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기사단장 죽이기 1~2 세트 - 전2권 (리커버 특별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다운 작품을 만났다. 1, 2권 합쳐 천 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騎士團長殺し]. 하루키 소설만은 발간되자마자 구입하던 예년과는 달리 이렇게 몇 년을 묵혔다 읽은 건 근간 만난 작품들에 조금 실망을 했기 때문인데, 이번만큼은 과연 ‘하루키 문학의 집대성’이라는 평에 공감하는 바이다. 유려한 문체는 여전하고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서 벌어지는 수수께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독자의 사고회로를 분주히 움직이게 한다. 하루키 문학은 이미지와 음악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인데, 이 작품은 화가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기에 더욱 색채가 생생하게 표현된다. 


제1부. 현현하는 이데아 第1部 顯れるイデア編

제2부. 전이하는 메타포 第2部 遷ろうメタファ-編


육안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통찰되는 사물의 순수하고 완전한 형태 ‘이데아(idea)’. 추상적인 무언가에 대하여 마음속에 떠오른 구체화된 이미지 ‘메타포(metaphor)’. 전편을 아우르는 철학적인 접근은 읽는 사람에 따라, 또는 읽는 순간의 기분에 따라 다른 감상을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는 시간이 즐거웠던 이유는 작가의 전작들을 떠올리게 하는 공통적인 요소들이 심심치 않게 튀어나오는 지라 기억의 서랍을 열어보는 잔재미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아내의 부재, 옆집 소녀, 전쟁기의 난징과 만주, 구덩이와 우물, 지하 통로의 여정, 고즈넉한 별장과 한적한 요양소, 60센티미터의 인물들, 비현실적인 임신 등, 그리고 모든 작품을 아우르는 주인공 ‘나’와 굉장히 흥미로운 남자 ‘멘시키 와타루’와의 관계도 [태엽감는 새 연대기],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해변의 카프카], [1Q84]의 이야기들과 연결된 듯해 하루키 월드의 또 다른 나라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여기까지 제가 거쳐 온 길은 ‘메타포 통로’입니다. 그 길은 사람마다 각기 달라요. 똑같은 통로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에게 길안내를 해드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유명한 노화가(老畫家) ‘아마다 도모히코’가 그린 그림 <기사단장죽이기> 속에서 ‘긴 얼굴’이었던 메타포가 ‘나’의 앞에는 여동생의 목소리를 통해 기억 속 풍혈로 나타난다. 울퉁불퉁 바위투성이 황야를 가로질러 세찬 물살이 흐르는 강을 건너고 울창한 숲을 빠져나가 다다른 암흑의 세계에서 눈을 뜬 주인공. 하루키 작품은 등장인물의 이름에도 의미가 담겨있는 경우가 많다. [태엽감는 새]에서 출세지향주의자가 와타야 노보루(綿谷 昇)였던 것처럼. 이번에 눈여겨봐야할 이름은 멘시키 와타루(免色 渉). 색을 면한 백발의 핸섬한 멘시키 씨는 왼손잡이다. 강을 건너서 왼쪽으로. 그리하여 ‘나’는 자신이 속한 세계로 돌아왔다. 그의 여정에서 무의식중에 잃거나 혹은 얻게 된 자아로 인해 새로이 뜬 눈에 비친 세상은 조금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등뒤는 울창한 수해, 눈앞은 가파른 절벽, 그리고 어두운 입을 벌리고 있는 동굴 입구 하나. 인생의 길은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리라. 부조리와 폭력, 상실감과 상처, 희생과 시련을 딛고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라는 메시지를 얻으며 책장을 덮은 날, 우연히도 이런 메일을 받았다. 신기하네. 이런 게 바로 하늘의 계시라는 걸까.


“삶을 개선하는 방법은 익숙한 나와 결별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이다.

내 인생만큼은 남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시선으로 살아갈 자유가 있다.

변화는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과거의 나를 뜯어 고칠 때 변화가 일어난다.

삶을 개선하는 방법은 익숙한 나와 결별하는 것이다.

얻고자 하면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한다.

때로는 불편함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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