽과 바닥도 직사각형의 캔버스를 정사각형과 아래로 나누고 있습니다. 


시선을 따라가며 구조를 읽으니 모네가 기모노의 반짝이는 금실, 비단의 매끄러운 질감, 그와 대비되는 다다미의 거친 바닥까지도 붓질만으로 보여주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화랑에서 걸린 그림 중 가장 모네답지 않은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것은 대조되는 색상 뿐 순간의 인상을 붓질로 재현한 건 같았습니다.


미술관에서 직접 그림을 볼 때보다 서평을 쓰면서 훨씬 깊게 그림을 보았습니다. 인상파 그림은 인상이 좋아서(?) 좋아했는데, 책 덕분에 그림이 왜 좋은지 길게 감상하고 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장처럼 직접 와닿지 않으니 천천히 오래 보아야 하지만, 정말로 구조가 있을까? 하는 의심 속에서 정말 그렇네! 하고 답을 찾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해외를 가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꼭 들렀는데, 그림을 보는 방법을 미리 알고 갔다면 훨씬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을텐데 아쉬울 정도입니다. 책 한 권으로 감상의 깊이가 달라지는 책이기에 기꺼이 추천합니다.


본문에도 언급했지만, 까치글방 서포터즈로 책을 제공받아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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