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별꽃 동서 미스터리 북스 114
에무스카 바로네스 오르치 지음, 남정현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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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에 발표된 소설 [빨강 별꽃]. 백년도 더 지난 작품임에도 역시 불멸의 역작이란 이런 것인가 싶다. 존스턴 매컬리의 <쾌걸 조로(The Mark of Zorro)>도 여기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걸보면 신출귀몰하는 히어로의 모험담은 이 소설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정체를 숨기고 억울한 사람들을 돕는 정의의 사도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재임에 분명하다. 영웅을 원하고 영웅에 열광하는 심리는 보통 사람들의 로망이니까. 따라서 20세기의 대작가 ‘바로네스 엠마 오르치 남작부인(Baroness Emma Orczy)’이 그려낸 원조 슈퍼히어로 ‘스칼렛 핌퍼넬(Scarlet pimpernel)’이 지닌 매력은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다. 로맨스 서스펜스의 원조 같은 이 작품이 아직까지도 출간되고 있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배경은 프랑스 혁명 당시 귀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단두대 길로틴의 제물로 온 일가가 희생되던 혼란의 시대다. 잡히면 즉결재판으로 처형당하는 귀족들을 구출하기 위해 영국의 신사들이 도버해협을 건너 아수라장에 뛰어든다. 20명의 무리를 이끄는 수장은 ‘빨강 별꽃’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구출에 성공하면 반드시 작은 별모양의 꽃무늬가 그려진 통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누구도 진짜 정체를 알지 못한다는 신비함이 더해져, 더욱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그를 잡기 위해 프랑스 공화정부에서는 전권대사를 파견한다. 아름다운 여인과 대부호인 멋진 남자의 등장은 쫓고 쫓기는 추격전, 아슬아슬한 박진감에 빠질 수 없는 감미료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물론 고전인데다 로맨스의 요소가 적지 않은 만큼 의외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런 뻔한 공식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읽히는 건 역시 작가의 필력과 플롯의 힘이라 하겠다.


어렸을 때 읽고 실로 오랜만에 다시 찾아든 ‘빨강 별꽃’은 당시 불러일으켰던 불길만큼 커다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세월이 흘러 삭막해져버린 마음에 자그마한 불꽃을 피울 정도는 되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11권의 ‘스칼렛 핌퍼넬 시리즈’가 발표되었다고 하는데, 역시 등장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첫 번째 작품이 화제작으로 대성공을 이루는 경우 곧잘 찾아오는 비운을 극복해내기란 과연 쉬운 일이 아닌가보다. 원래는 소설보다 연극으로 발표된 이야기로 국내에서도 몇 년 전 뮤지컬로 공연했다고 한다. 더없이 로맨틱한 영웅 역할을 맡은 세 명의 배우 박건형, 박광현, 한지상, 누가 가장 어울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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