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
듀나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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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시간에 차 한잔 마시며 읽고 싶은 책을 읽는 즐거움이란 나에겐 큰 행복이다. 어릴 때 재밌는 추리소설을 읽듯, 다양한 미스터리 스토리에 빠져드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책, <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

편안하고 따뜻한 울림을 주는 책이 있고, 예상하지 못한 신선한 새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 있다면 이 책은 후자에 속할 것 같다.


<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는 8편의 미스터리 단편들이 실린 추리소설집이다. 한국 SF 장르의 대가이자 영화비평가인 듀나의 첫 미스터리 소설집으로 더욱 관심이 집중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SF작가로만 생각되었던 저자이지만 사실 그 중심에는 미스터리 장르가 굳게 자리잡고 있었음을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미스터리하면서도 독특한 여덟 편의 작품들은 하나하나 매력적이다. 때론 기이하기도 하고 때론 누군가의 비밀일기장을 열어보듯 긴장감과 궁금증이 밀려오기도 한다. 각각의 이야기 속의 주인공의 존재는 통상적인 것이 아닌,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것들이 깨지는 반전과 놀라움을 선사한다.

작품마다 1인칭, 2인칭, 3인칭 시점의 다채로운 화자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이야기들, 매번 내가 예상했던 결말이 아닌 충격적이고 알 수 없는 결말들...다소 친절하지 않은 엔딩들은 그래서인지 더욱 미스터리하게 느껴지고 계속 생각나게 한다.

여덟 편의 소설들 중에 첫번째 이야기인 <성호삼촌의 범죄>는 물고기가 미끼를 물듯 나에게 미끼를 던져준 작품이다. 자신의 삼촌의 이야기라고 얘기하는 화자의 시점의 전개는 작가의 의도와 반전이 잘 드러났던 장치가 아닐까 싶다.

P.37

“사람이 지하실 안에서 죽었어. 한쪽은 계단이고 반대쪽은 화장실이야. 지하실엔 창문 두 개가 있는데 방범창에 막혀 못 나가고 화장실에도 창문이 있긴 하지만 사람이 나가기엔 너무 작아. 그런데 계단 위에 있는 문은 안에서 자물쇠 두 개로 잠겼거든? 살인범은 어떻게 나갔을까?”

퀴즈를 낸 뒤에 그는 늘 잊었다는 듯 이렇게 덧붙이곤 했다고 한다.

“아, 그리고 용의자는 서울대 출신이야. 아주 수재야, 수재.” (성호 삼촌의 범죄)

화자인 나는 성호삼촌이 저지른 살인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제법 유명한 배우인 상호삼촌은 서울대 출신으로 우연히 길거리 캐스팅이 되어 모델 일을 거쳐 지금의 배우라는 위치까지 왔다. 그렇게 잘나가던 삼촌에게 과거 단짝으로 지냈던 정상만이 찾아오면서부터 먹구름이 드리우게 된다. 정상만은 성호삼촌의 유명세를 이용해서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투자사업에 끌어들이려 하고 이 과정에서 다툼이 일어나게 되면서 사건이 터지게 된다. 정상만은 죽었고 단순사고사로 결론나게 되지만 미스터리한 범죄현장에서 한 형사가 의문을 품게 되면서 성호삼촌을 의심하게 된다.

문은 안에서 자물쇠로 잠겨 있고 창문은 방범창에 막혀서 나갈 수 없고 화장실 창문은 사람이 나가기엔 너무 작은데 살인범은 어떻게 나간 것일까... 하고 말이다. 형사는 이 미스터리를 풀 수 있을까.

과연 범인은 어떻게 이 범죄현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일까...

다 읽고나서 깨닫게 되는 반전의 묘미가 짧지만 강하게 남는다.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에서는 끔찍하게 벌어진 여러 살인 사건들에게서 발견되는 하나의 지문과, 완벽한 범죄현장에서 범인을 알려주는 듯한 그 지문이 과연 범인이 맞는 것인지 궁금증을 유발시키며 시작된다.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이 죽게 되고 이 사건의 미스터리는 쉽게 잘 풀리지 않는다.

과연 지문의 주인공이 범인이 맞는 것일까. 범행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책을 다 읽어도 이 궁금증은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P.46

내 생각에 세상 물정을 충분히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거 같아. 다들 각자 자기 우물 속에서 사는 거야. 어떤 우물은 다른 우물보다 조금 크겠지만.(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는 영화 현장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다. 제작자이자 인기배우인 남자가 갑작스럽게 자살을 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평소 자기 멋대로 굴고 감독조차 그에게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안하무인이었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목매달아 죽은 채로 발견된 것이다.

진짜 자살이 맞는 것일까. 아니라면 누가 범인인 것일까. 외국인 배우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이 소설은 연예계 성범죄나 미투운동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마지막까지 읽다보면 장황한 설명없이 단 하나의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 궁금증이 풀린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범죄와 이를 알면서도 묵인하는 사회 곳곳의 나쁜 관행들이 문득 생각나는건 왜일까.

<돼지 먹이>는 마치 미국의 무겁고 어두운 갱영화를 연상시키는 하드보일드 느낌이 강하게 나는 작품이다. 처음에는 등장인물의 이름과 내용이 헷갈려서 앞으로 돌아가 몇 번을 다시 읽으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나갔다. 클라이막스에 이르었을때는 또 한번 내 예상이 빗나가는 허를 찌르는 작가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소 잔인하다고 생각되는 문장들이 있는데 이 충격적인 반전을 담아내기에는 충분하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 이외에도 계획 범죄 그 이면의 진실을 알게 되는 <콩알이를 지켜라!> <그건 너의 피였어>, 과거의 실종사건이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누가 춘배를 죽였지?> ,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햄릿을 파격적인 관점에서 서술하는 <햄릿 사건> 까지 독특하고 인상적인 미스터리의 세계에 빠져 볼 수 있었다.

이 짧은 단편들 속에 담겨진 기발하고 독특한 이야기들은 기존의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상식을 깨는 듯하다. 사실 이런 류의 소설은 처음이다. 현실과 맞닿아 있지만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

읽으면서 점점 더 궁금하게 만드는, 마지막까지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반전이 돋보이는 스토리들이 시선을 계속 끌게 한다.

당연하고 뻔하지 않아서 더욱 매력적인 이 소설들이 너무 신선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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