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문을 닫는 순간 몇 시간 후 시원한 술을 마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듯이, 신나서 술잔에 술을 따르는 순간 다음 날 숙취로 머리가 지끈지끈할 가능성이 열리듯이, 문을 닫으면 저편 어딘가의 다른 문이 항상 열린다. 완전히 ‘닫는다‘는 인생에 잘 없다. 그런 점에서 홍콩을 닫고 술친구를 열어젖힌 나의 선택은 내 생애 최고로 술꾼다운 선택이었다.그 선택은 당장 눈앞의 즐거운 저녁을 위해 기꺼이 내일의 숙취를 선택하는 것과도 닮았다. 삶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지만 하지 않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니까. 가지 않은 미래가 모여 만들어진 현재가 나는 마음에 드니까. - P90
하긴 그들이 여기에 와 있다는 건 거의 기적이다. 술과 하시시, 편두통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전혀 아니다. 중요한 건 그들이 삶의 모든 것을 겪고도, 굴욕과 실망과 상심과 놓쳐버린 기회, 형편없는 아빠와 형편없는 직업과 형편없는 섹스와 형편없는 마약, 인생의 모든 여행과 실수와 실족을 겪고도 살아남아 쉰 살이 되었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레스는 이 모든 일과 세상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이 두려웠다. 하지만 이상한 건 모든 게 무서웠기에 다른 것보다 딱히 더 어려운 일은 없었다는 점이다. 세계 일주를 하는 것도 껌을 사는 것보다 두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루하루, 그날 분량의 용기.
타인의 불행을 수집하는 사람이 되지 말 것. 누군가의 성공을 있는 그대로 두고 관상하는 법을 익히지 못하면 표정이 못생긴 노인이 된다고, 심술궂은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과 마주앉은 나의 얼굴은 바로 그 심술궂은 얼굴과 다르지 않음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그 디테일을 자신의 욕망에 적용하면 좋겠다. 지금 뭘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