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 영화와 요리가 만드는 연결의 순간들
이은선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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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요리가 만드는 연결의 순간들


‘정성껏’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내게 음식과 요리는 일상적인 행위인 동시에 사람과 삶을 한층 더 정성껏 바라보게 하는 대상이었다.(...) 요리는 확실히 비효율적인 행동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감정의 맥락과 소통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단순히 허기를 달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취할 때의 마음을 구별하게 한다. 한 그릇의 요리에 담긴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프롤로그 중에서

 

 

이 책은 영화와 영화에 등장하는 요리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저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저자는 프리랜서 영화 전문기자로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창작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해 지금의 직업을 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요리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요리를 할 때는 실패에 대한 초조함과 낯섦에 대한 공포 같은 게 별로 없다고 한다. 식탁에 차려낸 요리가 저자 자신 혹은 마주 앉아 있는 사람을 어느 정도로 기쁘게 하는지 즉각적으로 알 수 있어서 불확실한 매일에 시달리는 저자에게 확실한 행복을 주었다고 말한다.

 

나는 영화는 좋아하지만 요리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는 않는다. 결혼 후부터 줄곧 남편과 아이들한테 맛있다는 평을 듣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요리에 취미가 없으니 정성이 덜 들어갔을 수도 있겠지만...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이 그저 부럽다.

 

이 책에 나오는 영화들 다 보지 못했다. 몇 편의 영화들은 몇 장면들만 봤고, 제목만 아는 영화들도 있고 처음 보는 영화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 시간을 달리는 소녀, 데몰리션, 카모메 식당이란 영화는 보고 싶다.

책을 읽다가 울컥했던 글들도 있었다. 그리고 영화, 요리, 사람들을 대하는 저자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고 따뜻해졌다.

나도 언젠가 따뜻하고 작은 공간에서 사람들과 도란도란 따뜻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그들의 인생 이야기들을 듣고 싶다.

 

 

그래도 나는 세상 모두가 요리라는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경험을 한 번쯤은 해봤으면 한다. 게다가 기왕이면 거기에서 즐거움을 발견해 소소한 취미처럼 즐겼으면 좋겠다. 누구에게 대접하기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한 끼부터 시작해보면 어려움이 좀 덜하지 않을까. p.30

 

종종 태도와 자격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기도 했다. 감정이 나를 압도해 도취되는 순간은 없는지, 나에게 이 정도로 슬픔의 자격이 주어질 수 있는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들은 끝도 없이 괴로웠다. 그러나 지금은 나와 친구들이 각자의 시간과 감정을 분해하는 데 골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라도 좋다고 생각한다. p.152

 

시간의 속성처럼 앞으로 달아나는 화면의 프레임 안에서 자꾸만 뒤처지던 마코토가 결국 제힘으로 그 프레임을 따라잡고, 또 좀 더 빠르게 달려 아예 벗어나는 장면은 무척 아름답다. 명랑하기만 했던 소녀가 한 뼘 더 성장하는 순간이다. 그때의 경이로움을 이렇게 직관적으로 표현해낸 장면은 아직까지 이 영화 말고는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p.215

 

좋은 영화를 봤을 때, 이 작품에 참여한 이들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 다양하게 떠오른다. 청음 만나는 인터뷰이를 대할 때 느끼는 긴장도 고통보다는 즐거운 스릴에 가깝다. 그걸 실감할 때마다, 그래도 그동안 영 엉망으로만 일해오진 않았나 보다 하는 생각에 소박한 기쁨을 느낀다. 이전에는 그저 커피를 내렸다면, 지금은 사치에가 커피를 만들기 전 주문처럼 외는 ‘코피 루악’의 비밀을 아주 조금 알게 된 기분이랄까.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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