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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8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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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여름과 어울리는 맑고 평온했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고 나서 읽게 된 8월의 여름에 어울리는 '영혼의 집',

읽는 동안 감정을 여러 방향으로 치닫게 해 힘들었다. 




에스테반 트루에바 - 분노 유발자, 하지만 작가가 그에게 여러 번 변명의 기회를 주고, 그의 악행을 정성스럽게 묘사하지 않은 덕에 나는 90세 노인이 된 그에게 끝까지 분노하지는 못하고 말았다. 글이 진행되는 동안 분노가 점점 희석되어 버림.


니베아 - 


클라라 - 영험한 능력을 지닌 클라라의 이야기가 황당했으나 개집에 있던 알바에게 나타나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준 그녀가 한 말을 떠올려보니 혼돈 자체인 그 시대를 살아가던 그녀만의 삶의 방법이 그렇게 표현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랑카 - 어쩌다 그런 사랑을...!


알바 - 에스테반이 만들어낸 악의 연을 끊어낸 대단한 알바. 


나는 이제 증오심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다. 내가 가르시아 대령과 그와 같은 사람들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서 증오심도 차츰 수그러드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복수를 하게 되면 마찬가지로 처절한 복수의 연장이 되기 때문에, 이제는 복수받아 마땅한 사람들 모두에게 복수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내 임무는 살아남는 것이고, 내 사명은 두고두고 증오를 연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원고를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더 좋은 시절이 오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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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인 세트
제임스 미치너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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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루카스 요더

편집자 이본 마멜

비평가 칼 스트라이버트

독자 제인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책을 사랑하는 세계에 들어온 사람들이라면 궁금하지 않을까.

작가 제임스 미치너가 82세에 완성한 '소설'은 분량(좀 길다..)과는 상관없이 흥미롭다.

소설의 첫 부분의 지루함을 이겨낸다면! (개인적으로 앞 부분에서 2주간 머물러 있다가 나머지는 이틀동안 다 읽었다.)


자신이 해야 할 이야기가 무엇인지 찾아내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작품을 써내려가는 작가

책을 사랑하고 통찰력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작가를 믿고 돕는 열정적인 편집자

그들만의 세계에 살고있는 비평가,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예술가들의 세계)

책을 사랑하는 독자 


그들과 함께 책 한권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긴 여정을 함께 해서 즐거웠다.



자네의 가슴과 정신에 이 거대 도시가 무료로 제공하는 풍성함을 받아들이게. 그러면 결국에 가선 자네가 우리 모두들보다 더 훌륭한 교육을 받은 셈이 될 걸세. - P193

미래의 작가로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여러분>의 정신에 일격을 가하는 그런 영화나 연극이나 오페라를 보는 일입니다. 자기 자신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고, 자신의 감수성을 폭발시켜 줄 그런 일을 찾아야 하는 겁니다.
그제야 나는 뉴욕 시립 대학의 파인수라이버 교수가 뉴욕 거리에서도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거리는 누구든지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개방된 대학이었고, 나는 물릴 줄 모르는 탑구욕을 지닌 학생이었다.

음악과 영화 둘 다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위대한 창작의 비밀을 파헤치려면 음악과 그림에도 관심을 쏟아야 할 겁니다. 인간 노력의 최고 진수를 탐구하는 것, 그것 말고 삶의 진정한 의미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 P217

대중문화라는 콜레라. 그것이 모든 것을 죽이고, 또 모든 것을 싸구려로 만들고 있다네!
언젠가는 우리 목까지 그 오물 같은 콜레라가 차 올라 우릴 질식시키고 말 걸세.

가장 큰 적은 대중들의 수용에 있네. 왜냐하면 대중들이 인정해야 어떤 예술가가 대중 욕구의 최소 공통분모 정도는 만족시켰다는 점이 입증되기 때문일세. 하지만 예술가의 임무는 그런것이 아니네, 예술가는 연구와 통찰을 통해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수준으로 올라서야 하는 것이고, 그 다음 동료들과 소통하고, 또 그들을 찾아내고, 그들과 사상을 교환해야 하네, 그러고 난 다음 그들이 관심을 쏟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밝혀 내기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것일세, 진정한 예술이란 고양된 수준에서 동등한 사람들끼리 의사 소통하는 것이지, 그 밖의 다른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야. - P351

우리는 점점 타락해 가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고고한 사지들이라네. 지성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단 말일세, 피렌체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단테가 하는 일을 이해했겠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코페르니쿠스를 이해했겠는가? 그리고 대중들이 다윈에게 한 짓거리를 보게! - P429

그때서야 나는 이 조용한 사람이 자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채 혼자만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완전히 스스로 방향을 정해서 사는, 주위의 비평엔 무감각한 원시적 예술가였다. 나는 겁이 났다. - P450

당신들과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을 위해서 글을 쓰시소, 대중은 무시해 버리시오, 그들은 언제나 잘못된 신들만을 쫓아다니니까.-파운드

-남편과 나는 티모시가 열변을 토하고 있는 사상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었다. 그런 사상이 파시즘으로 흐를까 두려웠던 것이다.

예술가는 사회 문제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구체적인 시대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말입니다. - P544

그래서 오늘 밤 토론에서 나는 속박을 끊어 내는 젊은 예술가들의 용기를 진심으로 좋아합니다. 또한 예술가는 자신의 사회에 대한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도 믿고 있습니다. 갈라진 부분을 상호 관심 속에 이어주고 좋은 정부는 지지하며 불행한 사람들을 보살피고 예술가가 되기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일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표현의 자유를 추구한다고 해서 국가에 반역을 하고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말살시켜도 괜찮아고 주장하는 사람들과는 결단코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모두 작가로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고 동료 작가들에게 인류에 대한 영원한 도덕적 가치를 상기시킨 결연한 태도에 감동을 받은 듯했다. - P595

독일 풍경을 묘사하는 루카스 요더의 간정 소설이나 축구계의 비리를 흥미 있게 기술하고 있는 제니 소어켄은 둘 다 초급 학교만 골업하면 누구나 읽고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소설을 쓸 따름 입니다. 스트라이버트나 파운드 그리고 티모시는 훨씬 더 강력한 의사 전달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랍니다. - P660

그래요 제인, 사람이 거의 매일 이런 편지 뭉치를 받으면 비판 따위는 무시할 여유가 생기게 된답니다. 그런 편지들이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불을 지킬 연료가 되어 주는 셈이죠.

아마 훌륭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나 훌륭한 작품을 쓰는 사람은 그 일을 계속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나 봅니다, 불이 꺼지지 않는 한 말이에요. - P669

글쓰기가 내가 할 일이야, 나는 그것을 해야만 해. - P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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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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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을 우리를 다른 세계로 끌어들인다. 자기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다. 독자들은 일종의 실험실적 환경에서 인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그것을 인물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것이 인물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지켜볼 수 있다. 인간과 세계가 좀더 높은 해상도로 다가온다.

여행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집중시킨다. 우리는 한 도시의 핵심으로 돌진한다. 변두리의 단조로운 주택가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현지인들이 겪는 자잘하고 어지러운 일상을 잠깐 맛볼 수는 있지만 오래 지속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여행자는 도시의 정수만을 원한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살핀다. 현지인들은 심드렁하게 지나치는 건물과 거리에도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어댄다. 여행에서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들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행은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점에서도 소설과 닮았다. 설렘과 흥분 속에서 낯선 세계로 들어가고 그 세계를 천천히 알아가다가, 원래 출발했던 지점으로 안전하게 돌아온다. 독자와 여행자 모두 내면의 변화를 겪는다. 그게 무엇인지는 당장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일상으로 복귀할 때가 되어서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살던 동네가 다르게 느껴지고,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이 되살아난다.

 비슷한 일을 소설이 한다. 부부관계의 파경을 다룬 소설을 읽고 나면 독자 자신의 부부관계도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된다. 탁월한 문장력으로 맥주의 맛을 묘사한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문득 냉장고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그때 마시는 한잔은 늘 경험하던 그 맛이 아니라 문득 새롭다.

 

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그것은 독자가 왜 매번 새로운 소설을 찾아 읽는가와 비슷할 것이다. 여행은 고되고, 위험하며, 비용도 든다. 가만히 자기 집 소파에 드러누워 감자침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게 돈도 안 들고 안전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 

언어가 창작의 연료라면, 그 연료에는 등급이 있다. 나의 동료 작가들을 만나는 일이 언제나 즐거운 것은 그들이 동시대 최고 수준의 언어로 독특한 화제들을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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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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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이란.

너무 많이 들어 익숙해진 나머지 아직 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읽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노인과 바다를 읽으며 이야기의 내용을 아는것과 작가의 글을 읽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간결하고 이성적인 문체로 전해지는 굵은 감정의 울림.

 

 긍정과 도전의 자세로 다음 날 새벽 다시금 고기잡이를 하러 나가는 산티아고 노인. 행운보다 어부로서 낚싯줄을 정확히 드리우는 것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그는 자신의 경험과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으며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낚싯줄에 걸린 거대한 물고기를 상대로 먹을 것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꼬박 이틀 밤낮에 걸쳐 고통스러운 사투를 벌인다. 

 산티아고 노인은 자신의 힘든 처지에 대한 감상적 연민에 빠지는 일도, 거대한 물고기를 잡은 것에 대한 오만한 승리감에 도취되는 일도 없다. 상어의 공격을 받아 거대한 물고기를 잃는 절망적인 상황에 닥쳐서도 그는 굴복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마지막 순간까지 상어와 맞서 싸운다. 그리고 상어들이 물고기를 다 뜯어먹어버린 패배의 상황 앞에서도 그는 물고기를 잡아 올렸던 승리의 순간과 마찬가지로 패배를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는 의미없는 일을 한 것이 아니다. 고난과 역경 앞에서 인간적 위엄을 간직하며 용기와 불굴의 의지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분투하는 산티아고 노인의 모습은, 영원한 승리자의 모습으로 기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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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muri (Hardcover)
무라카미 하루키 / 新潮社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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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활은 표면적으로는 이전과 달라진 것 없이 흘러가고 있다.

매우 평온하게, 매우 규칙적으로.

 

왜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것을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때 읽고 싶었던 것은 길고 긴 러시아 소설이었다.

 

아무리 의식을 집중해도 나는 피곤하지 않았다. 안나카레리나를 읽고 싶은 만큼 실컷 읽고 나자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꺼냈다. 나를 끌어당기는 것은 19세기 러시아의 두쿰한 소설이었다. 얼마든지 계속 잃을 수 있었다. 아무리 의식을 집중해도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난해한 부분도 별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바늘이 레코드의 홈을 더듬는 것처럼 내 손가락은 이야기의 세세한 부분을 생생하게 더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깊고 격력하게 감동도 했다.

 이것이 본래의 바람직한 내 모습, 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집중력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집중력이 없는 인생따위, 뻔히 눈을 뜨고서 아무것도 못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결국 나는 학구적인 인간이 아니었고 나 스스로도 그건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것뿐이었다. 논리적인 해석이나 학술적인 토론에는 소질이 없다.

 

아무리 들어도 나는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차이를 식별할 수 없다. 내 귀에는 둘 다 거의 비슷한 것처럼 들린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차이 같은 건 알지 못해도 괜찮아, 라고 남편은 말한다. 아름다운 건 어떻든 아름다워, 그것뿐이야. 남편은 그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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