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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 아래에서 - 한의로 대를 잇는 아버지와 아들의 동의보감
전재규 지음 / 산지 / 2021년 1월
평점 :
한의로 대를 잇는 아버지와 아들의 동의보감
중국 삼국시대에 동봉이라는 의사가 있었는데, 병이 나으면 돈 대신 살구나무를 받았단다. 그 의사가 어찌나 명의였는지, 나중엔 그 주변 산이 살구나무로 가득 찼단다. 살구나무숲은 명의이기도 하고 인술을 베푸는 의사기이도 한 거야.(...)
재규야, 네가 아버지 뒤를 이어서 살구나무 숲 한번 만들어 봐라. 군수나 시장을 해야만 성공하는 게 아니다. 아버지처럼 좋은 의원 되어서 사람 많이 살리면 나는 좋겠다. p.39
지난 밤 부터 나는 아버지의 옛날 일들을 계속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내일의 태양을 함께 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또 이야기를 들으며 극심한 통증을 조금이나마 잊기를 소망했다. (...) 당신의 삶을 아들의 목소리로 다시 들려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당신을 닮고 싶었던 나의 이야기를 또 들려드리고 싶었다. p.55
양방이든 한방이든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환자가 낫는 거에만 집중해. 오진해서 환자를 더 나쁘게 하면 그보다 나쁜 의사는 없다. 넌 이제 시작이니 실력을 계속 쌓거라. p.134
난 당신이 쌓아올린 수십 년의 경험을 끊임없이 얻으려 했다. 그리고 당신은 기꺼이 마지막 불꽃을 아들을 위해 태우셨다. 대를 이은 의업. 그것은 당신이 나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이었다. p.176
당신의 마지막 환자는 어머니였다. 대장암으로 투병하는 어머니에게 맞는 처방을 고심하며, 응급실에 입원한 그날까지 방약합편을 손에 놓지 않으셨다.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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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창당한약방에서 의인한의원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한의원 약 박스에 써 있는 문구라고 한다. 저자는 아버지가 하시는 ‘영창당한약방’이라는 상호를 따라서 ‘영창당한의원’으로 개원하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영창당은 내 이름이고, 너는 네 이름을 가져야 한다.”, “넌 나의 그늘에 있으면 안 된다. 나를 뛰어 넘어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한의사가 된 저자와 아버지의 이야기가 가슴 뭉클했다. 엄격하셨지만 저자에 대한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이 느껴졌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어릴 때 갑자기 중풍이 와서 집안에만 계셨던 할머니 생각이 나고 돌아가신 아빠 생각도 났다. 난 아빠에 대해 그리 좋은 기억은 없었다. 자라면서 미워하고 원망했었다. 하지만 돌아가시고 난 뒤 생각해보니 좋은 기억들이 하나둘 떠올라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빠도 병원에서 산소 호흡기에 의지하셨을 뿐이었다. 늘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는데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 계속 생각나서 책 말미에 얼마나 울었는지....
아버지라는 나무 아래서 뛰어 놀았다.
햇살이 비칠 때도 비바람이 불 때도.
가지 끝에 달려 있던 의업이라는 열매를 맛보며 자라났다.
그리고 커서야 보게 되었다.
아버지라는 나무에 새겨진 인고의 옹이들을.
그리고 커서야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커다란 살구나무였음을. p.11