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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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은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 재미와 감동 때문만이 아니라 그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불편한 현실이 오히려 자꾸만 자꾸만 책장을 넘기라 한다. 덕분에 이틀간 잠을 설쳐가며 두꺼운 벽돌책 [베어타운 Beartown]의 끝을 향해 달렸다. 여담이지만 북유럽 사람들은 길고긴 장편을 좋아하나보다. 같은 스웨덴의 ‘스티그 라르손’이나 ‘요나스 요나손’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의 작품들도 그렇고 노르웨이의 ‘요 네스뵈’ 작품도 기본 500페이지는 훌쩍 넘어가니 말이다. 눈 덮인 혹한의 겨울, 낮게 드리운 하늘,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 환경의 영향이 여가시간을 집에서 느긋하게 보내도록 만들기 때문일까? 그런 북유럽 특유의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삼은 이 소설은 숲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도시 베어타운을 무대로 인간 공동체가 빚어내는 빛과 어둠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전작 [브릿마리 여기 있다]가 축구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베어타운]은 아이스하키에 목숨 건 사람들의 이야기다. 스포츠는 사람들을 똘똘 뭉치게 만드는 힘이 있지만, 분열을 일으키게 되면 대대적인 싸움으로 번지는 부작용이 따른다. 물론 이 작품은 역경을 헤치고 꿈을 향해 부단히 노력해서 마침내 성공한다는 줄거리의 스포츠 성장소설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을 그 어떤 스포츠소설 못지않게 열정적이고도 짜릿하게 묘사하고 있다. 솔직히 나는 스포츠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경기 규칙 또한 잘 모른다. 아이스하키란 스케이트를 타고 아이스링크를 누비고 다니며 스틱으로 퍽이라는 까만 공을 골대에 넣는 스포츠라는 정도밖에 지식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또다시 ‘브릿마리’가 되어 이번에는 베어타운의 아이스링크 관람석으로 날아가 열광하는 사람들 틈에서 함께 흥분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 황홀한 즐거움이 지속되면 좋으련만 손에 땀을 쥐는 뜨거운 시간은 그만큼 빨리 식어버린다는 것이 함정이다.


점점 쇠락하고 있는 소도시 베어타운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현재에 이르러서도 마을의 부흥을 하키에 걸고 있다. 극적으로 전국 대회 준결승에 진출한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이 우승한다면 시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염원하는 어른들은 어린 선수들의 어깨에 묵직한 짐을 지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승전을 앞두고 승리를 자축하는 십대들의 파티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마을 공동체는 점점 들끓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이루는 사회란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인걸까. 대를 이어 평생을 어우러져 살아가는 지역민들을 주축으로 하는 아주 작은 마을임에도 베어타운 역시 돈으로 나누어지는 카스트 사회의 모습 그대로다. 실업, 차별, 여성비하, 성소수자, 폭력, 파벌 등 현대사회의 문제점 또한 고스란히 안고 있다. 돈과 권력에 빌붙는 비굴한 사람들, 힘으로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들, 거짓과 잘못을 정당화하려는 사람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조리에 눈을 감는 사람들, 분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사람들, 정의와 대의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사람들, 그들이 벌이는 마녀사냥 속에서 몸부림치는 한 가족이 너무 안쓰러울 따름이다.


“네 아이가 열다섯 살이 되거든 나를 찾아와줘. 그때는 생각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p.499


삶에는 자신이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는 한 절대 모를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성폭행이란 더욱이 까다로운 사건이다. 게다가 가해자가 지역 유지의 아들이자 천재적인 실력의 소유자라면 순식간에 피해자로 뒤바뀌고, 실제 피해자는 온갖 폭력과 비방을 감당해야 한다. 하물며 열다섯 살 소녀가 그런 엄청난 현실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루아침에 심연으로 굴러 떨어졌음에도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려는 아이, 그녀를 좋아하면서도 어렵게 얻어낸 팀이라는 안전한 소속감을 좀처럼 떨쳐버리지 못하는 아이, 내면의 아픔을 외적인 고통으로 산화시키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찾는 아이, 옳다고 생각한 선택을 한 아이들이 10년 후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정의가 해피엔딩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사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뭐란 말인가. 각자의 가치관과 처한 입장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마을 회생이라는 꿈을 무너뜨린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을 거라 믿고 싶다면 다음 편을 읽으라는 이야기일까? 분쟁의 불씨가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탓에 마을의 미래가 순조롭게 전개될 리는 없겠지만, 그들 안에 깃들어 있던 곰이 눈을 떠 더욱 강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베어타운의 다음 이야기 [우리와 당신들]을 기대하련다.



"이 마을은 옳고 그름을 잘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어. 그건 인정해. 하지만 선과 악은 제대로 구분하지."

뒤에서 말없이 건배하는 소리가 들린다. 베어타운 사람들은 고맙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미안하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을 통해 이 마을에도 한 번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p.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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