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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1 - '사건'전후
신정아 지음 / 사월의책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김두식 교수의 '욕망해도 괜찮아'에서 이 책을 추천하여 읽게 되었다.
김두식 교수는 이 책에 대하여 "출간 2주 만에 10만부를 팔았다는 책인데, 누구도 그 책을 읽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호기심은 있어서 몰래 사보면서도, 그 사실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거죠. 우리 모두가 지닌 그런 이중성은 신정아씨 사건뿐 아니라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이 책을 자료실에서 빌려서 보았는데, 나도 빌릴 때 '신정아가 쓴 책'이 아니라, '4001'책 있는지를 물어보게 되었다. 사서님이 '아, 신정아책이요? 4001이 아니라 신정아 책이라고 하시면 되지..'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나조차도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뭔가 금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랄까.
김두식 교수는 이 '4001'을 사랑에 빠진 중년 남성의 심리를 상당히 정교하게 묘사한 논픽션이라고 소개한다. 정말이지 두 사람의 불륜 이야기임에도 두 사람이 함께 수의를 입고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이 눈 앞에 그려져서 눈물이 나올뻔했다. 그녀는 그를 '똥아저씨'라고 부른다. 정말이지, 사실 신정아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정말이지 '똥밟은' 남자였던 것이 이해는 간다.
"옆자리의 교도관은 똥아저씨가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나를 못 일어나게 잡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똥아저씨는 버스에서 내리는 듯 하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순간 나는 당황스러워 창 쪽으로 눈을 돌리고 말았다. 똥아저씨는 미동도 하지 않고 계속 나를 쳐다보았다. 내 옆의 여자 교도관이 민망했는지 날더러 한번 쳐다봐주라고 했다. 나는 똥아저씨에게 고개를 돌고 살짝 웃어주었고, 똥아저씨도 나를 보고 웃었다. 내가 똥아저씨를 쳐다볼 수 없었던 것은 금세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똥아저씨에게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리는 그리움, 안타까움, 사랑을 주고받았다." (364쪽)
"똥아저씨는 나만 믿겠다고 하면서, 내년 기념일에는 이탈리아라도 갈 수 있을까 하고 푼수를 떨었다. 나는 이런 와중에도 '이탈리아'같은 소리나 한다면서 정강이를 걷어찼다. 글허게 헤어지자 해도 떨어지지 않더니 나를 이렇게 천하의 나쁜 년으로 만들어 놓았다면서, 똥아저씨 같은 사기꾼을 믿고 지금까지 온 것이 한탄스럽다고 했다. 그러자 똥아저씨는 우리 둘은 절대 떨어질 수 없는 동지라고 했다. 내가 이 마당까지 와서 무슨 얼어 죽을 동지냐고 하자, 아저씨는 입을 작게 오므리면서 '사랑해'라고 했다"(367쪽)
학력위조에 대한 신정아의 변명이나 재판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이 책은 신정아 자신의 언어로 적은 글이기에 어떠한 주장을 펼칠 수 있다고는 생각된다. 독자들도 아마 알아서 걸럳,들을 힘이 있는 사람들이므로. 다만, 검찰과 언론의 한 여성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신정아는 어떤 검사는 잘해줬고, 어떤 검사는 소리를 질러 오줌을 쌌다고 하면서 진술하는바, 이 진술에는 신빙성이 느껴진다.
작가로서 평가한다면 기본적으로 필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력위조와 관계 없이 10년동안 어쨌든 전시기획자로서 살아남았다면 적어도 감각있고 똑똑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능력있는 여자에 대한 시선, 비뚤어진 시선, 그 여자는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성을 매개로 하여 성공하고 능력을 인정받았을 것이라는 뿌리깊은 시선은 학력위조와 불륜을 통하여 극대화되고, 그 여성은 이제 마녀로서 희생당하게 된다.
신정아가 잘못을 했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정아는 자신의 죗값을 치뤘다. 합성된 누드사진까지 1면에 공개되어 지금까지 인터넷에 그 사진이 떠돈다. 불륜을 함께 저지른, 그러나 신정아가 5년 동안 사랑했던 그 상대 또한 많은 것을 잃었지만, 신정아만큼 마녀사냥을 당하지는 않았다. 신정아는 그 형 집행이 면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삶 자체를 포기해야만 했다고 앞으로도 자유롭게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누가 그 여자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누구든지 죄없는 사람은 그 여자를 돌로 치라는 성경의 예수님 말씀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한번 정도 빌려서 읽을 만하다. 소장가치는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